국뽕이라고?천만에..

by 문성훈

인생행로가 키를 잡은데로만 정해지는 것은 아니어서 십년전쯤에 용인 어디쯤에 있는 가구공장을 운영한 적이 있다.
서울과 지방을 잇는 도로와 접근성이 좋아서인지 주변에 다른 가구공장들이 옹기종기 꽤 많았다. 공장을 제외하면 대부분 논밭이었는데 사거리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옹졸해보이는 작은 길가에 간이식당을 겸한 가게 하나가 있었다.
주고객은 공장에 딸린 기숙사에 묵고 있는 근로자들이었다. 살림을 겸한 가게여서도 그랬겠지만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불이 켜져 있을 때가 많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TV를 보거나 뒹굴거리다가 밤이 이숙해지면 빵이나 삶은 계란, 과자부스러기 따위를 사기위해 슬리퍼에 츄리닝차림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꽤 있어서였다. 그들 중 상당수가 동남인이었고 가끔은 우즈베키스탄같은 무슨 탄으로 끝나는 국가의 백인들이 섞여있기도 했다. 공장에서 하루를 묵는 날 가게에 들리면 그들과 마주치곤 했다.
겨울 문턱을 넘어서던 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서투른 한국어로 입국 선배인듯한 이가 물건을 사고 값을 치르는 동안 그 뒤에서 비닐봉지를 들고 서있는 후배격인 이의 눈과 마주쳤었다. 후드에 두툼한 작업 점퍼는 겹쳐입었지만 맨 발에 쪼리를 신고 있었다. 피부까지 까무잡잡해서인지 유난히 크고 하얀 눈망울이 후드속에서 도드라져 보였는데 깊은 겨울 한밤중에 쌓이는 눈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좀 심란했다.
'너는 한국에 온지 얼마나 됐니? 가족들과 연락은 자주 하니? 먼 데까지 와서 참 고생이 많네' 나는 마음 속 인사를 건넸고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보였다. 그 순간에 나는 그가 고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그 나라 화폐가치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서 송금하는지 몰랐지만 부지불식간에 추운 계절이 있는 나라로 보낸 그의 고국을 눈 아래로 두고, 안쓰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음이 분명하다. 얕잡아봤다고 해도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아마도 오래전 선진국이라 불리던 나라로 떠났던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도 그런 시선과 마주쳤을 것이다.

뉴욕에 사는 처남 가족이 영주권 심사를 받은 날. 몇 주가 지나야 알 수 있다는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도 취득을 확신한 건 이민국 당담자가 보인 행동과 말 때문이었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던 그가 조카의 서류를 보고
"ㅇㅇㅇ학교를 다니는 구나. 그 학교 좋지. 풋볼팀도 강하고..."라고 하자 동석했던 변호사가 냉큼 "네. 학교 성적도 우수하고, 풋볼팀이 이번 지역대회에서 우승했죠. 게다가 이 친구가 주장입니다"라고 했단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탄성을 지르면서 조카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그랬다고 한다.
"와우 좋아. 아주좋아. 앞으로 쭉 그렇게만 해. 훌륭해.... 그래. 그거야"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가 넌즈시 귀띔을 해줬다고 한다. "돌아가서 기다리면 너희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거다"라고. 오랜 외국생활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처남 가족이기도 했지만 단번에 영주권을 취득했다.
어쩌면 그의 말 속에는 "비록 한국인이지만, 너희들은 우리나라에 살 자격이 되는구나."가 숨겨져 있지 않았을까.

싸이라는 허리케인이 몰아치더니 지금은 BTS군단이 세계를 점령했다고 떠들썩하다.
군대(A.R.M.Y)의 전력도 막강하고 그 위력이 국내 주식시장까지 출렁이게 했다. 한류덕에 세계속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당당히 문화 수출국 대열에 들어선 것만 같아 자랑스럽다. 세계 각국 젊은이들이 한글을 깨치려하고 한글 가사로 따라부르며 한글로 쓰여진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런데 나는 역설적으로 BTS의 인기보다는 COVID19가 가져온 세계적 위기와 불안이 한국의 위상을 더 높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뉴욕의 가족들에게서 '미국은 너무 불안하다. 그래도 잘 대처할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라. 한국만큼 안전한 나라가 없다'는 전갈이 수시로 온다. 주변 사람들은 미국과 유럽으로 유학을 보낸 자녀들을 불러들였다. 못미더운 한국 교육보다 그 나라의 의료 방역체계가 더 불안해서다.
무엇보다 외국의 사는 친구들에게서 한국인인 자신을 대하는 그 나라 사람들의 태도와 시선이 격세지감으로 바뀐걸 실감한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는 약간의 전율마저 느낀다.

아시아인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미국을 낮춰보는 사람들이 베트남인들이라고 한다. 승전국이라는 자부심이 자리잡고 있어서다. 싸이 광풍이 몰아치던 시절 들렀던 터키의 그릇가게 점원은 우리 가족이 한국인이란 걸 알고 싸이 춤을 선보였지만 결국 다른 곳보다 비싸게 그릇을 샀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환하게 웃으며 '코리아'을 외쳤던 길거리 터키인들은 그들 선조의 한국전 참전을 기억하고 있어서였다.

질병과는 전쟁을 치르고 대중문화는 인기를 모은다. 전쟁은 불안이고 공포다. 인기는 환희고 열정이다. 기쁨보다는 슬픔을 오래 간직하게되고, 공포의 그림자는 환희의 불꽃보다 오래 그리고 길게 드리운다. 우리는 학교보다 병원에서 더 '선생님'을 간절히 부르고 더 깊숙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공포와 불안은 바위에 새겨지고, 환희나 열정은 바람처럼 지나간다.

나는 세계인들이 한류 열풍보다 더 오래도록 강렬하게 한국의 의료와 방역을 기억할 것이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지위를 높고 공고하게 올려놓을 것이라고 믿는다.
연고 구단이 우승했다고 주민과 심지어 경찰까지 약탈을 서슴치 않는 나라의 국민보다 세찬 바람에도 촛불을 밝히고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우리 국민이 자랑스럽고, 쉴새없이 떠들며 거짓말을 서슴치않는 그 나라 대통령의 오리 주둥이보다 희미한 미소만 머금은 우리나라 대통령의 꽉 다문 입술이 더 믿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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