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보다가...

by 문성훈

성인이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에 관해서거나 자칫 흉이 될만한 가족 이야기를 하기란 어렵다. 숨기거나 최소한 말하지 않는 게 대부분의 심리다.

오랫동안 앓고있던 공황장애를 최근에 떨쳐버린 지인의 가족사를 들었다.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의 후속편이기도 하고 영화로 치면 편집된 분량까지 살려낸 감독판이다. 지인이라지만 나보다 열살 적은 독서모임의 멤버다. 모임 시작전에 나눈 사담에서였다.
그는 외국계 회사를 다니는 반듯하고 성실한 가장이다. 최근에는 한결 편안하고 밝은 표정이다. 웃는 일도 잦다. 특히 딸아이 얘기를 할 때 더욱 그렇다.
사범대를 나왔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됐다. 살아오면서 부모의 뜻에 반한 결정은 아내와의 결혼이 유일했다고 했다. 그것이 꽤 오랫동안 부부를 힘들게 했다는 얘기는 이전에도 들었다. 그 배경을 들은 셈이다. 주말부부였던 부모, 두 분의 성향, 모친의 불우했던 성장 배경, 그래서 자신이 효자일 수 밖에 없었던 사연, 뜻하지않은 애인과의 이별, 쉽게 결정한 진로, 원래 간직했던 꿈까지... 지금의 아내가 아니었더라도 결혼을 반대했을 거라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에게는 제가 애인이었다."고 했다. 모두가 충분히 공감가는 내용이었다.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인데 요즘은 많아졌다. 반갑고 다행스럽다. 얼마전에는 공황장애를 겪을 당시의 일기를 복사해서 나눠줬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것 같아서라고 했다. 그를 아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예상못한 일이었다. 그 마음이 고마웠고 용기가 가상했다.
담당 의사는 이미 완치판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 소견이 아니더라도 일련의 정황들로 미뤄보면 그가 완치됐다는 걸 느끼고도 남는다.
그는 이 모임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독서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평소 책을 가까이했던 그이고 보면 분명 누군가가 자신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 준 것이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됐을 것이다.

선배중에 절친한 정신과 의사가 있다. 자주 만나는 사이라 임상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상담시간의 대부분을 환자의 얘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는데 쓴다고 했다. 자신이 숨기고 있던 얘기를 하면서 울기도하고 격분하기도 하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병의 원인도 파악할 수 있고 환자 스스로 상당 부분을 해소한다고도 했다. 그렇게 내면의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고 정신과 의사의 능력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수도권 신도시에 정신병원 인테리어를 맡았을 때였다.
마흔 정도의 젊은 원장이었다. 선한 인상만큼이나 좋은 성격을 지녔는데 미혼이었다. 법적인 하자가 없어도 도심에 정신병원이 들어서기란 여러 문제가 얽혀있어 무척 어렵다. 그 난관을 뚫지 못하다가 나를 소개받았고 다행히 해결할 수 있었다.
나를 신뢰하고 좋아한다는 걸 충분히 느꼈고 나 역시 그가 괜찮은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여러면에서 제법 죽이 잘 맞았다. 술을 좋아하고 잘 마셨던 것도 그 중 하나다. 사람 좋고 술 좋아하니 자연히 술자리가 잦았다. 주량은 내가 더 쎘던 것 같다. 단둘이 마시니 개인적인 얘기도 쉽게 오갔고, 술이 들어가면서 내밀한 얘기는 밖으로 나왔다. 일에 관해서는 서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핑계일 때가 많았다.

늘 그가 먼저 쓰러졌고 내가 들여보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도대체 누가 정신과 의사인지 모르겠네. 저 친구의 상담은 오늘 내가 했고, 내일 병원을 찾는 환자는 저 친구가 상담하겠군.'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그 병원의 입원환자중 가장 많은 수가 알콜의존증 즉 알콜중독자였다는 것이다. 그리고서 1년정도 지난 후에 그의 청첩장을 받았다.

그날. 나도 모르는 새 맞은편에 앉았던 멤버가 찍은 사진을 오늘 받았다.
도대체 웃음기가 빠지면 날카롭기만 한 저 눈빛은 왜 안변할까? 무슨 얘기길래 저리 진지하게 듣고 있었을까?
쓸개빠진 놈처럼 항상 실실 웃고만 있을 수도 없고, 나이 들수록 푸근한 인상을 가지고 싶어 살도 찌운건데... 좌절감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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