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이라는 물건

by 문성훈

어릴 적에는 누구네 집이건 무시로 드나들었다. 동네 친구집이라면 제 집처럼 들어가 밥상 차려달라고 하는데 스스럼이 없었다. 초대받지 않았는데 남의 집을 방문한다는 게 실례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이후의 일이다.
어쨌거나 그 시절 누구네 집 할 것없이 고만고만한 살림에 세간살이라고 할 것이 별반 없었는데 언제나 눈에 띄는 것은 자식들이 받아 온 상장들이었다.
돌담으로 둘러쌓인 오래된 한옥이라도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색바랜 흑백사진과 함께 대청마루 벽 상단에 걸려있었다. 공부 잘하는 자식이라면 으레 판검사되기를 바라던 시절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도 모른다.
그것이 시대가 바뀌면서 학위 가운을 걸친 사진으로 대체가 되는 경향을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부모 세대의 자랑거리이자 최고의 장식품은 자식이 거둬들인 전리품인 상장이나 학위가 아니었던가 싶다.
말하자면 당신은 없고 자식이 당신의 명함이자 자랑거리였던 셈이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집무실과 저택 안을 둘러 볼 기회가 많았다. 그들의 요구를 반영해서 공간을 설계해야했으니 중요하게 여기는 공간이나 물건을 통해 가치관과 살아온 배경을 유추해보곤 했는데 거의 어김없이 맞아떨어졌다.
자신의 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 아니면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았는지도 알 수 있었고 미래 지향적인 삶의 추구하는지 아니면 지난 과거에 의탁해 현재를 도모하는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

오랜 공직 생활을 마치고 모 회사의 회장에 취임한 분의 집무실을 설계할 때다. 고급스럽고 큰 책상과 소파 그리고 많은 서가가 들어가야한다고 해서 꽤 넓은 면적을 할애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무리 단계에서 짐이 들어왔다.
장서가 들어갈 것이라 여겼던 서가는 내가 예상했던 용도가 아니었다. 책이 꽂여야 할 자리가 수많은 명패와 감사패 그리고 임명장으로 채워졌다. 너댓명은 둘러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책상에는 자개가 박힌 새로운 명패가 놓여졌다. 그 분은 컴퓨터 다루지 못했으니 결재판과 찻잔만 놓여질 크기의 책상이면 족했을 것이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하는 사건에서 그 분 이름을 발견하고 그 때를 회상한다.

대기업 계열사 사장을 지내시다 퇴직한 분의 식사초대를 받아 댁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한 직장에서 37년을 근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스러운데 식견이나 인품까지 훌륭해서 흠모하던 분이시다.
서울 외곽인데도 거름냄새가 풍길것만 같은 마을이었다. 무엇보다 주변을 전혀 압도하지 않는 규모에 얕은 담장이 인상적이었다.
"집이 주인을 닮았습니다"
"아 그래요. 역시 디자인 하는 분이라 다릅니다. 저는 딱 한가지만 주문하고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뭡니까?"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 였습니다. 그것만은 꼭 지켜달라 했지요. 그래서 그 분들 이름과 함께 머릿돌에 새겼습니다"
집 안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휘둥그레해질만한 장식이나 소품은 없지만 적재적소에 과하지 않은 디자인 디테일이 품격있고 세련됐다. 오래 머무르고 싶은 집이었다.
장식용으로 쓰이는 금장을 두른 책이 아닌 손때 묻은 책들이 꽂힌 서가를 둘러볼 때였다. 커다란 액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퇴임 때 직원들이 선물한 것이라 했다. 전 직원들의 흑백사진들로 ‘심여만고청산.행여만리장강'(心如萬古靑山/行如萬里長江 마음은 오랜 세월동안 변함없이 푸른 산과 같아야 하고 행동은 유규한 세월을 흐르는 강물과 같이 하라)’란 글귀를 만든 액자였다.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나는 그보다 귀한 상장을 본 적이 없다.

표창장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대학입학을 위한 스펙으로 상장이 소모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뜻을 담아준 무명의 작업자 이름을 새긴 머릿돌 앞에 번뜩이는 자개박힌 명패는 빛을 잃고 초라해진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 온 날들이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상장은 더 어울리는 물건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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