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문득...

by 문성훈

쓸데없는데 관심이 많다. 한두번 들렀을 뿐인 뿐인 커피숍 매니저의 표정이 어두운걸 보고는 무슨 일일까 궁금해하기도 하고, 어두워졌는데 늘 리어카에 막걸리를 싣고 다니던 아저씨가 안보이면 걱정스럽다.
사람에 대해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건너편 헤어 샆 간판에 박힌 등 중 하나가 나간지 오래인데 아직 갈지않은 게 신경쓰이고. 지난 밤 강풍에 가로수 뽑힌 자리에 심어져있던 꽃이 어찌됐을까 걱정스러워 가보기도 한다.

그러니 늘 보던 액자가 조금만 틀어져있어도 금방 눈치 채고, 어지럽혀져 있는 책상에서도 작은 소품을 기막히게 잘 찾아낸다.
주변 사람과 사물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언제나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살아가기 무척 힘들었을텐데 그에 못지않게 둔감하고 대범한 면들이 있어 내 안에서 상호 보완하고 절충이 되는게 분명하다.

신발 밑창이 늘 바깥쪽부터 닳는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1997)>의 유달(잭 니콜슨 분)만큼 강박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거리에서는 보도블록의 이음매 선을 의식하며 일직선으로 걷는다. 양발이 수평인지도 신경을 쓴다. 자칫 불량스러워 보일 팔자걸음도, 걸음마 배우는 어린아이같은 안장걸음도 아니길 바래서다. 가끔 다리가 휘었는지 팬티바람으로 거울 앞에 서서 살피기도 해보는데 다행히 곧다.
그런데도 신발 뒷축을 살피면 바깥쪽부터 닳는 게 언제부터인가 신경이 쓰였다.

오늘 그 이유를 알았다. 나는 도심에서 생활을 한다. 맨 땅을 밟는 일은 드물다. 하루 종일 내가 오가는 거리는 차도와 인도로 나뉘어져 있다. 당연히 인도로 걷는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인도는 차도방향으로 경사가 있다. 물매라고 하는 것인데 빗물이 고이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예전부터 해오던 방식이다. 그런데 지금의 보도블럭은 빗물 배출이 잘되고 블럭 아래는 모래로 채워져 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 미장이 아닌데도 예전처럼 시공한다. 특히나 내가 출퇴근하면서 오가는 인도는 여느 인도보다 좁고 물매가 센 곳이 많다. 그러니 오가면서 먼저 닿을 수 밖에 없는 밑창 바깥면이 닳는게 특이한 현상은 아닌 것이다.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닐 수는 있지만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사소한 발견에서 좀 더 큰 세계에도 적용되는 진리내지는 발명을 하게 되는 것이 꼭 학문적 영역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삶을 풍요롭고 기름지게하는 도리나 지혜같은 것들도 실은 의미 없어 보였던 평소 행동이나 무심히 지나쳤던 현상에 숨어있었던 경우가 많다. 기울어진 길과 편마모가 일어나는 신발 뒷축에서 지금의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이유다.

1940년대말 미국은 잦은 전투기 추락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사후 조사에서 기체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으니 언제나 조종사의 과실로 판정이 났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다양한 조종사의 신체조건을 감안하지 않고 조종사의 신체 평균치를 적용한 고정된 조종석이 문제였던 것이다. 평균치에 드는 신체 조건을 가진 조종사는 실상 3.5%밖에 되지 않았다. 간과했던 조금만 깊이 생각했다면 알 수 있는 문제 때문에 무고한 희생을 치렀다.

세상은 전투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복잡하다. 우리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불합리한 일들과 부당한 상황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일을 경우도 보게된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무시해도 좋을 일이더라도 정작 당하는 사람에게는 무척 중요하고 사안에 띠라서는 목숨과 명예가 달린 일일 수도 있다.

신발 밑창을 고르게 닳게하고 싶은 내게는 몇가지 대안이 있다.
첫번째는 보도블럭을 걷어내고 지면은 평평하게 다듬는 방법이다. 혼자서 할 수 없고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다.
두번째는 당분간 편평한 길만 찾아다니며 걷는 방법이 있다. 혼자서 할 수 있지만 번거럽고 신경쓰인다. 도심에서 출퇴근을 하면서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밑창이 닳는대로 새 신발을 사서 신으면 된다. 가장 흔하고 마음 편한 방법이다. 이를 흔히 순응이라고 부른다.

나는 똑바로 걷고 싶다. 신발 뒷축도 고르게 닳기를 바란다.
그런데 내가 오가는 길은 경사가 기울어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신발 밑창 한쪽이 먼저 닳는 것을 감내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순응한다. 편평한 길만 고집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어렵고 시간은 걸리지만 길을 편평하게 만들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난다. 무척 반가운 현상이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사람은 지면에 따라 수평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유인력을 거스를 수도 없다. 척추를 곧추세우고 지면과 수직으로 걷는 게 정상이다.
기울어진 보도블럭을 파헤치면 드러난 지면은 수평이다. 블럭 아래 모래가 기울기를 유지할 뿐이다. 말하자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설사 신발이 많거나 새 신발을 자주 살 수 있는 사람이라도 부지불식간에 척추는 조금씩 비틀어지고 있다. 길을 선택해서 다닐 수 있는 자연인이 되려면 세상과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언젠가 편평한 길만 놓여진 세상을 만든다면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척추측만증 환자도 척추가 곧게 펴지고, 도심을 떠났던 자연인도 세상 속으로 들어올지 모른다.
무엇보다 다음세대의 척추 걱정은 덜 수 있을 것이다. 바른 자세로만 걸으려고 한다면 말이다. 생각의 척추가 곧아야지만 바른 행동이 나온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날이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익숙한 길을 똑바로 걸으려 할 것이다. 다행히 이제는 신발 밑창 쯤은 잊어버릴 수 있게 됐다.
혼탁한 세상에 순응해서 기울어진 사고와 삐뚤어진 행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그들의 용기와 노력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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