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산책

by 문성훈

눈썹달은 자꾸 숨바꼭질을 하자고 했다.
늘상 걷던 길인데 검정드레스를 차려입은 늘씬한 여인을 만난 것만 같다.

차갑고 서늘한 눈빛이 내려보는 고혹적인 밤을 걷는다.
절두산 마사토에 떨어진 머리 숫자만큼 불을 켜둔 건 아니겠지?
당인리 공원은 이제 개장 준비를 다 마친 것 같다.
여의도는 오늘따라 더 가깝다.
나홀로 아파트 거실등 다양한 사람들의 제각각인 사연처럼 총천연색으로 빛난다.
괴르츠는 아직 운영중이다. 아주 오래전 이정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던 빌딩이다.

한강변을 둘러 돌아오는 길을 골목길로 택했다.
우거지 국밥이 맛있던 식당은 주점으로 재개점 했다.
반지하 매장에서 딸 아이 또래 주인장이 아마도 오지않을 손님을 기다리며 서성댄다. 가슴팍으로 찬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손님이 들지 않아도 주인 손길이 바쁘다. 아무도 없는 바카운터를 열심히 문지른다. 주인없는 옷걸이가 가을 가지처럼 앙상하다.

사무실 앞 개점하자 문을 닫아놨던 어묵집이 어제부터 문을 열었다. 모친이 갑자기 편찮아지셔서 간호하느라 그랬단다.
동행이 묻는다.
"다녀오셨죠?"
"네"
"어떠시던가요?"
"'그래 이 맛이야!'는 아닌데 국물맛은 나름 괜찮던대요"
"그러셨군요"

우리 둘은 저녁으로 쫄면을 먹었다. 이름난 집이다. 죽방멸치로 우려낸 국물을 먹고싶었다.
벽면에 적힌 선전문구에는 70년대 냉면 면발 뽑으려다 실수로 만들어진 게 쫄면이고 그 제면소의 면을 쓴다고 나와있었다. 이제껏 그런가보다 했다가 새삼스럽게 검색해봤다. 신빙성이 낮다고 나와있다. 이유 또한 설득력이 있다.
무던하게 살 필요가 있다. 굳이 까칠해서 좋은 것 되려 드물다. 죽방멸치 우려낸 국물만 맛있으면 됐다.

이전에 지나쳤던 소바집에 걸린 명패가 눈에 띄었다.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서 준 명패가 여러개다. 혹시나 다음 저녁을 위해 메뉴 배너를 유심히 본다. 날계란 노른자를 풀어서 비벼먹는 소바가 주메뉴다. 못볼 걸 본것처럼 고개를 돌린다.

바로 옆집 간판이 들어온다. 상호도 없이 '칼국수집'만 적혀있다. 맛있을 확률이 높다. 창문 너머 벽면 메뉴를 살핀다. '바지락칼국수'다. 탄식같은 아쉬움이 새어나온다.
"바지락이네... 그나저나 저는 영원히 친일파가 못되나보네요. 일본음식은 영 안땡겨서..."
"어련하겠습니까. 멸치 다시 칼국수만 찾는 분인데..ㅎ 일본 음식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ㅋ"
"사돈 남말 하시네요. 어디 저만 그렇습니까? 같은 촌놈끼리... 어머니 손맛에 길들여지면 고달파지는가 봅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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