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한번씩 더 살 수 있다면.... 좋아하는 영화지만 시간에 쫒겨가며 어렵게 봐야 할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름대로의 철칙이 있었다면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잊혀지는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잔상이 남거나 여운이 오래가서 거기에 머무는 것조차 허용되지않을 만큼 팍팍한 날들이었다. 더 이전이던 학생시절에는 여자친구가 있어도 영화만은 혼자 보는 괴벽때문에 친구들이 의아해하기도 했었다. 취향이 다를 게 분명해보이는데 뭘 볼지 실랑이하기도, 양보하기도 싫어서였다.
자식으로 태어난 이후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 두 번의 새로운 세상을 더 경험하고서 마지막이자 세번째 경험이 될 죽음만은 아주 먼 미래로 밀쳐두고 싶은 지금은 또 다른 영화들이 깊숙히 다가온다. '인생 후루츠(2018)'가 그러했고, '어바웃 타임(2013)' 이 그런 류의 영화다.
"인생은 누구나 비슷한 길을 걸어간다. 결국엔 늙어서 지난 날을 추억하는것일 뿐이다. 결혼은 따뜻한 사람하고 하거라." <어바웃 타임 대사 中>
총각 시절 어머니는 결혼은 결국 '제비뽑기'라고 하셨다. 20년을 사귀었더도, 선을 보고 만났더라도 결혼을 하고 난 후 그 여자는 '아내'라는 다른 사람일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니가 운이 좋은 사람이면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거고 그렇지않다해도 어쩔 수 없다"고... 나는 무척 운이 좋은 사람이다.
앙상블(emsemble)이란 단어는 참 매끄럽게 구르면서 큐트(cute)하다. '어바웃 타임'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앙상블 영화'다. 배우도, 배경도 시놉시스마저도 사랑스럽고 꼬집고 싶을 만큼 귀엽지만 잔향이 오래도록 남는다. 특히 여주인공 레이첼 맥아담스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맥 라이언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아내의 상냥한 미소를 그대로 닮았다.
"사랑은 준비없이 찾아온다. 두려움과 함께..." <대사 中> 결혼을 앞두고서도, 내가 세상에 떨궜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첫 아이를 안는 순간에도... 두려움은 늘 함께했었다.
오늘처럼 봄비가 내리는 날. 온 가족이 가벼운 담요라도 끌어 안고 보기에 안성맞춤인 영화다. 매력적이고 상냥한 여자를 선택했고, 서로 바꿔 낳았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은 보이시한 딸과 애교스러운 아들을 두었으며, 더욱이 다정다감하지는 않으셨지만 듬직한 버팀목이셨던 아버지의 조용하고 장엄한 임종을 지켜봤던 나로서는 남다를 수 밖에 없는 영화다.
"내세울 것 없는 저에게도 자랑할 만 한게 있다면 그것은 제 아들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대사 中> 아버지께는 들을 수 없었던, 아니 미치지 못한 아들이었던 나였지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야겠다. 아들의 결혼식 피로연에서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다.
우리를 둘러 싼 이웃과 친구, 그리고 가족은 어떤 존재인지, 그들과 어떻게 사랑을 나누고 슬픔을 보듬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고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로 인해 단 하루의 삶은 찬란하다.
"인생은 모두가 함께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을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대사 中> 더불어 사는 삶이 소중하기에 '우리'라는 말 안에 스스로 가두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철저히 혼자이고 싶은 순간에도 돌아갈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해도 내 키가 아버지 허리춤에 못미쳤을 때 당신 손을 잡고 떠난 그 출장길을 한번만 더 나녀왔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나는 이제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다. 단 하루라도 난 마치 내가 이 날로 되돌아와 그 날을 다시 산다고 생각하며 그날을 즐기려고 매일 노력한다. 매일매일 열심히 사는 것, 마치 그 날이 특별한 내 삶의 마지막 평범한 하루인 것 처럼...." <대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