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지도 좋을까... 반려견 -얼마전까지 유기견으로 블렀지만- 망고는 산책을 좋아한다. 아니 밖에 나가 뛰어놀기만을 기다리며 긴 하루를 보내는 것 아닌가 싶다.
토요일이다.
아침일찍부터 아내는 노트북을 챙겨 아파트 근처 카페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늦은 나이에 공부라는 산을 넘기에는 아무래도 체력과 시간이 부족하다. 늦은 잠에서 깨니 핸드폰에 "식탁위에 두고 나온 바나나와 오이 그리고 편의점에서 마우스에 갈아 끼울 AAA건전지 2개를 챙겨와줘"라는 문자가 남겨져 있다.
그리고 침대 옆에는 주인이 깨기만을 기다리는 망고가 앉아있다.
놀아달라는 거다. 샤워를 하고 망고를 데리고 나왔다. 현관만 나서면 먼저 나와있는 녀석이다. "안돼. 갔다 올게"라는 말에 실망하고, "그래. 가자"라며 목줄을 채우면 환희에 들떠 꼬리를 끊어질듯 흔들어댄다.
건전지도 살 겸 공원에서 제 동족들과 잠시라도 뛰어놀게 해 줄 참이다. 아내의 시장기보다 이 녀석의 바램이 더 간절해 보여서다.
봄비가 그친 공원은 싱그럽다. 잔디는 물기를 머금고 오랜만에 기지개를 켰다. 공원 공중화장실 뒷 편 잔디밭은 유일하게 반려견에게 허용된 놀이터다. 언제부터 그리되었는지, 공식적인 재가가 났는 지는 모르겠다.
다만 며칠 전. 망고의 배변을 담는데 환경미화원 한 분이 공중화장실 뒷켠 배변 모으는 쓰레기봉투 있는 곳을 일러줬다. 그로써 반려견들에게는 이 곳이 꽤 유서 깊은 장소이고, 허용되어있음을 짐작할 뿐이다.
오늘도 대 여섯마리의 반려견들이 먼저 나와 있다. 주인들은 자주 보는 다른 집 반려견들 이름을 외운다. 반려견이 없는 집 아이들이 간식을 들고 나와 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몸집이 큰 개들은 주인이 알아서 목줄을 풀어 놓지 않는다. 아직 어린데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행동에 제약을 받는 녀석들은 맘껏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 볼 뿐이다. 그래도 망고같은 녀석은 스스럼없이 다가가 킁킁대고 같이 뒹군다.
망고는 달리기로 치면 이 동네에서 수위권에 들 정도로 빠른 녀석이다. 망고를 처음 본 사람들은 대개 어떤 종인지를 묻는데 그럴 때마다 잘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이제 '잡종'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모든 개들은 잡종이다. 지들끼리 그리 된 것인지 사람의 욕심으로 개량된 것인지만 다를 뿐이다.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다니다 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쫒아 오기를 거듭한다. 어디 가지 말라는 당부인지, 잘 놀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지는 모르지만 거르는 일은 없다.
아직 한번도 물리거나 싸움에 휩싸이는 불상사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집 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주인들이 사나운 녀석은 목줄을 풀어 주질 않고, 남자를 경계하는 녀석은 "얘가 남자만 보면 짖어요"라고 그 개 주인이 사전에 말해주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피해가 되어서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기 개가 소중한만큼 다른 개들이 얼마나 주인에게 사랑받는 지 알고 있기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한다.
상식과 예의란 법전에 명시되지 않은 세상의 이치다. 소통을 매끄럽게 하는 윤활유 같은 것이기도 하고 내가 받고 싶은 만큼 남에게 먼저 보이는 겸손함의 발로다.
개들은 어지러이 뛰어 놀지만 그들만의 질서가 있다. 서로의 냄새를 맡으며 통성명을 하고나면 배맞는 녀석끼리 뛰어다니다 뒹굴다를 반복한다.
예외없이 주인의 행방을 쫒는 눈길을 거두는 법도 없다. 혹시 새로운 친구가 나타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쫒아가 똑같은 행동으로 환영하고 무리에 끼운다. 가끔 스스로를 사람으로 착각하는 녀석이 되려 동족들을 경계하고 짖기도 하는데 그 주인은 무척 속상해한다. 어울리고 자기네들끼리 노는 방법을 모르니 손도 많이 가고 곁에서 떼어놓지 못해서다.
기분 좋게 놀고나면 망고는 "집에 가자'는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장 선다. 혀를 빼물만큼 맘껏 뛰어논 날일 수록 발걸음은 더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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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만도 못하다'거나 '개판'이란 말은 어쩌면 이기적이고 편협한 인간 본위의 사고에서 생긴 말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면서 개만도 못한 인간들을 수도없이 봐 왔고, 개판인 광경을 매일같이 목도(目睹)하고 있는 내 생각에는 그렇다.
개들은 적어도 정직하다. 제 생각이나 감정에 충실하고 제 힘이 부칠 때는 승복 할 줄도 안다.
주인에게 버림받을 지언정 주인을 버리는 경우도 없다. -망고도 한때 주인에게 버려졌던 녀석이다- 언제나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쓰고, 위로를 건네기도 용기를 북돋워 주기도 한다 -그래서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격상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 간에도 나름의 질서와 예의가 있다. 아무리 사나운 녀석도 다가오지 말라고 으르렁거릴 뿐 처음부터 살의(殺意)를 가지고 덤비지는 않는다. 수컷은 영역 표시를 하고 다니지만 그 안에 다른 녀석이 들어온다고 해서 주인행세를 하고 쫒아내지도 않는다. 암컷에게 호감을 가지고 덤비지만 암컷이 거부하고 주저앉으면 이내 포기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뛰어논다.
심지어 배려심도 가지고 있다. 대개 실내에서 키우는 녀석이다 보니 땅바닥에 뒹굴고 드러눕는 경우는 없다. 밖에서 뛰어논 자신으로 인해 집안을 어지럽히지 않겠다는 배려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간혹 소변을 보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발로 땅바닥을 긁는 녀석이 있는데 아마 다른 녀석이나 주인이 밟는 것을 저어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녀석일 수록 땅바닥에 드러눕는 짓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는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개판을 벌이는 광경을 심심찮게 본다.
개도 하지않을 거짓말을 밥먹듯이 해대는 뻔뻔함에 질리고, 이기심에 동료들을 모함하고 헐뜯으며 고함 지를 때마다,
밥그릇 싸움에는 들개처럼 여지없이 밖으로 뛰쳐나가고 땅바닥에 뒹굴고 드러눕는 짓조차 서슴치않는 광경을 대할 때마다,
자신을 그 자리에 있게 해 준 주인은 아랑곳하지않고 사람 살판을 개판으로 만드는 것을 볼 때마다,
이제는 주인들마저 개들 다툼에 팔 걷어부치고 울대 세워 편 갈라 짖어 댈 때마다
억울하게 인간들이 "개만도 못한..." "개판'이란 불명예를 지운 개들에게 미안하다.
과거 조선시대 여의도는 오랫동안 가축을 놓아 기르던 섬이었다. 지금은 가축은 간데 없고 개들만 우글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