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by 문성훈

고향집은 지금은 구도심이 된 시내에 있었다. 학급 수가 가장 많았던 나의 초등학교 모교가 폐교위기에 몰렸다는 믿기지않는 소식을 들었던 것도 수 년전이다.
시내 중심가도 시장도 걸어서 다녔는데 동네와 경계 지점을 철길이 갈라놓고 있었다. 철길은 역으로 이어져 있었고 우리 동네에서 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구름다리라고 불리던 육교를 건너면 됐었다.
예전에는 그 구름다리를 건너자마자 연탄공장이 있었다. 꺼먼 화물 열차가 부리고 간 석탄이 작은 언덕을 만들면 고무호스로 물을 뿌려 먼지를 가라앉히는 광경을 구름다리에서 바라보곤 했었다.

아마도 석탄은 강원도에서 싣고 온 것이었을 것이다. 고향의 연탄공장이 사라졌듯 지금 강원도의 탄광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인생막장이란 말이 나올만큼 힘들고 위험했던 막장에서의 채탄작업도 멈췄고 폐에 석탄가루가 박혀 생긴다는 진폐증도 기억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광부들은 목숨을 걸고 막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바깥 공기를 쐬게됐다는 것은 하루 일과를 마친 것이 아니라 살아서 돌아온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인지 1960~70년대 경제개발을 이끌었던 그들은 산업전사로 불렸다. 그런데 그들 가슴에 달렸어야 할 훈장 대신 그곳에는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산업전사 위령탑'이다.
'산업전사'도 북한의 선전구호처럼 생경한데 '위령탑'에 이르러서는 섬뜩해진다.

옛 탄광촌에 지금은 카지노가 들어섰다. 한해 매출액이 1조 5천억원에 이르고 영업이익만 5천억원이 넘는다. 탄광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어졌다는데 그 곳에도 많은 청년들이 일을 한다. 주로 지역 주민의 자녀들이다. 그들의 서비스를 받는 것은 외지 사람들이다. 그 곳에도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여관비까지 밀린 사람들이다. 시민단체 통계로는 매년 10명 이상 매월 1명씩에 이른다고 한다.
카지노는 정부가 운영한다. 정부가 석탄을 캐던 막장이 문을 닫으니 칩을 따는 새로운 막장을 열었다. 수많은 주검 위에 세운 카지노와 호텔을 밝히는 것 또한 청년의 목숨을 앗아간 컨베이어 벨트가 놓인 화력발전소의 전기다. 가히 21세기 새로운 형태의 '위령탑'이라 할 만한다.

21세기 연탄 아궁이가 드물어진 시대에도 석탄은 산업에 일조하고 있다. 대표적인 쓰임새가 화력발전소의 연료다.
청정에너지인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에서 석탄 먼지를 마시며 일하던 청년이 죽었다. 갱도가 무너진 것도 아닌데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목이 잘려나갔다.
24살. 입사한지 86일만인 그의 목숨을 앗아간 막장은 탄광이 아니었고 발전소였다. 그의 손에는 곡괭이 대신 핸드폰이 쥐어져 있었다. 헤드램프 대신 흐릿한 핸드폰 불빛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서다. 청정에너지를 생산한다면서 온실가스를 내뿜는 석탄을 때고, 아파트 몇 개동은 족히 밝히고도 남을 전력을 생산하는 곳에서 손전등 하나 공급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 발전소에서는 전 해에도 그리고 이듬해에도 보일러 청소를 하거나 하역 작업을 하다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하나같이 비정규직 노동자다.
정부가 그들을 다시 '산업전사'로 부르고 위령탑을 세워주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통령이 탄소중립 선언을 했다. '더 늦기전에 지금 바로 시작합시다'란 문구가 거슬린다. 한국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1/4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온다. 그런데 지금도 석탄발전소가 지어지고 있다. 민간기업에 불하해서 생긴 난제다. 이전 정권이 4대강으로 국토를 헤집어놓은 것도 모자라 공기마저 더럽히게 해놨다. 국민 대다수는 석탄가루 대신 미세먼지를 마시게 됐는데도 대기업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기업의 총수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반대한다. 아무리 큰 돈을 착복해도 휠체어만 타면 되는 힘있는 그들 때문인지 국회 통과도 쉽지않다. 정치도 돈 앞에는 맥을 못춘다. 그들의 자녀는 결코 석탄 컨베이어 벨트에 끼일 일은 없을 것이며 카지노의 딜러로는 일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 정부가 무엇을 더 늦기전에 시작하려는지 나로서는 알지 못하겠다. 2050년까지 정권을 놓지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히는 것처럼도 들린다.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믿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지역의 균형적 발전과 폐광지역 주민의 소득증대'라는 그럴듯한 비전을 제시했던 정선카지노 설립과 다를 바가 없다. 국민을 도박중독과 가정파탄에 이르게 하고 자살로 몰면서도 지역은 전당포와 중고차 매매로 번성하는 옛 탄광촌의 현재 모습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지구를 살리기 전에 지금 죽어나가는 국민부터 살려야한다.
위령탑처럼 높이 솟은 건물을 노동자가 흘린 피로 컨베이어 벨트를 돌려 불을 밝혀서는 안된다. 그 불로 외지고 어두운 곳부터 비춰야지 부자들이 돈을 세는 방부터 밝혀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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