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말, 말의 맛

by 문성훈

삶에서 행복의 요소인 즐거움과 의미를 가장 충족시키는 행위는 여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가장 높은 행복을 느끼는 행위는 무엇일까?

한국인의 행복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먹기'와 '말하기'이다. 이 두가지는 쾌감을 느끼게 해주고 생존을 가능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살기위해서도 먹지만 그 행위가 고통스럽다면 식탐이라는 말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현대인의 고질병이라는 비만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말이라는 탁월한 의사전달 체계를 갖춘 유일한 생명체였기에 약한 육체로도 야생에서 살아남고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서로에게 위험을 알리고 사랑하게 하는 것도 이를 통해서다.
그래서인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인은 누군가의 험담을 하는 것조차 "씹는다"고 말하는지 모른다.

네살박이 조카는 제 엄마가 밥알 사이에 꼭꼭 숨겨둔 채소 다진 것을 얼마나 잘 골라내는 지 모른다. 나는 조카의 여리고 민감한 혀의 감각과 놀림에 감탄했었다. 내 손가락 두마디도 안되는 작은 손으로 젓가락질 할 때도 그랬다.
나는 육고기보다는 채소를 즐기고 좋아하는 편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조카는 육고기를 찾고 나는 채소의 밍밍한 맛에 더 끌린다. 한의사인 선배는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과 성향이 있는데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찾게되고 그 맛을 더 잘 느껴서 육식과 채식 선호로 갈린다고 했다.
가장 쉽게 자신의 체질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침 변의 상태를 봐서 전날 식단이 어땠는지 생각해보라고도 했다. 내 지난 과거 경험. 예컨대 전날 육고기와 술을 마신 아침이면 항상 설사를 한다든지, 채소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늘 속이 편하다는 사실로 쉽게 설득이 됐다.
나로서는 김치를 비롯해 사시사철 다양한 채소를 맛볼 수 있는데다 세계 어느나라보다 다양한 요리법으로 맛을 내는 한국에 태어난 것이 행운이다. 산이 많은 나라에서 태어나 바닷가에서 자란 나는 생선을 좋아한다. 날 것 그대로건 어떻게 조리하든 생선은 모두 맛있다. 어디 그 뿐인가 콤콤한 젓갈 맛에 탄복하고 즐긴다.
이렇듯 한국인이라면 평양냉면의 슴슴한 육수부터 외국인은 손사래를 치는 청양고추 썰어넣은 매운탕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미각을 지녔다. 그게 아니라면 '담백하다' '감칠맛이다' '개운하다' '시원하다'라는 외국어로 통역할 수 없는 다양한 맛의 표현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이순신이 했던 "죽기를 각오하면 살것이고, 살고자 한다면 죽을것이다.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라는 말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최근에 이 말은 "죽기를 각오하면 더 빨리 죽고 악착같이 살고자 하면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로 바뀌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모 개그맨의 "일찍 일어난 새는 피곤하다" "참을 인 세번이면 호구된다"는 말이 더 현실적으로 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을 죽음을 불사하는 헌신이나 정신 무장을 독려하는 말로만 해석하면 안된다.
마치 음식을 달다, 짜다, 시다, 쓰다는 혀의 미뢰가 감지하는 맛으로 판단하는 것과 비슷하다. 통증인 맵다도 있고 감칠 맛은 어쩔 것이며 후각으로 느끼는 향도 배제되어 있다. 당시 이순신이 처했던 절박한 상황을 두루 살피고 군사들이 전장에서보다 군율에 의해 더 많은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그의 말이 품은 진정한 의미를 헤아리고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사람의 말을 두고 비틀고 꼬집었던 시대가 또 있었던가 싶다. 제멋대로 잘라내고 함부로 덧붙이는데 거리낌이 없다. 어쩌면 살인과 견줄만한 범죄가 분명한데 처벌이 쉽지 않은 범죄다.
설사 토씨 하나 빠트리지않고 옮기더라도 사람들마다 귀가 먹고 눈에는 막이 끼어 해석이 분분하다. 편을 갈라 힐난하고 고함지르려고만 한다. 세상 곳곳에 널린 확성기다. 두루 살피고 깊게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안으로 숙성시키려는 여유는 없고 앞다투어 내뱉으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제멋대로 대답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대화는 잦은데 소통은 막혔다.

음식의 깊고 그윽한 맛을 아는 한국인이다. 우수한 한글을 쓰는 우리가 말에 있어서만큼은 무디니 아쉽고 안타까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음식에도 풍미를 더하는 요소들이 있듯 말에도 해학과 풍자, 어감(nuance)과 은유(metaphor)가 있다. 좀더 오래 씹고 침으로 삭혀 음미하며 삼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말을 제대로 맛보고 알아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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