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잘할 수는 없다

by 문성훈

새벽녘에야 비로소 잠들었다 깨어보니 오전 10시가 다되어간다.
집안이 조용하다. 이른 아침에 아내와 아들은 병원으로 갔을 것이다. 8시부터 수술이라고 했다. 수술이라고 하기엔 약소하지만 시술은 아니라고 했다. 아들이 이전부터 코가 자주 막혀 축농증일까봐 걱정스러웠는데 비중격만곡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코안의 연골이 휘어있다는 뜻이다. 휘어있는 비중격을 바로 잡으려 간 것이다.

꼼꼼한 아들은 꽤 오랫동안 병원 여러 곳을 수소문해보고 직접 내방해서 상담한 뒤에 액셀로 작성한 자료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이비인후과와 성형외과 모두 이 수술을 한다는데 최종으로 선택한 병원은 종로의 한 이비인후과다. 아들이 내민 자료에는 대여섯군데의 병원 이름과 평가가 적혀있었다.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선택한 병원은 그 수술을 전문적으로 많이 하기도 했고, 후기 만족도도 좋았으며 무엇보다 의사와 상담해보니 상술적이지 않고 정확하며 가장 신뢰가 갔다는 아들의 평가가 있었다.
아내와 아들에게 내가 한 질문은 하나였다. "전신마취래?" 아니라고 했다. 어제 저녁. 아내는 병원에 같이 갈 거냐고 물었고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고 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보니 오후에 퇴원한다고 했다.

이른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늘 가는 2500원 짜장면집이다.
내 입맛이 저렴해서인지 아니면 착한 가격이 가성비를 높여줘서인지 맛있는 집이다. 곱배기를 시키려다 돌아오는 길에 식빵을 사야해서 보통을 시켰다. 커피와 식빵 한조각을 위해서 속을 너무 채워놓으면 안된다. 언제나처럼 짜장면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동네에는 식빵가게가 있다. 가게이름도 '우리동네 식빵'이다.
아내는 늘 이 가게에서 식빵을 사온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데 매일 아침 구워내는 식빵 맛도 좋으려니와 부지런하고 친절하다. 가게에는 손님을 위한 테이블은 없다. 간혹 카운터 한켠에서 크레용칠을 하던 꼬마가 딸아이라고 했다. 세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사는 모습이 검박하고 아름답다. 낮이라도 하루치가 다 팔리면 문을 걸어 잠그고 다음날을 위한 반죽을 하거나 퇴근한다.
식빵 종류는 다양한데 오늘은 쌀식빵 두 봉지와 우유식빵 한 봉지만 남아있었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밤식빵은 오후에 나온다고 했다.
우유식빵 한 봉지를 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네.. 지금은 쌀 식빵 두개와 우유식빵 하나가 남았.... 아... 방금 손님께서 우유식빵을 사셔서 쌀 식빵 두개밖에...네..네 알겠습니다. 오세요"
괜스레 하나 남은 우유식빵을 잘 선택했다는 고약한 심뽀가 고개를 삐죽히 내밀면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만 같다.
"아... 전화로 여쭤보고 오면 될 것을 왜 저는 이제껏 몰랐을까요."
그랬다. 식빵을 사러나왔다가 다팔려서 못사고 돌아온 날이 꽤 됐었다.
두루 챙기고 살피면 산다고하지만 놓치고 살기 마련이다. 똑똑한척 굴지만 헛똑똑이일 때가 많다는 걸 알고 있다. 다 아는 얘기라고 하지만 잘 알지는 못하고 정답은 잘 맞추지만 정답대로 사는 인생은 드물다.
누구나 그러하다. 실수를 줄이려 애쓰고 실패를 각오하고 사는 수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겉은 멀끔할지 모르지만 속은 영락없는 촌놈인 나는 한식을 좋아한다.
그것도 품과 시간을 들여야만하는 묵은지와 젓갈, 곰국 같은 것들이다. 대개의 한국 전통음식들이 그러하긴 하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한번에 많이 해야 맛이 나는 음식들이다. 조금은 남길만큼 들뿍 담아내야 더 맛있는 것들이다.
어머니 친구분 중에 유명한 식당을 하시던 분이 계셨다. 갈비탕이 참 맛있었는데 비결을 여쭤보니 한번에 커다란 무쇠솥에 많은 양을 고으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가정에서 흉내내기 어렵다고도 했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졌지만 어느 도시나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는 메뉴가 수십가지에서 백가지가 넘는 식당들이 있었다. 한번도 맛있었다는 기억이 없다. 김치찌개와 부대찌개 맛이 비슷하고 된장찌개와 청국장이 그랬다.
사직공원 근처에 숨은 맛집으로 알려진 허름한 식당이 있었다. 메뉴는 두부찌게와 청국장 두 가지뿐이었다. 커다란 곰통 두개가 화덕에 놓여있고 손님이 올 때마다 덜어서 담아냈다. 다 하기보다 하나를 제대로 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나는 메뉴가 많은 식당은 피한다.

조금씩 담아내고 각각 따로 만들어야 하는 음식도 있다.
대개의 서양 음식들이 그러하다. 한번에 내어놓지 않고 코스로 나오니 매번 조리해야 한다. 소스도 필요할 때마다 만든다. 재료 선정와 불조절, 조리사의 기교가 관건이다. 수많은 소스와 향미료가 들어가지만 나물무침에도 오래 묵힌 된장을 쓰는 한식과는 달리 즉석에서 만들어내니 비교가 된다.
나는 감히 인스턴트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라면을 끓이더라도 얇고 작은 양은냄비에 한 개를 끓여내는 것이 대여섯개를 한꺼번에 끊여서 덜어내는 것보다 맛있다.

어느 분야건 하나라도 제대로 해내려는 것을 두고 전문적이라고 한다.
병원도 빵집도 식당도 전문 분야가 있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으로 익히고 다듬을 수록 빛이 나고 깊어진다.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코 치료는 성형외과보다 이비인후과가 더 신뢰가 가고 케잌과 빵, 쿠키가 있는 빵집보다는 식빵만 만드는 가게의 식빵이 맛있다. 오만가지 메뉴의 식당보다는 자신있는 메뉴 하나를 내놓는 식당을 선택하는 것이 실패할 확률이 적다.
거기에 더해 한번에 많이 해서 담아내는 한국의 정서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나눔'이라는 인간을 풍성하게 하고 살 맛 나게 해주는 고귀한 정서가 깃들기 때문이다. 조금은 남길정도로 넉넉하게 나누는 인심을 '덤'이라고 한다.

쌀 소비가 줄어드는 식단처럼 한국인의 전반적인 삶조차 세계화되고 서구지향적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멀티플레이어를 지향하고 인스턴트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해지다보니 한가지도 제대로 못해내면서 오만가지 참견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사색하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니 걸러진 생각보다는 섣부른 단정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오늘 저녁은 묵은 지와 젓갈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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