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하다가 문득

by 문성훈

"이제 넣어도 될 것 같은데... 너무 익으면 안되지 않을까?"
"그러지 뭐"
"그럼 당신이 안으로 들여줘. 내가 냉장고에 넣을게...."
나는 주방 베란다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플라스틱 통들을 나른다. 어제 저녁에 내어 놓았던 것들이다. 정확히는 반나절씩 이틀간 했던 김장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올해 김장이 가장 늦었다.
첫날 저녁 아내는 찹쌀 풀을 쑤고 김장 속 재료와 채 썬 무로 양념을 버무렸다. 아내가 재료를 선정하고 배합비를 조절하면 내가 버무린다. 절인 배추는 숨이 덜 죽어 하룻밤을 재워야했다. 그래서 다음날 나는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일찌감치 배추를 헹구고 뒤집어놔야 물을 뺄 수 있다.
힘을 써야하거나 허드렛일은 내 차지다. 섞박지용 큰 무를 뭉텅뭉텅 썰거나 창고에 있던 용기들을 씻어 준비를 하고 마지막 뒷정리를 하는 것도 내 몫이다.

아내는 쉐프고 나는 주방보조다. 기꺼운 마음으로 하지않으면 일년동안 사온 김치를 먹어야 할 지도 모르니 쉐프의 성정을 거슬러서는 안된다. 이미 그녀는 음식솜씨 좋은 시어머니께 검증받은 수제자다. 이제 나는 아내의 김치맛 때문인지 식당 김치에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내게있어 김장은 한 해를 마감하고 다가올 한 해를 준비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애초 아내가 11월 초에 하자고 했던 김장이다. 그녀의 사정으로 차일피일 미뤄지다보다 조바심이 나는 건 오히려 나였다.

양념을 만들던 중이었다. 쪽파를 담아두었던 플라스틱 소쿠리를 건네는데 자잘한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원래의 분홍색은 바래서 희끄므레할 지경이다.
"어... 이게 뭐야. 삭았네..."
아내가 끔쩍 놀란다. 김장하는 내내 망고(반려견)의 털이 날릴까봐 몇 번이나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근처에 못오게 단속한 그녀였으니 당연하다.
"그러게. 이제 버려야겠다"
쪽파를 양념에 털어넣기 전에 발견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김장에는 대봉(홍시)을 안넣었어"
"왜?"
"아무래도 빨리 익는거 같기도 하고..."
"응" 아내는 이전까지 항상 대봉홍시를 갈아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당신 좋아하는 갈치속젓 넣었어. 그래서 맛이 진할거야 "
"응. 맛있겠네."
이번 김장에는 새우젓과 갈치속젓이 다 들어가는 모양이다.

묘하다. 플라스틱은 삭아서 몹쓸 부스러기를 남기고 젓갈은 삭을수록 맛을 내고 요긴하게 쓰인다.
그 부스러기는 어딘가를 흘러다니다 마침내 물을 오염시키고 생선의 먹잇감이 되어 언젠가는 인간의 뱃속으로 들어와 무슨 병을 일으킬지 모른다. 바늘로 콕 찍은 듯 까맣고 선명한 눈의 자잘한 새우와 제 살을 일찌감치 내어준 갈치는 마침내 젓갈로 다시 태어나 인간을 살찌우는데 말이다.
같은 소금이지만 플라스틱에 닿으면 더 빨리 삭게해서 망가뜨리고 새우나 갈치와 버무려지면 더 오랫동안 보존되고 맛이 든다.
왜일까?
플라스틱은 이미 죽은 것으로 만들어져 죽은 채 생산된 것이고, 젓갈은 살아있던 것이었으니 다시 새롭게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본디 자연의 생명력이 없던 것은 무엇으로 만들어지건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엄연하고 무서운 진리앞에 숙연해진다.

'썩는다'와 '삭는다'는 같은 듯 다른 말이다. '썩는다'는 죽고 쓸모가 없어진다는 의미이고 '삭는다'는 가능성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니 플라스틱이 삭았다는 말은 잘못됐다. 썩어서 부스러기로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죽지않고 썩는 것처럼 보일 뿐이니 문제를 일으킨다. '가식적인 썩음'이고 '가짜 삭음'이다.
발효와 부패의 차이가 그와 같다.

"지상에 존재하는 물질은 균을 통해 썩어서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이스트처럼 인공배양된 균은 원래 부패해야 하는 물질마저 억지로 음식으로 바꾼다. 균은 균인데 시간과 함께 변화하기를 거부하고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균인 것이다. p43"
자기 안에 있는 힘으로 자라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작물은 발효하게 된다. 생명력이 강한 것들은 균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명력을 유지하여 생명을 키우는 힘을 그대로 남겨둔다..... 반대로 외부에서 비료를 받아 억지로 살이 오른, 생명력이 부족한 것들은 부패로 방향을 잡는다. 생명력이 약한 것들은 균의 분해 과정에서 생명력을 잃는다. p137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와타나베 이타루>

빵의 풍미를 더하는 발효는 순수배양 효모인 이스트나 자연에 존재하는 천연 효모를 통해 이뤄진다.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해 천연 효모를 사용한다면 생명력이 부족하거나 없는 것들은 가차없이 부패시켜버리고 생명력을 강한 것들만 발효시키는 것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결코 발효할 수 없다. 생명력이 아예 없었던 물질이었기에 부패조차 하지 못하고 거죽만 썩는 흉내를 내고 가짜로 삭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찬 바다의 새우와 깊은 바다의 갈치가 지닌 원초적인 생명력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강하디 강한 것이기에 부패를 거부하고 발효되어 젓갈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땅을 움켜쥐고 자란 배추와 쪽파, 태양을 품은 고추와 버무러져 김치라는 위대한 먹거리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오래될 수록 깊은 맛을 내는 묵은지는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디 물질만 그러할까. 이미 죽고 사라졌어야 할 부패한 정신이 아직도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친일부역자들이 부정한 돈과 재산으로 살찌운 그들 후손의 정수리에서, 왜곡과 허위 거짓으로 선동하느라 치켜든 기득권의 겨드랑이에서, 동포의 피고름이 배인 방석을 깔고앉은 부정축재자의 엉덩이에서 여전히 시체에서나 날 법한 썩은 내는 진동하고 있다.
이미 생명력을 잃은지 오래인 그 구린내 나는 정신을 이식한 좀비들이 백주대낮에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썩지 않고 발효하는 정신을 지켜야 한다. 태백 줄기를 따라 만주에 닿았던 독립의 염원이, 동학의 기치가, 4.19와 5.18의 진실이 마침내 수백만의 향초로 거듭났던 그 날. 그윽하게 온누리를 밝혔던 촛불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다.
거친 땅에 뿌리를 내리고 뙤약볕과 한파를 견뎌낸 민초야말로 자연 그 자체다.
질경이만큼 끈질기고 부추처럼 스스로 강하다.
그래서 위대한 정신의 생명력을 지키고 발효시키는 것. 그것만이 우리를 부패하지않고 아름답게 살게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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