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확인하느라 노트북을 여니 포털사이트에 오른 동영상 하나가 눈 그물에 걸린다. '뭘 해도 이쁨받는 직장동료, 이유가 뭘까?''라는 제목에 흥미를 느껴서인지 아니면 영상의 주인공인 K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100만 독자를 거느린 유튜버이자 TV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강사다. 요약하면 이렇다.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정'이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첫째. 사소한 사항을 잊지말고 잘 챙겨라. 상사는 디테일까지 말해주지 않지만 결과를 받아보고서야 챙기기 일쑤지만 모든 것을 지켜보고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잘해낸다면 새롭고 품격있는 일이 주어진다. 둘째. 감정기복을 들키지 말아라. 맡은 일이나 나에 대한 신뢰를 쌓기위해서는 내 감정기복을 드러내선 안된다. 직장은 집이 아니다. 개인감정 표출은 결국 내 약점이 되니 필요하다면 자신만의 감정처리 장소를 찾아라. 결국 “잘했네”라는 한 마디 칭찬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느끼는 게 직장 생활이고 그것이 곧 '인정'이다. 그렇게 모두 영리하게 직장에서 인정받기를 바란다."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K는 29살부터 강사로 활동했다. 이전 경력에 학원 운영이 포함됐으니 대학졸업후 직장경험이라고는 길게봐도 수년이 안된다. 짧은 기간에도 탁월한 능력과 감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지만 적성에 맞지않아 일찌감치 직장을 그만뒀다니 나로서는 선뜻 그녀의 얘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K는 틀린 내용의 역사강연으로 사과한 S씨, 주식투자강연까지 하다 엉뚱한 동양화 해설로 물의를 일으켰던 C씨와 더불어 내가 사보지않는 책의 저자이자 도외시하는 대중강연자이다. 과거에는 그들의 책 한두권쯤은 들춰봤고 초기 강연도 꽤 들었었다.
S와 C는 유명한 학원강사 출신이자 각종 매스컴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팔방미인으로 활동한다. 내가 감히 평가하자면 개울처럼 얕고 바다처럼 넓은 식견을 가진(혹은 가진 것처럼 과시하는)사람들이다. 매번 인스턴트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 깊은 맛이 없고 제대로 된 영양소가 들었을까 의심이 들었다. 그래도 세상에는 라면이나 즉석요리처럼 간편식이 필요하고 요긴하게 널리 쓰이니 이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짧은 시간에 호기심과 재미를 충족시켜 시청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방송매체나 조회수로 수익이 창출되는 온라인 상에서는 내용의 질이나 깊이보다는 퍼포먼스와 예능감이 더 각광받는 걸 이해한다. 그런데 절실하고 아쉬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세지나 한창 배우는 과정에 있고 살아갈 날이 많이 남은 사람들을 위한 강연는 좀더 깊고 제대로 공부한 강사들이 맡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조언을 하고 가르침을 주는 것만큼 어렵고 두려운 일은 없다. 지금껏 쌓아온 지적 자산과 숙성된 사유 그리고 인생경험까지 통틀어 넣어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작업이라서다.
나는 K의 동영상을 보면서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그런가?' '왜지?'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을까?'등등. K는 직장에서의 '이쁨'을 얘기했다. 그런데 그 이쁨을 주는 사람을 '상사'로 한정한 것처럼 들린다.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정'이고 그또한 만사를 들여다보는 상사로부터 받는 것이라고 했다. 되도록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약점이 되니 혼자 처리하라고도 했다. 영리하고 주효한 조언인지는 모르지만 올바르거나 현명해보이는 주문은 아닌 것 같다. 거기에 가르침은 감히 논할 바가 아니다. 깊이도 성찰도 사유도 없어보이는 얘기에 진수가 담겼을리 없을테니까.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졌을 태도고 나눴을 대화에 담겼을 만한 내용들이다. 아마 직원이 아니라 상사를 위한 동영상이었다면 그녀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캔 블랜차드> 읽기를 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K는 책소개하는 유튜브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가치를 발견하고 극대화하다보면 인정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다. 상사보다는 자신을 상대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기울이고 투자해야 된다. 그것이 현대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이다. 상사를 존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동료보다 높은 위치에 두려하면 진정한 조력자를 만날 수 없다. 공사를 구분하되 자신의 감정을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 단지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를 불쾌하게 하거나 자극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전달하는 사람이 현명하고 능력있는 직원이다. 그래서 '요령있고 영리하게'가 아니라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EPL 토트넘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이 리그 100골을 기록했다. (정확히는 100번째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으니 99골이다.) 나는 100골 모두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두번에 걸쳐서 돌려봤다. 처음에는 골을 작열시키는 상황과 장면을 보기 위해서였고 두번째는 처음 볼 때 내 눈길을 끈 어떤 한 장면들을 포착하기 위해서였다. 그 장면은 손흥민의 득점 후 '골 세레머니'다. 무릎슬라이딩을 하거나 손가락으로 사각모양의 카메라 포즈를 취하는 '혼자만의 골 세레머니'가 아니라 조력한 '동료와의 골 세레머니'다. 손흥민이 동료와 나누는 세러머니는 매번 상대에 따라 달랐다. 씨스코, 라멜라, 베르나윈 그리고 케인,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어린아이 손뼉 맞춤같은 퍼포먼스나 아프리카 민속춤, 점프해서 안기는 포즈등 각기 달랐다. 걸그룹의 춤 동작만큼은 아니지만 그렇게 다른 동작들을 기억하고 맞추는 게 흥미로웠다.
'교감'이고 '나눔'이다. 마음껏 기쁨을 드러내면서도 도움을 준 동료와 나누려는 배려하는 마음이고 교감을 통해 상대를 예우하는 행위다. 특히 뉴캐슬과의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린 손흥민이 도움을 준 로 셀로와의 세리머니 후 곧바로 오리에에게 다가가 뜨겁게 포옹하는 장면은 인상깊었다. 불과 사흘전 친동생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오리에와 아픔을 나눈 것이다.
손흥민의 탁월한 성과는 혼자서 이룰 수 없었다. 같은 위치에서 수백번의 슛을 날리는 많은 연습량이 뒷받침됐지만 동료가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별무소용이다. 낙천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동료들에게 다가갔고 실전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보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초기에는 눈에 띄지않던 케인과의 조합이 시간이 흐를수록 빈번해지고 탄탄해진다. 케인은 토트넘 유소년축구단 소속으로 성장해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대영제국훈장을 받은 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이다. 말하자면 토트넘의 터줏대감이자 잉글랜드의 보물같은 선수다. 그에게있어 초기 입단한 손흥민은 '굴러온 돌'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런 케인이 지금은 역사적인 기록을 눈앞에 둔 세계적인 공격듀오로 손흥민과 손발을 맞추고 있다. 감독 교체에 따른 전략의 변화도 있었겠지만 포지션에는 변동은 없었으니 아마 초기의 '어느정도 실력인지 지켜보자'는 입장에서 손흥민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해 볼 수 있다. 현재 손흥민과 케인의 집은 2M도 떨어져 있지 않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이웃사촌지간이다.
선수와 그들을 뒷바침하는 스탭, 프론트로 이뤄진 축구단도 기업이고 직장이다. 치열한 경쟁과 선명한 공과가 드러나는 냉엄한 프로의 세계다. 선수들의 상사는 감독이다. 감독의 선택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장이 으레 그러하듯 가장 오래 함께 할 사람이 동료들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개인의 성공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이유와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다. 인정받고 싶다면 가치를 지녀야한다. 나누고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소통은 교감이 선행될 때 영그는 열매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다면 교감은 스타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