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앞에 내놓기 부끄러운 글이지만 그래도 일기 쓰듯 빠트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처음 속에 있는 얘기를 끄집어낼 때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건 서점에 가서 '글쓰기'에 관한 책 예닐곱권을 사는 것이었다. 그 중에 마지막 장까지 읽은 책은 딱 1권이었다. 나머지는 읽다 말다를 거듭하다가 끝내 서가 제일 아랫단에 꽂혔다. 그나마 읽은 책도 내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그대로 따르려하면 좀체 글이 나가지를 못했고 생각을 붙들어 놓지 못해서다. 그래서 세련되고 훌륭한 혹은 기본기가 탄탄한 글쓰기는 아예 포기한 채 지금에 이른다. (게다가 나는 체계적인 과정도 밟아 본 적이 없다)
뻣뻣하고 당찬 편인 내가 유독 글이나 책에 대해서만은 거북목이 되는 이유 중에는 가까운 사람들의 영향도 있다. 존경하는 지인은 전문 작가도 아니면서, 내가 보기에 어느 작가못지 않게 글이 훌륭한데도 매번 좌절하고 부족하다면서 10여년의 장기 계획을 잡고 매일 쓰고 있다. 책벌레인건 물론이다. 또 한참 어린 동생인 지인은 원서를 포함해서 도대체 얼마나 책을 읽어대는지 가늠이 안되는 다독가다. 가끔씩 보내오는 글을 읽으면 서늘하게 한기를 느끼거나 심장 한쪽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래도 낯 두껍게 한참 모자란 글을 공개하다못해 그들조차 주저하는 책까지 출간하는 무모함을 보인 이유는 그게 내 한계일지도 모른다는 주제파악을 일찌감치 했기 때문이고 없는 얘기를 꾸며 낸 것도, 남의 생각을 옮긴 것도 아닌 다음에야 어느 세월에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글을 쓰고 책을 낼 기회가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작용해서다.
그래서인지 나는 남의 '글'을 두고 아래로 내려다보거나 빈정거리는 태도를 보면 지레 도둑 제발 저리듯 나를 두고 하는 말같기도해서 발끈하고 배알이 뒤틀린다. 그런 사람은 대부분 인플루언서거나 학벌이 높고 자기나름의 전문영역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독 말과 글로 알랑한 명성을 얻고자 하거나 밥벌이를 하는 사람 혹은 자신의 영역 밖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다.
특히나 첨예한 이슈를 두고 날선 공방이 오가는 정치나 시사에서 그런 글이나 태도를 자주 보게 되는데 공격 대상이 되는 상대가 정치인이든 누구든 그 글을 두고 어휘 부족이나 비문임을 탓하고 문장력을 비하하는 태도는 어느모로도 좋게 봐지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글쓴이의 사유나 지적능력, 수준, 소양 운운하는데 이르러서는 콧웃음이 날 지경이다.
기고만장한 그들이 앞서 언급한 내 지인들보다 훌륭한 글을 쓴 것을 본 적도 없으려니와 객관적인 학력이나 전문성에서도 턱 없이 부족한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학력과 필력은 정비례하지 않는다. 우습게도 최근에 내 지인 중 한 분이 책을 출간하면서 추천사를 써 준 분의 글을 윤문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당연히 거절했지만 의사를 밝히기도 전에 그 추천사를 메일로 보내셨다. 한참 부족한 내가 봐도 누군가는 손을 봐야할 문장이었다. 그런데 그 추천사는 모 의대 학장이 쓴 글이었다.
10여년 후를 기약하며 절차탁마의 글쓰기를 하고 있는 지인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어머니가 스승이라 했다. 서투른 말과 투박하고 어눌한 단어에서 배우고 깨닫는다고 했다. 삶이 고스란히 배여든 몸으로 밀어 쓰는 글이 그와 같을 것이라며 탄복한다. 나 역시 그런 글들을 대할 때마다 숙연해지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게 된다. 비늘을 쳐내고 내장을 빼낸 좀전까지 살아 펄떡이던 활어같은 글이다. 오래 숙련된 솜씨로 연탄불에 구워낸 자반처럼 다른 양념없이도 밥 두 공기는 거뜬하게 비우게 되는 글이다. 시린 날 피배인 실금이 새겨진 악어등짝 같은 손으로 다룬 글이고, 연탄가스를 마시며 구운 글이라서다. 잘 벼른 칼을 쥐고 있다해서 버튼만 누르면 불이 당겨지는 가스렌지를 가졌다고 좋은 글을 쓸 수도 없으려니와 감히 남의 글을 폄하해서도 안된다.
남의 글을 두고 자신과는 생각이 다르다해서 공박하거나 잘못되거나 틀린 사실을 들어 비판하는 것을 두고 무어라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글 자체만 두고 사람 자체를 평가하고 (인격 모독에 가깝게) 비난하는 섣부른 짓은 삼가하는 게 자신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 스스로 자신이 어떤 수준, 어느정도의 존재인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아직 한번도 자신의 글을 세상에 올린 적이 없는 동생인 지인이 보내온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어떤 글은 존재를 입체적으로 증명하지만, 어떤 글은 존재를 납작하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글쓰기에서 가치판단이 적용되는 기준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글, 고유한 개개인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개는 글은 위험하다.* 나의 첫 글쓰기는 위험했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p8 '어떤 글은 존재를 입체적으로 증명하지만, 어떤 글은 존재를 납작하게 만든다.' 여기서 ‘글’을 ‘말’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생각’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어느 누구의 삶도 그렇게 납작하게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납작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 사람의 생각이, 관점이, 사고 방식이 바로 그렇게 납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