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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30. 2020

명인

19세기 초반에 활약한 이탈리아의 니콜로 파가니니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린다.
바이올린 한 대로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소리를 흉내 내거나  G현만으로 혹은 활 대신 나뭇가지를 써서 연주하는 등 놀랍고 기이한 기교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주실력으로 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손꼽히는 그는 작곡가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후세에 전해진 작품이 극히 적은 것은 자기 연주 기법이 공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골프에서 가장 완벽한 스윙을 구사한 것을 알려진 벤 호건은 '역사상 최고의 볼 스트라이커'였다. 생전에 수많은 기자들이 그의 연승 행진에 감탄하며 비법을 캐물었다. 시달릴대로 시달려 지쳐서인지 벤 호건은 말없이 몸으로 보여줬는데 각기 다른 골프채를 휘둘러 똑같은 지점에 공을 떨어뜨린 것이다.
그는 골프 서적의 바이블이라 일컬어지는 ‘5가지 레슨’이란 교습서를 남겼지만 그의 스윙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훈련 방법이 빠져 있어서다. 그 역시 비법이 공개되는 것을 달가와 하지않았던 이유가 가장 컸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비법이 전해져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외할아버지, 어머니, 현재 주인, 그리고 전수자 딸까지 4대째 레시피가 이어지는 <평안도 상원냉면>이야기다. 레시피는 병상에 누운 어머니가 알려준 것을 현재 주인인 아들이 받아 적은 것이다. 실로 복잡하고 까다롭기 이를 데 없다. 음식 얘기만 하면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으로 적어놓았던 그 기록이 없었다면 평생 그 맛을 재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맛의 달인'으로 선정되고도 상을 안받겠다며 고사했다. '아직 맛에 확신이 없고 너무 많이 부족하고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자신의 비법을 거의 남기지 않은 파가니니나 남겼어도 핵심은 감춘 벤 호건, 비법을 전수한 냉면집 어머니 모두 한결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방법이 없고,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별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레시피가 있어도 아들이 확신을 갖지못하고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만 하면 된다고, 비결만 알면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만 쫓아서는 이르지 못하는 경지가 있다. 거기에 도달하려면 고개를 들어 발자취가 향하는 지점을 봐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발자국으로 새로운 길을 내야만 비로소 명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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