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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30. 2020

귤이 들려 준 얘기

"헉... 이게 뭐야? 아빠~!"
저녁을 먹고 입가심을 하려는지 귤박스에 손을 집어넣던 아들이 나를 돌아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왜?"
"귤이 썩은 것 같애"
따뜻한 실내 온도 탓인지 식탁 옆에 둔 박스 안에 든 귤이 곪고 곰팡이가 슬었다. 다행히 그 숫자가 몇개 되지 않는다. 곪은 것들만 골라 버리려다가 그대로 두면 멀쩡한 것들도 상할까봐 성한 것들을 소쿠리에 옮겼다.
들쑥날쑥 크기도 제각각이고 껍질이 맨드르하지 않은 건 유기농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더 빠른 부패가 일어난 건지도 모른다.
같은 온도에서 한 상자에 담겨있던 것들인데 곪은 것들은 일관성을 가진다. 말랑말랑하게 잘 익은, 큰 것부터 곪았다. 바닥에 있어 잘보이지 않던 것들이고 박스에 닿은 부위부터 썩고 있었다. 딴딴하고 작은 돌배같은 귤은 바닥에 있었어도 멀쩡하다.
하나씩 일일히 닦아서 옮겨 담다보니 성한 것들을 골라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상한 건가 싶다가도 닦아보면 곰팡이 분가루만 묻은 것이다. 대중없이 상한 것만 버리려 들었다간 한번에 쓸려나갈 뻔했다. 귤 담긴 소쿠리를 차갑고 바람이 잘 통하는 베란다에 옮겨놨다.

사람사는 세상 이치와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언론이 썩었고 사법부와 검찰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 역시 공감한다. 그런데 한 방향을 보고 있어도 어떻게라는 방법론에서 갈린다.
한 박스에 담겼는데 썩은 것을 골라 내야 할까? 성한 것부터 옮겨야 할까?
가령 박스에 든 귤이 대부분이 썩고 성한 것이 몇개 없다면 성한 것을 골라 내는 게 맞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라면 썩은 것을 골라내는게 수월하다.  바람이 없는 따스한 박스 구석에서 썩고있던 크고 번드르한 것이 먼저 곪고 가장 많이 상한다.
큰 것들 몇 개만 버려서 된다면 한시라도 빨리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그 곰팡이가 번지고 번져 건져낼 게 별로 없다면 아직 성성한 것들만 골라 옮겨야 한다. 어떤 경우든 반드시 바람 불고 찬 한 데여야 한다.

한때는 가장 상품성이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던 사람들이 그 귤 하나를 두고 이제는 썩었으니 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나는 의아스럽다. 박스안의 것들 대부분이 곪았고 곰팡이가 번져있다면 그 하나만 골라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서다. 그 다음 어느 것을 골라내도 썩어 있을 확률이 높다.
차라리 어느 것 하나도 썩으면 안될 것들이라면 먼저 박스채 찬 곳으로 옮겨야 한다. 바람 통하는 데서 하나하나 닦아가면서 몇 안되는 옳은 것들에 묻은 곰팡이를 털어내고 그것만이라도 살리는 게 현명하다. 다른 것들에 에워싸여 호위 받듯 깊숙히 박힌 그 하나부터 억지로 꺼내려 들어서는 안된다. 애꿎은 성한 것들마저 그 손길에 상처 입을 것을 걱정해야 한다.
썩기 쉬운 환경부터 바꿔놓고 하나씩 살펴서 골라 내야 한다. 크고 잘 익은 것들은 이미 따뜻하고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썩어 있을 것이다. 반드시 바람 잘 통하는 소쿠리에 담아 옮겨놓는 것부터 서둘러야겠다.

찬 바람 부는데 곱은 손 촛불에 쬐어가며 귤을 수확했다.
제법 실한 것으로 골라 한 박스에 담아 북한산 아래로 보내고, 혹여 모자랄까 염려되어 180개 한 무더기는 여의도로 보냈다. 풍찬노숙하다 구들장에 맛들려서인지 어디선가 쿰쿰한 청국장 냄새같은 것이 바람결에 실려다닌다. 어쩌면 곰팡내일지도 모른다. 입주할 때 바른 청와대 벽지 안에서 곰팡이가 슬고 있는지, 국회에 깔린 레드 카펫 밑 음습한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팠던 기억, 차갑던 바닥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여전히 바깥 기온은 차갑고, 따뜻한 그 곳의 주인은 당신들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이 내어 준 곳, 허락한 자리임을 알아야 한다. 언제 내칠 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경각심을 잃어버리는 날이 곧 비워줘야 하는 만료날짜다.

공수처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공수처장 임명에도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그런데 나는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것같아 걱정스럽다. 공수처의 구성원들이 누가 될 지는 이미 정해져있는데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냐고 묻고 싶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 예견되는 구성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한계가 있고, 한계가 있는게 맞다. 무한에 가까운 권력과 동일체로 묶인 구성원들로 이뤄진 검찰이 보여준 폐해를 이미 지켜 본 우리가 아닌가.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일찌감치 집을 나서는 아내가 아파트 양쪽 베란다 창과 방문들을 열어제껴놨다. 춥지만 이럴 때일 수록 더 환기를 시켜야 한단다. 높은 층이라서인지 금새 실내 공기가 차가워진다. 아직 잠을 떨치지 못한 아이들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둘러쓴다. 그래도 건강과 위생을 위해서는 옳은 일이다.
나는 검찰이 혼탁한 사회를 환기시키는 큰 베란다 창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맞은 편 창까지 열지 않으면 그리 효과가 크지 않다. 공수처는 맞은 편으로 난 작은 창이라고 믿는다.
검찰이 제 입맛대로 열고 닫던 창으로 환기하는 시늉만 내고 있었다면 공수처가 미소하나마 그 공기흐름을 가속시키는 맞은 편 창이 되어야 한다. 검찰이라는 창만 바라보던 국민들에게 따로 난 작은 숨구멍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숨막히지 않을 만큼.... 그 만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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