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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31. 2020

0 과 1

평생 39kg를 유지하다 살이 쪄서 기뻤다는 한 아이돌 가수가 비슷하게 마른 연예인과 몸무게 소숫점 뒷자리를 두고 나눈 얘기를 들려줬다.
다른 여성 패널들이 어리둥절해한다.
"우리는 앞자리가 5냐 6이냐를 다투는데...?"

그러고보니 환갑도 안된 나이에 천단위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뀌는 시대를 건넜다. 3000년은 내게 몇만광년 떨어져 있는 행성처럼 멀고도 까마득한 얘기다.

2020년이 저물고 2021년이 오고 있다. 내일이면 뒷자리가 0에서 1로 바뀐다.
'ㅇ'과 '1'은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숫자다.
전기신호에서 0은 꺼짐(off)이고, 1은 켜짐(on)이다.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0은 거짓(false)이고, 1은 참(true)이다. 컴퓨터는 0과 1의 이진법만을 사용하는데 인간의 정신작용 또한 인식된 정보를 '참' 또는 '거짓'이라는 두 개의 환원된 정보로 처리한다는 개념이다.

나라 안팎 사정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도 헝크러지고 가라앉은 한 해였다.
늘 그래왔지만 특히나 올해만큼 "요즘 어때?"라며 건네는 안부 인사가 예사롭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묻는 이도 풀이 죽었고 듣는 이의 대답에도 맥이 빠져있기는 매한가지였다.
나는 늘 해오던대로 "나야 항상 그렇지 뭐...괜찮아"라고 대답하면서도 늑골 어디쯤이 뜨끔했다. 나를 에워싼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분노와 불안 조바심이 연신 발길질을 해댔다.

0은 소멸해서 사라지는 숫자고, 1은 생성되고 시작되는 숫자다.
세상에 가득찼던 증오와 불신, 불만은 사라지고, 사랑과 신뢰, 행복이 오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
사람들의 묵은 걱정거리는 모두 거둬가서 저무는 태양이 태워버리고, 내일 아침부터는 새로운 기대과 의욕으로 부푼 태양이 떠오르길 바란다

2020년에는 세상의 꺼져 있던( 0 / off) 정의가 다시 켜지고(1/ on),  거짓( 0 / false)이 물러간 자리를 진실( 1 / true)이 차지하게 되리라 믿는다. 2021년에는....

한걸음을 뗄 때마다 주저하게 만들던 안개가 걷히고 나면, 아름다운 숲으로 이끄는 작은 샛길이 나타나길 바란다. 숲이 품은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 나를 그린다.
그렇게 "요즘 어때?" 대신  "요즘 살만하지?"라는 인사를 조심스러워하지 않고도 먼저 건넬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쥐 파먹었던 2020년은 잰 걸음으로 사라지고,
소 걸음으로 성큼성큼 오렴. 2021년아...!

#새해인사로_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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