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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an 05. 2021

주님을 모십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일찍이 공평했던 적도 없고 지금도 공평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공평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누구는 부유한 집에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손쉽게 성공한 삶을 만끽하며 산다. 또 누군가는 열악한 환경에서 나고 자라 온갖 수모와 역경을 딛고 바라던 바를 이룬다. 물론 그 마저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는 인생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곧고 평탄하며 질주한 삶보다 굽은 데다 거칠고 험한 길을 헤치고 도달한 삶을 시샘하고 부러워해 마지 않는다. 정말 멋지고 온전한 자기만의 삶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지역에 키안티라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 집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중해의 푸른 하늘과 솜털같은 구름을 배경으로 삐죽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와 올리브 나무, 완만한 구릉을 따라 펼쳐진 포도밭.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광 속에 와이너리 하나가 있다. 1인당 35만원으로 한나절 농장 체험을 할 수 있다는데 특이하게도 4시간 정도의 포도 수확 노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Every Grape You Take' 라고 비꼬기도 한다는데 팝송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이 와이너리의 주인은 스팅이다. 그의 최고 히트곡이 ''Every Breath You Take'이다.

스팅은 영국 북동부 뉴캐슬 출신이다. 그는 조선소가 있는 월센드의 테라스하우스에서 살았다고 했다. 장남인 그는 아버지를 도와 일곱 살 때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먼 곳까지 우유배달을 다녔다고 한다. 그 시절 우연히 목격한 엄마의 불륜은 평생토록 그를 정신적으로 괴롭힌다.
대학 입학에 실패하고 버스 차장과 공사판을 전전하던 중에도, 다시 들어간 대학을 졸업하고 짧은 교사 생활을 거쳐 가난한 뮤지션의 길로 들어서게 되기까지 그에게는 음악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궁핍한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거친 선창가에서 보냈고 술을 가까이 했을 것만 같은 뮤지션의 길을 걸었지만 스팅은 원래 술과는 인연이 먼 사람이다. 유전적으로도 술이 무척 약했던 그가 와인에 빠지게 된 것은 뮤지션으로 명성을 얻고도 한참 지난 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고향 뉴캐슬은 ‘뉴 캐슬 브라운 에일’ 맥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관용어구인 “Walk the Dog”이 이 지역에서만큼은 ‘개를 산책 시키다.”란 의미가 아닌 ‘개를 핑계삼아 이 맥주를 먹으러 펍(Pub)에 간다.’는 뜻으로 쓰일 정도다.

나는 그의 성공이 부럽다. 와인을 즐기다가 와이너리까지 소유할 수 있는 재력과 유료 체험객에게 울력을 요구할 수 있는 명성이 부럽다.
그런데 정작 내가 시샘하는 것은 어려운 환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쫓았던 끈기와 온갖 역경에도 무릎 꿇지 않았던 용기 그리고 예술적 재능이다. 더욱이 이미 아름다운 곡을 짓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인데 탁월한 자서전을 쓸 문학적 재능까지 갖췄다.
그렇지만 연한 가슴에 어머니의 비밀을 묻고 신음조차 삼켰던 아버지의 고통을 지켜봤을 어린 시절과 싸구려 클럽을 전전하며 현실의 가난과 미래의 불안을 달고 살았던 지난 날의 그를 떠올리면 이런 시샘조차 마음껏 할 수 없어진다.

그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3년 뒤 16세기에 지은 대저택으로 이사를 간다. 그리고 호수를 파다가 진흙 속에서 이미 미이라가 된1600년전 어린 처녀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부모의 부음조차 애써 외면했던 그는 이 ‘호수의 여인’을 예를 갖춰 장사 지냄으로써 비로소 오랫동안 그를 옥죄던 속박과 죄책감에서 벗어난다.

우리 인생에서 술과 음악을 빼놓고 말할 수 있을까.
밥 딜런, 존 레논, 스팅을 비롯한 스타들의 술과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쓴 책을 읽다가 영화 ‘대부’에서 유독 와인과 관련된 장면이 많이 나온 이유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와이너리를 3개나 가지고 있는 와인 애호가였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았다.

세계적으로 와인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의 낮은 대접을 받고 있는 막걸리를 사랑하는 나는 ‘코폴라도 스팅도 그 비싸다는 와이너리를 가지고 있는데 왜 한국의 대중 예술가들은 전통주 양조장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의구심에서 이 글을 시작했다.
그런데 자주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내 글이 어디로 흘러 어디쯤에 고일 줄 모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우리나라 막걸리는 전국적으로 2000여종에 이르고, 와인처럼 ‘전통주 소믈리에’도 있다.
나도 주(酒)님을 사랑하고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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