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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an 06. 2021

목사님은 맥주를

모내기철. 열무 김치와 함께 들이키는 막걸리만큼 시원하고 든든한 것이 어디 있을 것이며, 지글거리는 파전을 앞에 두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나누는 담소에도 막걸리는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막걸리는 노동의 술이고, 서민을 위한 술이다.

한국의 막걸리에 견줄만한 유럽의 술은 아무래도 맥주다.
유럽 남부 지중해의 비옥한 땅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자란 포도로 담근 와인이 귀족과 왕족의 술이라면, 북부의 척박한 땅에 뿌린 밀과 보리로 만든 맥주는 평민을 위한 노동의 술이다.

또한 중세 유럽 수도원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맥주는 근대 세계 역사를 바꾼 술이기도 하다.
영국으로 망명한 카를 마르크스(1818~1883)는 소호(soho)거리에 있는 펍(pub)에서 맥주를  마시며 '자본론'을 썼으며, 그 자리에서 한 강의와 대화를 정리한 것이 '공산당선언'이다.
또한 시베리아 유배를 마치고 독일로 망명한 레닌(1870~1924)은 뮌헨 시내의 호프 브로이하우스에서 혁명을 구상했는데 그의 손에도 맥주가 들려 있었다.

뮌헨은 세계적인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도시다.
아인슈타인(1879~1955)은 뮌헨에서 고교를 중퇴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한 그가 전기기술자였던 아버지를 도와 이 옥토버페스트에서 전등가설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후 친구 아버지의 도움으로 취업한 그는 1905년 상대성이론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논문 다섯 편을 연달아 발표한다. 한껏 고무된 아인슈타인은 만취해서 난생처음 정신을 잃는데 그때 마신 술이 또한 맥주다.

심지어 2차대전을 일으킨 히틀러(1889~1945)가 탁월한 웅변술로 군중을 선동한 장소가 뮌헨의 호프집이었다. 연설을 마친 그가 단번에 들이킨 술 역시 맥주다.
뮌헨은 그들로 인해 세계를 뒤흔드는 역사의 구심점이 되었고, 맥주가 중요한 매개체가 됐음은 물론이다.

인류의 삶을 바꾼 가장 위대한 인물로 마르틴 루터(1483~1546)를 빠트릴 수 없다.
개신교에서는 교파를 가리지 않고 종교개혁의 주인공인 루터의 공적을 기리고 존경하고 있다.
마르틴 루터가 있어 지금의 개신교가 있다. 하지만 종교개혁에 맥주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1521년 4월 17일 교황의 면죄부를 부정하고 반박한 루터가 마침내 브롬스의 제국회의 출두했다. 전례로 보아 파문당한 수도사 루터는 자칫하면 화형 당할 절대절명의 상황이었다. 그런 그에게 친구가 건넨 술이 루터가 자장 좋아했던 아인베크라는 알코올 도수 높은 맥주였다.
평소 수줍고 내성적이기까지 했던 루터는 제국회의장에서 불콰하게 술기운이 올라 분기탱천해서 거침없는 논리를 펼친다. 이를 지켜보던 제후와 영주들은 마침내 루터를 지지하게 되었고 이로써 종교개혁의 봉화가 오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루터의 개혁 사상을 담은 최고의 명저 '탁상담화'(The Table Talk Of Martin Luther)는 그의 집에 놓인 50인용 탁자에서 다양한 부류의 학자들과 맥주를 마시며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그의 아내 폰 보라는 루터의 사상에 감화되어 수녀원을 탈출한 당찬 수녀였는데 수녀원에서 맥주를 제조하던 양조사(Braumeister)였다. 그런 아내 덕에 루터는 매일 질좋은 맥주 2리터씩을 마시며 엄청난 저술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맥주가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일어나지 않았음은 물론 개신교는 태동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카톨릭 성찬 전례에는 포도주가 쓰인다.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이를 사제가 마심으로써 당신의 고난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을 뜻한다. 감히 불측하게 표현하자면 음주 미사가 되겠다. 그래선지 내가 만나 뵙는 사제 중에 술 못드시는 분이 안계신다.
그런데 개신교에서는 어떤 술이건 쓰이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집안 사위를 비롯한 목사들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나는 예배 중에 목사가 맥주를 마시는 성찬의식을 넣으면 어떨까 싶다.
종교 혁명의 산실이 됐던 브롬스 제국회의에서 교회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마르틴 루터의 정신을 새롭게 되새긴다는 의미가 있으니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모르긴 해도 동학 혁명의 주역들이 모였던 회합에서는 막걸리가 쓰였을 것이다. 우금치 결전을 앞두고 나누던 농민군의 막사발에도 막걸리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막걸리는 민중의 술이고, 개혁의 술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에서 볕도 잘 들지않는 어두운 거북선 밑창에서 노를 젓던 격군들도, 행주산성에서 돌을 나르던 아낙네들도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마셨던 술이 있다면 막걸리였을 것이다.
잠시나마 시름을 잊게해 주고 허기를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술이었을테니까.

* 그래서 나는 오늘 막걸리를 마시러 갈 예정이다. (오래전 약속된 일정이긴 하다.)
중단없는 개혁을 다짐하고, 세계 역사를 바꿀 우리 국민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해.... (아... 막걸리 한 사발 하러가면서 너무 거창한 건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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