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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an 06. 2021

옛 애인 이름이 이슬이었지

사회 생활의 절반 정도를 넥타이에 끌려 다녔다. 성정이 야생마 같아서인지 넥타이는 내게 소에게 채운 고뚜레마냥 어색하고 불편한 물건이다.
돌아보니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사회 초년병 시절에는 일부러라도 새벽부터 다린 하얀 와이셔츠에 실크넥타이로 한껏 멋을 부렸다.
최근 십여년동안 넥타이를 매 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다. 넥타이는 별반 장식이랄 게 없는 남성 패션에 대미를 장식하는 소품이다. 나 역시 100여개 되는 넥타이를 가지고 있다. 그 중 삼분의 일 정도는 한국의 사업을 접고 이민을 간 사장이 한꺼번에 주고 떠난 것들이다. 내가 가진 넥타이중에 오리지널 실크에 명품들이 대부분 그것이다.
넥타이는 내게 긴장과 절도 그리고 속박을 의미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그만두면서 넥타이는 나와 멀어졌다.

여자들은 머리 끄댕이를 잡고 싸우지만 성인 남자들은 넥타이부터 틀어 쥔다.
그래서 건달들은 불문율처럼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정장을 한 건달은 얼굴 마담역을 하는 수행비서거나 최소한 중간 간부급 이상이다.
단정한 넥타이 차림은 샐러리맨의 표식이고, 흐트러진 넥타이는 일과를 마쳤거나 알코올이 어느정도 차올랐다는 신호다.  알코올이 자동차 RPM계기판의 빨간 구간에 다다르는  정도가 되면 넥타이는 비로소 셔츠 컬러를 벗어나게 되는데 때로는 머리를 동여매는 여흥 소품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넥타이 부대'라고 불렀다. 나역시 넥타이 부대를 나온 전역병인 셈이다.
넥타이 부대의 술은 뭐니뭐니 해도 소주다. 싸고 어디서나 구입이 쉽고 제법 독하다.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의 술은 싸야 한다. 다음날 출근해야 되니 빨리 취할 수있을 정도의 도수는 되어야 한다. 허용된 시간이라고는 저녁이니 요기거리가 될만한 안주와 마시기에 소주만한 술은 없다. 막걸리와 맥주는 취하기도 전에 배불러서 더 못먹는 술이다. 그리고 비틀거리다 잔을 엎기라도 하면 양도 양이려니와 얼룩으로 다음날 입을 정장을 버려 놓는다. 맑은 소주가 제격이다.

소주는 크게 두 종류다. 대기업인 주류회사가 생산하는 소주(燒酎)는 맹물에다 알콜 주정을 혼합해서 감미료로 화학 약품 냄새를 제거한 희석식 소주(燒酎)다.
그보다는 비싸고 숙취가 덜한 정통 소주(燒酒)는 군불을 때서 증류한 문배주, 소곡주, 안동소주 같은 전통주다. 소줏고리 주둥이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이슬을 모은 것이 소주다. 그래서인지 한 희석식 소주(燒酎)회사는 이슬 로(露)를 가져다쓰면서 마켓팅에 활용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주는 희석식 소주다.

소주는 3000원이다. 주류업체는 사실 별 할게 없다. 물과 몇 가지 감미료만 준비하면 된다.
우리나라 모든 희석식 소주의 주정은 한 회사가 독점 공급한다. 아주 오래전에 이 회사 일을 한 적이 있다. 숨겨진 알짜배기 회사다. 홍보도 필요없이 조용히 숨죽여서 돈을 버는 회사다.  
지금은 어떻는지 모르지만 당시에 들은 바로는 주정도 등급이 있는데 시장 점유율이 높은 회사부터 상급 주정을 가져 간다고 했다. 그래서 내게 어느 회사 소주를 마시라고 귀뜀해 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느 회사 소주를 마셔도 암반수에 타건 알카리수로 만들었건 취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 알토란같은 회사가 또 있다. 술 병뚜껑 만드는 회사다. 기계 들여놨다고 병뚜껑 막 찍어내지 못한다.
한국은 세금 탈루를 막기위해 '병마개 제조회사 허가제'를 실시하는 나라다.  2개 메이저 회사가 시장 점유율 75%를 차지하고 있다. 주식에 관심있고 안정적인 투자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관심 둘만한 회사들이다.
주정이나 병뚜껑 회사는 금주법이나 술이 마약 취급받지 않는 한 망할 염려는 없다고 보면 된다.

무릇 소주는 취하려고 마시는 술이고, 맥주는 떠드느라 마른 목을 축이는 술이다.
애인에게 차이고 친구 앞에서 눈물 콧물 짜면서 마시는 술이 소주고, 안주없이 직장 상사 잘근잘근 씹으며 마실 수 있는 술이 소주다. 고민 털어놓는 자리에서 맥주 마시는 사람 별로 못봤다. 죽자고 마시고, 살아보려고 마시는 술이 소주다.
그렇게 우리네 아버지의 눈물이 감미료로 쓰이고, 샐러리맨의 얄팍한 용돈을 털어내는 싼 소주인데 주세는 출고가의 70%가 넘는다. 그래서 담배 태우는 애주가는 국가 유공자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높은 주세가 못마땅해서인지 소주회사들은 악착같이 별의 별 수단을 동원해서 소주를 팔아 제낀다.  
우리나라에서 뜨고 있다는 이쁜 여자 연예인이란 연예인은 소주 달력과 포스터 그리고 소주병 상표에서 다 볼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이제는 소주잔 밑바닥에다 깔아둬서 안볼래야 안 볼 수 없게 한다.
그녀들이 흔들어서 마시라고 유혹하고, 꺠끗하니까 부드러우니까 맘껏 마시라고 권한다. 그 모델료와 광고비로 몸에 좋은 비타민 성분같은 감미료나 개발해주면 고맙겠다.

그렇게 서민들은 속상해서 마시고, 잊으려고 마시고, 취해서 더 마신다. 내가 볼 때 한국 기업 간의 공조는 절묘하다.
휘기적 휘기적 풀어헤친 넥타이에 셔츠는 바지춤에서 비집고 나온 줄도 모르고 선술집을 나선 술꾼들은 편의점으로 간다. 내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컨디션'으로 '상쾌한' '여명'을 맞으려면 또 털어넣고 마셔야 한다. 소주 회사들이 숙취 제거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건 다 나름의 계획이 있어서다.
소주 한 병은 3000원인데 숙취제거제는 왠만하면 5000원이 넘는다. 이리 털리고, 저리 채여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휘청거릴 밖에....

소주를 '맑은 이슬'인줄 알고 마시다간 '학'이 된 줄 착각하다 '달'이 위엉청 뜨고 난 뒤에야 집으로 간다.
요즘처럼 인적도 일찍 끊기는 겨울. 소주는 역시 저녁상에 올라 온 동태 찌게로 반주를 할 때 제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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