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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an 08. 2021

골프 이야기 같습니까?

골프 격언중에 '드라이브는 쇼, 퍼팅은 돈(Drive for show, Putt for dough)'라는 말이 있다.

스코어를 줄이는데 절대적인 퍼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인데 아마츄어는 알고도 실천하기 어렵다. 점차 고수(low handicappers)가 되면서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초심자와 하수(high handicappers)가 장쾌한 드라이브 샷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가 남의 이목이다. 홀마다 처음 날리는 샷이고 가장 긴 채로 가장 멀리 보낼 수 있어 의욕도 앞서지만 무엇보다 동반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니 장쾌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싶은 것이다.
두번째는 뒷감당 할 자신이 없어서다. 자칫 드라이브 샷에 실수를 하고나면 그 홀은 망친 것으로 간주해 버린다. 한마디로 지레 포기해 버린다. 그래서 어떻게든 드라이브 샷을 멀리 좋은 자리에 보내고 싶은 것이다.
세번째는 드라이브 샷 솜씨가 곧 골프 실력인 것처럼 착각하기 쉬워서다. 평탄한 지대에서 온 몸을 써서 풀 스윙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박인비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선수에 비해 월등히 적은 퍼팅 타수 덕이었고, 타이거 우즈도 퍼팅 감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전성기를 누렸다.
드라이브 거리나 성공률이 높은 선수가 우승하는 예는 거의 없다. 화려하지만 정작 대회 우승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이 아쉬워서인지 드라이브 샷 거리를 재는 롱기스트대회는 따로 열린다.
그만큼 골프 전체 스코어를 좌우하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퍼팅인데 아마츄어는 가장 연습에 적은 시간을 들이고 중요성을 깨닫는데도 오래 걸린다. 인도어 골프 연습장에 가보면 드라이브 채 하나만 들고 와도 됐을 골퍼들이 무거운 캐디백을 세워두고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드라이브 샷만 날리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한국 골프 렛슨은 드라이브 샷을 먼저 배우고 아이언 샷, 어프로치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퍼팅을 배운다. 그런데 골프의 본고장이라고 할 유럽과 미국에서는 정확하게 한국과는 역순으로 골프를 배우게 된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전세계 프로 골퍼중에 드라이브 샷을 페이드(fade)나 드로우(draw)가 아닌 일직선으로 보낼 수 있는 선수는 한국 골퍼라는 말이 있다.
무리하지 않는 가장 작은 동작부터 큰 동작으로 옮겨가는 순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에서부터 제대로 익히는 자세, 마인드 컨트롤로 시작해서 멘탈을 잡고 난 후 쇼맨십이 가미된 퍼포먼스를 보인다는 점에서 나는 서구의 골프 렛슨이 맞는 것 같다.

세상 살아가는 이치가 이와 같고, 사람 하는 일은 어느 것이나 매한가지가 아닌가 싶다.
어설픈 하수일 수록 남을 의식해서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으면 초심으로 돌아가 바로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핑계거리로 삼을 궁리부터 한다. 혹시라도 운이 좋아 자신이 한 일이 부각되고 칭찬이라도 받게 되면 그것이 자신의 실력인 줄 착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 일은 결국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한다.

하수일수록 이슈가 될만한 큰 건수나 발언으로 이목을 끌고 싶어한다. 정작 깊은 고민과 현실적인 구상이 없었으니 후속조치가 불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즉발적이었던만큼 반향에만 민감하니 애초부터 흔들림없이 밀고나갈 뚝심을 기대할 수도 없다. 자꾸 딴소리를 하고 다른 핑계를 댄다. 그런 일들이 좋은 성과를 낼 리 만무하고 더구나 박수를 받을 수는 없다.

기본기가 탄탄해야 한다. 지루하리만큼 묵묵히 그리고 동요없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경기를 이어가는 선수가 마지막에 트로피를 거머쥐고 샴페인을 터트릴 수 있다.
눈에 띄지 않지만 차곡차곡 스코어 관리하듯 신중하게 처신하고 하나하나 제대로 해 나가야만 한다. 일의 순서와 중요도를 현명하게 따져서 먼저 해야 하고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그리고 지금 당장은 주목받을 수 없지만 정말 중요한 일부터 챙겨야 한다. 그래야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고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

지금도 눈 내리듯 아까운 생명이 떨어지고 있다. 그 얼어붙은 맨바닥으로 쫓겨나는 힘없고 가난한 국민들이 울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그리고 당신들은...

"내가 이 답답한 글을 쓰는 동안에도, 지식인, 분석가, 활동가들이 TV에 나와서 이 문제로 특집좌담을 하는 동안에도, 국회에서 권력의 지분을 놓고 악다구니를 하는 동안에도, 노동자들은 고층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고 있다. 인간의 살아 있는 몸이 한 덩이의 물체로 변해서 돌멩이처럼 떨어진다. 땅에 부딪쳐서 퍽퍽퍽 깨진다. 오늘도 퍽퍽퍽, 내일도 퍽퍽퍽." - 김훈 / 경향신문 202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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