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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an 15. 2021

저기요

"잠깐만...."하고 멈춰세우고 싶을 때가 있다. 다만 그 사람의 팔을 잡을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서 그리고 이내 잡힌 팔을 뿌리칠 것을 알기에 못할 뿐이다.

100년도 약속받지 못한 인간이 100년 후에나 혹은 몇 십년 후에 겨우 드러날 일을 두고 죽기살기로 다투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겠다.
정작 촌각을 다투고 챙겨야 할 것들은 내쳐 둔 채 그리고 우리 삶에는 그다지 의미없는 일들로 혼란스러워하고 흥분하며 좌절한다. 한번쯤은 부질없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해 볼 필요는 있다.

시베리아에서 털가죽뿐만 아니라 치아와 내장 일부 등 다양한 신체 조직을 고스란히 간직한 새끼 털코뿔소의 사체가 발견됐다. 2만~5만년전의 것이라고 했다. 무려 3만년이라는 간극을 두고 추정할 뿐이다. 내장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어 죽기 직전 마지막 먹이가 무엇이었는지까지 분석할 수도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과학자가 아닌 나는 그 오랜 세월동안 그 사체를 보존했을 영구동토층이 녹고 있다는 사실이 더 걱정스럽다. 쥐라기 공원에서 보듯 DNA를 추출하고 우수한 과학 기술로 귀여운 털코뿔소를 동물원에서 볼 날이 온다해도 그 전까지 과연 인류가 우리 후손이 온전하게 생존하고 있을 지가 더 궁금하다.
간혹 우리는 너무 멀리 그리고 많이 알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상대의 칼 끝이 내 목을 겨누는데도 그의 눈이 맑아서 해치지는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미소짓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집안 정리에 비용을 지불하는 세상이 됐다. 내다버리는 데 돈을 쓰고, 없애는 데 고마워한다. 그러면서 머릿속에는 온갖 쓰레기와 독성 폐기물이 쌓이는데도 끝없이 받아들인다. 다분히 현대문명이 가져다 준 혜택이자 저주다.
평생 얼굴 한번 마주칠 일 없는 연예인 커플 소식에 환호하고, 한번 가보지도 않을 지역 사정에 정통한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여전히 진행중인 사건에 일비일희하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일들을 섣불리 예단해서 비난하기 급급한다.
그 일로 밥벌이를 하는 비루한 자들이 있다. 그들의 목줄을 쥐고 부와 권세를 누리는 자들이 있다. 누구는 생산을 하고, 또 누구는 퍼뜨리며 그들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에게 보호를 받는다. 마약이 그와 같다.

세상으로 열린 창들로 미세먼지가 하염없이 들어오는데도 고립될까 창 닫기를 주저하고, 노크도 없이 방문하는 불청객을 손님처럼 맞이한다.
쌓인 먼지는 뒹굴면서 의혹과 거짓으로 눈사람처럼 몸뚱아리를 키운다. 불청객은 느닷없이 강도로 돌변해 금품을 털어간다.
그래도 치울 줄을 모르고 내다버리지 못한다. 강도를 은인처럼 여기고 빼앗긴 금품을 변변찮은 사례정도로 치부한다.
정작 들여놔야 할 것들의 자리는 줄어들고 맞아야 할 손님들은 문밖에 세워두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신문이, TV가, 스마트 폰이 그리고 컴퓨터가 가리지 않고 총질을 해댄다.  

눈을 씻어야 한다. 못봐도 상관없고 안볼 수록 좋은 것들에는 눈을 감아 쉬게 해야 한다.
세상에는 우리의 눈길을 기다리는 어둡고 추운 그늘이 널려있다. 봐야 될 책과 담아야 할 장면들만해도 넘쳐난다.
무작정 들린다고 담아두지 말고 악담과 소음과 풍문이 들리는 곳은 멀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겠다. 새겨야 할 선조들의 이야기와 들어야 할 선각자의 말에 귀기울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머릿 속을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흐트러진 것들을 정리해서 빈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을름없고 심장까지 따뜻하게 데워 줄 연료와 난로가 놓일 자리가 필요하다. 살아있는 동안 멈추지 않을 뇌에는 신선한 산소와 맑은 피같은 정보와 지식, 지혜와 사랑이 돌게 해야한다. 그래야 살아있어서 살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치우고 버려라. 더럽고 누추한 정신으로 머물다 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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