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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an 21. 2021

코는 눈보다 튀어나왔다 -1

사무실의 제 방은 유리벽과 유리문으로 차단되어 있습니다.
휴일을 보내고 월요일 출근해서 제 방 문을 여는 순간 가장 먼저 저를 맞이하는 게 있습니다. 오래된 가구나 목재에서 나는 묵은 먼지 냄새입니다.

인간의 오감중 후각의 불이 먼저 켜지는 겁니다. 잠깐 환기를 시키면 이내 사라지긴 합니다만 저는 이 냄새를 좋아합니다.
어디서 나는 것인지도 압니다. 취미로 수집한 1940~50년대의 덩치 큰 진공관 라디오들과 조선시대 대패, 약저울, 책등에서 나는 겁니다. 저는 냄새라고 했지만 이것도 일종의 향이지요.
사람들은 냄새보다는 향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냄새를 더 즐겨 씁니다. 밥 짓는 냄새, 엄마 냄새 뭐 이런 식이지요. 아무래도 향은 냄새보다 더 인위적인 느낌이 듭니다.

가끔 사람들이 묻곤 합니다. "혹시 풍수지리적으로는 어떻습니까? " "가구는 어떤 형태가, 벽 컬러는 어떤 것이 더 어울릴까요?" 혹은 조금 더 들어가 "남향이 아니라서 조명에 더 신경써야겠죠?" 등의 질문입니다.
느끼셨겠지만 처음 것을 빼고는 모두가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모양, 색상, 빛 모두 시각으로 감지하는 것들입니다. 눈이 외부로 드러난 뇌 구조이고, 감각기관 중에서 70%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더구나 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고 인테리어나 디자인은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분야이니까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지나치거나 포착하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는 더 다양하고 주요한 변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제 의문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어쩌면 아파트와 빌딩으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풍수지리보다 훨씬 중요하니까요.

최근 각광받는 직업중에 쉐프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식의 대가인 분이 후각을 잃어버렸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음식을 혀의 미뢰만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도 먹고, 코로도 마십니다. 대부분은 코로 맛을 본다고 합니다. 그 쉐프는 오랜 경험과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결함을 극복한 것일겁니다. 아마도 중식에는 기름에 튀기거나 높은 열을 가하는 요리가 많아서 다른 나라 음식보다 향에 대해서는 덜 민감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믈리에라는 직업과 감별법이 발달된 포도주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와인잔을 들어 비춰보고 코로 향을 들이킵니다.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어쩌면 액체를 들이키는 행위는 목넘김을 하기전에 다시 한번 기도로 그 향을 보내는 마지막 단계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포도주를 대단히 향기로운 무미의 액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화학자도 있습니다. 그만큼 미세하고 예민한 감각입니다. <사이드웨이 Side Way. 2004)에서 마일즈가 눈을 감고 맡은 감귤, 딸기, 패션 푸루트, 또 미약한 아스파거스, 희미한 에담치즈 향이 섞여있지 않은 와인은 맹숭한 물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서양 요리에서 쓰이는 트러플에 그 독특한 향이 없다면 그렇게 비쌀 리 만무할 것입니다.

때로 향은 공간을 미뤄 짐작하게도 하고 상대를 특정시키기도 합니다. 심지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지요. 굳이 <신의 물방울>에서 묘사한 정경과 공간 이동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두 식당이 있습니다. 한군데는 하필 공중화장실과 벽을 맞대고 있는 시장통 골목의 식당이라고 합시다. 아무리 주인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가 뛰어나고 맛이 훌륭하더라도 쉽게 들어서지 못할 겁니다. 또 한군데는 샐러드바의 신선한 과일이 놓여있는 식당입니다. 현관 입구에는 은은한 레몬향이나 풀 향기 나는 향수를 뿌려놨습니다. 아마 쉐프의 요리 솜씨가 그리 뛰어나지 않더라도 만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너무 심한 비유인가요? 그렇다면 집으로 초대를 받거나 사무실을 방문했다고 가정하는게 좋겠군요. 한 군데는 집기며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정리 안된 채 널려있습니다. 또 한군데는 정돈은 잘되어 있는데 지하라서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부패된 음식냄새 같은 것이 배여있습니다. 어디에 더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요?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미국 르모인 칼리지 연구팀은 65명의 여대생을 대상으로 성별을 알 수 없는 그림자를 보여주면서 그 옆에서 물약병의 냄새(양파, 레몬, 맹물)를 맡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그림자의 주인이 어떤 성별과 성격을 가졌을지 상상해 설문지에 기입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학생들은 어떤 냄새를 맡았느냐에 따라 성별을 다르게 짐작했습니다. 양파 냄새를 맡은 학생들은 그림자를 남성으로, 레몬 냄새를 맡은 학생들은 그림자를 여성으로 판단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우리가 어떤 이와의 첫 만남에서 그의 전반적인 인상을 형상화할 때 말솜씨, 외모 등의 요소들뿐만 아니라 냄새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흔히 노인 냄새라는 퀘퀘한 냄새를 아실 겁니다. 피부에서 생성되는 '노넨알데하이드'라는 성분이 나이가 들수록 배출이 잘 안돼서 나는 냄새라고 합니다. 그 냄새가 배인 방에 들어서면 누구나 그 방 주인의 연령과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같은 인물이 쓰는 방이지만 만약 스모키 향이나 알코올 성분의 스킨향 혹은 베이비 파우더 냄새인 스위트 파우더리향이 난다면 연령이나 직업, 지적 수준을 달리 상상하게 될 겁니다.
이 얘기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제 방에 공기청정기를 끄고 향수를 가져다 놔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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