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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an 21. 2021

코는 눈보다 튀어나왔다 -2

냄새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 향수를 쓰지 않습니다만 꽤 많은 종류의 향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선물 받은 것이지요.

아무래도 향수라고 하면 여성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언젠가 TV예능프로에서 짖꿎은 사회자가 후배 여성 아나운서의 정수리 냄새를 언급했었습니다. 그 얘기가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그 여성 아나운서의 전 남편이 결벽증에 가까운 유명한 농구스타였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그녀로서는 그리 민망해야 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 사람에게서는 나는 냄새는 모낭 밑 아포크린선의 갯수와 관련되어 있고 지방에 녹습니다. 숱이 많은 머리 정수리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은 샴푸의 인공 플로랄 향보다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기분을 좋게 하거나 매혹적인 향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고대로 거슬러 갈만큼 무척 오래됐습니다.
이집트의 미이라를 향료로 방부처리했다는 역사적 사실부터 동방박사가 바쳤던 유향, 고대 귀족부터 로마 검투사가 목숨을 건 결전을 앞두고 바른 향수까지 아라비안 나이트 만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공간을 다루는 사람이니만큼 공간에 얽힌 냄새로 수렴해가야겠습니다. 곁가지를 뻗다보면 정작 하려던 얘기는 종적을 감추고 길을 잃고 헤맬지 모르니까요.

우리는 흔히 화려함의 극치 혹은 지극한 장식을 얘기할 때 궁전의 예를 많이 듭니다. 그래서 베르샤유 궁전의 엄청난 규모와 희귀한 가구와 장식품 그리고 그림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2300개의 방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궁전 어디에도 별도의 화장실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 오물들은 하인들의 손을 빌어 그보다 훨씬 넓은 정원에 수시로 뿌려졌습니다. 물론 남 녀 누구나 정원에서 일을 보는게 흉이 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궁전에 초대된 화려한 장신구와 고급 정장의 남녀 귀족들이 정원 곳곳에 쿠키의 초코칩처럼 박혀있는 장관을 연출했겠지요.
그러니 당시 사람들은 베르사유 궁전의 장관이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그 냄새부터 맡아야 했을 겁니다. 아마도 지금의 우리가 보는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이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프랑스에서 향수 산업이 발달한 이유가 달리 있겠습니까.

장미수에 몸을 담그고 살았다는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와 사랑을 나눈 방의 바닥은 장미꽃이 두텁게 깔려 있었다고 하지요. 그에 못지않게 장미향의 좋아했던 여성은 조세핀 황후였나 봅니다 . 나폴레옹 전쟁중에도 함장들이 장미를 실어나를 정도였으니까요. 나폴레옹 또한 향수 애호가였으니 황제부부의 침실에서는 향기가 가득했을 법 합니다.
그런데 정작 낮잠을 자던 나폴레옹을 깨운 건 하인이 들고온 접시의 콤콤한 치즈 냄새였습니다. 나폴레옹이 잠결에 그랬다지요." 조제핀,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못하겠어."
지금은 영어 관용구로 쓰이는 "Not tonight, Joséphine"의 의미를 아신다면 전장에서 돌아오며 황후에게 씻지말고 기다리다고 했다던 나폴레옹의 편지를 이해하실 겁니다. 현대에 이르러 향수 업계가 페르몬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데는 그만한 근거가 있는 겁니다.
어쨌건 부부 침실, 특히 수험생 자녀의 방에 장미향을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있는 동안 장미향을 맡으면 기억력이 10% 향상된다는 독일 뤼백대학 얀 본 박사의 연구결과가 있으니까요. 부부의 치매예방을 위해서도, 수험생의 학습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또 잠시 옆 길로 샜나 봅니다. 다만 한가지 기억할 만한 사실은 있습니다.
오래전 여왕과 황제의 소유였던 좋은 향을 지금에 이르러서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것도 너무 흔하게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끌리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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