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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an 21. 2021

코는 눈보다 튀어나왔다 -3

왜 공간에 대해서 인테리어와 디자인을 얘기하면서 후각에 집착할까 의문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냄새를 맡는 후각은 30일마다 재생되는 유일한 감각 신경세포일 뿐만 아니라 고도의 인지기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희집 반려견 망고만 하더라도 산책을 나가면 우선 주변의 냄새부터 맡습니다. 시각이나 청각에 앞서 후각으로 위험요소는 없는지 낯선 곳은 아닌지 파악을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각되고 기억된 냄새를 통해 대상을 이미지화합니다. 가령 비릿한 바다 냄새로 어릴 적 가족과 놀러갔던 해변을 떠올리며 미소짓게 되거나 향 냄새로 아팠던 기억 속의 장례식장이 연상되어 우울해지는 것들이 그렇습니다. 냄새로 장소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의 감정까지 느끼게 되는 겁니다.

저는 어머니의 무릎을 배고 있으면 고향집 정경과 유년 시절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다들 그러실 겁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지난 역사를 구전으로 전할 때 작은 솥에 향을 피우고 옛 이야기를 듣는 전통이 있어 나중에 그 이야기를 떠올리려면 같은 향을 피웠다거나 인디언 부족이 중요한 결정을 위한 회의에서 원로들이 담배를 돌려가며 피우면서 논의를 이어가고 합의에 이르렀던 데는 분명 연관성이 있을 겁니다.

제 방에서 오래된 가구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아마 모르긴해도 여러 냄새중에 가장 강렬해서일 겁니다. 장식장에 놓인 조그만 해태상은 늘 향기로운 냄새를 뿜고 있으니까요.
그 해태상은 예전 미얀마 출장을 다닐 때 사온 것인데 백향목이라는 귀한 나무로 깍은 것입니다. 산에서 백향목 군락이 발견되면 전 세계 향수회사 대표들이 헬기로 몰려온다고 들었습니다. 향수의 원재료가 되는 값비싼 나무입니다. 그런데 해태상의 백향목향은 오래된 진공관 라디오 냄새에 파묻혀 맡을 수 없습니다. 식당의 서빙을 맡은 직원이 향수를 뿌리지 않는 것도 요리의 원래 향을 잠식할까 우려해서입니다.

이 백향목은 성서에도 나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위해 당시 페니키아 국왕에게 밀과 향유를 주고 백향목 3만그루를 베어갔다는 기록입니다. 기독교에서뿐만 아니라 고대 이슬람 사원을 지을 때도 장미수와 사향을 모르타르에 섞어 썼다고 합니다, 종교는 달라도 성스럽고 고귀한 공간은 반드시 좋은 향으로 채워야 했던 모양입니다.
그보다 오래전인 기원전 356년에는 고대 세계의 7대 수수께끼중 하나인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기둥이 향기를 뿜으며 불탔습니다. 그야말로 1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향을 태운 셈이니 인근 지역에 그 향이 진동을 했을 겁니다.

오늘날에는 고급 사우나나 가정 욕조를 만드는데 쓰는 히노끼라 불리는 편백나무가 백향목과 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일본에서는 신이 내린 선물로 불리며 예전에는 황실 건축에만 쓰였습니다. 특유의 피튼 치드향이 심신의 안정을 돕는데 눈을 감으면 깊은 숲 속 로그하우스에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모델하우스에 쿠키향이 나도록 해서 방문객으로 하여금 마치 집에 온 것같은 편안함을 느끼도록 했습니다. 향은 이제 우리 생활 공간 깊숙히 다양한 형태로 침투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딱히 메뉴를 정하지 않고 식사를 하러 나섰다가 어딘가에서부터 풍기는 음식 냄새에 이끌려 그 식당을 들어선 경험이 없으신지요.
현대 인테리어에서도 냄새는 주효한 구성 요소입니다. 갓 구운 빵의 신선한 향이 나지않는 베이커리나 원두를 로스팅 할 때의 구수한 향이 빠진 커피 숍이라면 아무리 시각적인 연출을 잘한 공간이라도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켓팅도 성공하기 힘들겁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큰 돈이 오가는 카지노에서는 기분좋은 향이 나는 실내에서 53% 더 많은 돈을 배팅하고 머무는 시간은 30% 증가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상업 공간에서 향은 손님을 끄는 안보이는 손이고, 격이 높은 호객행위입니다.

이렇듯 현대인은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든 아니든 알게 모르게 냄새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온라인 공간에 AI 알고리즘이 있다면 실제 공간에서는 냄새가 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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