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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an 21. 2021

코는 눈보다 튀어나왔다 -4

"사장님 망하시면 안돼요."
"네?"
"아... 아니 잘되셔야 한다구요. 저는 여기가 정말 공부도 잘되고 너무 좋거든요."
말하고서도 아차싶었나 봅니다. 단골인 준수한 대학생 고객이 그렇게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주인은 잠깐 무슨 말인가 멈칫했다가 웃으며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죠.
제게 이 얘기를 전하면서 기분 좋아합니다. 원래 예상했던 고객층으로 형성이 되고 반응도 좋아서 외부 여건들이 여의치않은 상황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작년 늦가을 오픈한 '알렉스 코피스'라는 스터디 카페 입니다.
'코피스(Coffice)'에서 연상되듯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서류 작업이나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시도였습니다. 독서실의 고급화된 형태나 다양한 서비스 예컨대 커피나 캔디 제공, 복합기나 개인 락커 설치를 통한 고객 유치 전략은 기획 초기부터 배제했습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불안하고 무모한 시도였을 수도 있습니다. 흔쾌히 동의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디자이너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 이상으로 좋은 의뢰인를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저는 좋은 의뢰인을 '목적이 선명하고 이를 선의로 이루려하며 자기 철학이 분명한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규모나 조건 혹은 현장의 상황은 제게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우선은 의욕이 생기는 프로젝트여야 하고 서로의 신뢰 속에서 이인삼각 경주를 펼칠 수만 있다면 일단 출발은 성공적입니다.

규모나 여타의 조건은 나빴습니다. 오래 방치되어있던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창고로 써야할 천장도 낮은 지하실이었습니다. 벽체는 곰팡이가 점령한 지 오래이고 지하실 아래에는 정화조까지 묻혀있으니 냄새가 고약했습니다.
면적도 그 업종을 하기에 작은 편이었습니다.

저와는 이미 본 건물 전체 리모델링을 하며 인연을 맺었던 부부였습니다. 이런 상태의 지하실을 제게 부탁할 수 없다고 여겨서 전문 프랜차이즈 업체를 먼저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흡족하지 않았나 봅니다.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제가 너무 흔쾌하게 맡겠다고 하니 조금은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새로운 업종에 대한 호기심도 동하고 무엇보다 처음 인연을 맺으면서 두 사람의 인성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알고 있어서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인근 도보거리 안에는 이미 예닐곱 군데의 동종 업체가 영업중이고 규모도 훨씬 컸습니다. 게다가 지하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시장 조사와 공부 그리고 고민을 거쳐 제가 내린 결론은 '필수적인 기능에만 충실하고 서비스의 질이 높은 쾌적한 분위기의 차별화된 공간'이었습니다.
추세를 따라가거나 좀더 보완하고 향상시킨 수준의 스터디 카페가 아닌 새로운 타입을 제시한 겁니다. 물론 저를 잘 알고 신뢰하는 사람들이니 별다른 설득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발주자와 일을 하는 즐거움입니다.

과감한 레이 아웃과 배치.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디자인을 시도했습니다. 없던 화장실까지 남녀 구분해서 만들고, 이용도가 낮은 집기는 아예 없애는 대신 필수 장비와 시설은 최고급으로 설치했습니다. 다른데서는 무상이기도 한 커피를 싸지만 유로로 제공하면서 최고 품질의 원두를 쓰는 것도 같은 선상입니다. 서로 고민하고 합의하는데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다녀간 고객 만족도를 보면 쾌적하고 머물고 싶은 그리고 집중이 잘 되는 공간을 만드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 같습니다. 디자인의 완성도, 조명이나 음향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음습하고 냄새나는 지하실이라는 악조건을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시킨 점이 주효했습니다. 정화조를 패쇄하고 매 시간 내부 공기를 환기시키는 시스템과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설비에 과할 정도로 투자한 결과로 보여집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 몇 가지가 있습니다.
제게 부족한 부분이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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