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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an 21. 2021

코는 눈보다 튀어나왔다 -5

"향수를 몇 종류 쓰신다고 했죠?"
"세 가지요. 계단, 화장실 그리고 홀이죠."
그리 크지 않은 30평대의 공간에 서로 다른 고급 향수를 쓰고 있다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겁니다.

저는 카페나 식당 같은 요식업이나 다중 이용시설은 여성 고객의 취향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저는 여성이 아닙니다. 나름 오랜 경험과 공부를 통해 다른 남성들보다는 좀더 이해의 폭이 넓고 깊다고는 생각하지만 한계가 있을 겁니다.

한 자리가 아쉬운데 그렇잖아도 작은 공간에 남녀를 분리해서 조금씩 다르게 디자인한 화장실을 설치한 것이나 (저는 처음 공동화장실도 제안했습니다)  향기에 많은 신경을 쓴 것은 (저는 그보다는 냄새의 근원을 차단하고 환기에 골몰했었죠)  다분히 부부 중 여주인의 조곤하지만 단호한 의지를 감안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는 데이터로 나타나지 않는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생각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알렉스 코피스에 들릅니다. 집중이 잘 되어서 어떤 작업이든 진도가 잘나갑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다가 막차를 타고 돌아오기 일쑤입니다.
어느 날인가 중앙에 놓인 대형 테이블에 앉아있다가 어디서부턴가 은은하게 번지는 기분좋은 향기를 음미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였구나. 빠트릴 뻔 한 작은 조각이었네.'

지하란 걸 의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진입하거나 홀을 쾌적하게 느끼게 되는 것은 시각적 이미지나 선별한 감미로운 음악 때문만은 아닙니다. 화장실을 청결하게 느끼는 것은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를 하는 정성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계단을 내려오며 무의식중에 맡게 되는 풀향에 이끌려서이고, 집중이 잘 되는 것에도 하루 두 세번 손님이 드문 시간 뿌려놓는 과하지 않은 꽃향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론이 실제화되고 지식이 체험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좋은 냄새는 무의식에 작용해서 말없이 속삭이고 행동으로 이끄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미세한 꽃 향기가 있는 방에서 쓴 글은 향기 없는 방에서 쓴 글보다 '행복'에 관련된 단어가 약 3배 많이 사용되고 (뉴저지주 렛거스 대학 하비랜드 -존스 박사의 연구)
컴퓨터를 앞에 둔 집중도 조사에서는 페퍼민트 향을 맡은 그룹이 산소를 공급받은 그룹보다 25% 더 높았습니다.(워싱턴/ 신시네티 대학 조사 결과)
비슷한 여러 실험에서 타지치는 속도와 일의 효율이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들이 있습니다. 제가 알렉스 코피스에서 글을 쓰거나 서류를 작성할 때 생각이 막혀서 멈칫하거나 일을 못마치고 나올 때가 없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겁니다.

저는 향기 전문가는 아닙니다. 향수를 즐겨 쓰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냄새가 지닌 무한한 힘을 믿습니다. 후각이 얼마나 우리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한 감각기관인지도 압니다. 우리는 현대를 살아가며 부지불식간에 냄새에 이끌리고 행동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향수 업계에서 향수를 제조한 사람은 익명으로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던킨도터츠가 2012년 한국에서 시행했던 향기 마켓팅은 놀랍습니다.
'Flavor Radio' 으로 명명된 이 마켓팅으로 던킨 도너츠는 편중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커피 매출 증가라는 목표를 달성시켰습니다.
아직 몸만 깨어난 출근길 시내 버스안. 라디오에서 던킨 도너츠 광고 멘트가 흘러 나옵니다.
"던킨커피가 이번에 내리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그와 동시에 버스안은 커피향이 퍼집니다.
정류장에 내리면 내리면 눈 앞에 던킨 도너츠의 커피광고판이 보이고 가시 거리안에는 던킨도너츠 매장이 있습니다.
이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지각이 예상되거나 커피를 안마시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청각과 후각 그리고 시각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이 마켓팅은 마침내 2012년 칸 라이언즈 상까지 수상하게 됩니다.

저는 괴팍하다고 할 지 모릅니다만 갓난 아기의 입 냄새를 맡는 걸 좋아합니다. 물론 제 가족이나 친인척들의 아기에 해당됩니다. 잊혀졌던 풍족하고 편안했던 유아기로 돌아가 아득해집니다.
사랑만 받던 아기도 자라 어느덧 사랑을 하게 될 나이가 됩니다. 키스 역시 서로의 냄새를 맡는 행위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의 어느 부족들의 말에는 '키스'와 '냄새'가 같다고 합니다. 술도 마십니다. 어쩌면 술은 자칫 불쾌할 수 있는 상대의 냄새를 안맡으려고 후각을 마비시키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서로의 냄새에 이끌려 사랑을 나누고 아기도 낳습니다. 그 아이는 엄마의 살 냄새를 쫓아 젖을 빨다가 포만감에 잠듭니다. 그 아이는 자라면서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엄마 냄새를 맡으며 안정을 되찾고, 아버지의 스킨향을 동경하며 자랍니다.

세상에는 스쳐 지나지만 붙잡아야 할 순간이 있듯 곁에 늘 맴돌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는 냄새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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