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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Feb 04. 2021

겉과 속

이사오기 전 아파트 1층에 살 때 7층에 사는 부부는 하루가 멀다하고 싸웠다.
부부싸움하면서 왜 창문은 열어두는지 모르겠다고 아내는 의아해했다. 그 집 아이가 우리집 작은 녀석 또래였는데 아이들을 놀리다가 그집 여자를 만났던 적이 있었나보다. 담배를 피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는데 아이들 앞이니 조금 멀리 떨어져서 피우는 게 어떻겠냐고하니 이내 수긍하고 공손하게 자리를 피하더란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는 통화 내용에 분이 안풀렸는지 상대방 욕을 무심결에 뱉었다는데 남편으로 짐작되더라는 얘기를 했다.
우리 부부로서는 그 집이 유독 싸움이 잦다는 것. 여자가 보인 행동과 태도로 그리 유순한 성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간의 다툼을 두고 섣불리 자잘못을 가르거나 그 부부의 삶을 평가하고 끼어들 수는 없는 일이다.

개인사가 그러할진데 확장된 국가의 문제는 더욱 조심스럽고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끼치는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상에 관한 글을 대하다보면 가끔 피상적인 현상만으로 함부로 재단하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책으로 배우거나 조금 더 해당분야를 공부했다고 해서 그 은밀한 내막과 숨겨진 진실까지 알 수가 없는 것이 인간사이고 국가의 문제다.
그래서 늘 가려서 말하고 쉽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한다.
군부독재, 쿠데타는 우리에게도 낯익은 단어다. 인터넷과 방송은 장애가 일어나고 수치는 다시 구금됐다. 그 역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면들이다.
그런데 미얀마는 한국이 아니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국민들의 정서를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는 우리로서는 남의 집 부부싸움으로 이해하는 게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싶다.
불과 얼마전까지 우리 언론은 로힝야족 탄압을 묵과하는 수치를 질타했다. 하지만 로힝야족 문제가 영국 제국주의의 식민정책 때문이었음을 파헤친 보도는 접하기 힘들었다. 서방 열강이 주도한 세계 역사, 미얀마의 역사, 민족 구성, 국민 정서, 관련 주변 국가의 방기는 접어두고 로힝야족의 인권 문제에만 주목했다.
통증으로 고통받는다고 진통제만 놓고 병의 원인과 제대로 된 처방을 하지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는 쿤사가 밀림에서 내려와 양곤 시내를 승용차로 활보할 무렵 몇 차례 그 나라 출장을 다녔왔다. 당시에도 수치는 연금상태였고 군부가 장악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연유로 군부의 최고 실세와 대면해서 많은 얘기를 들었고 그 자리에서 목도한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일반 서민의 생활상과 정서를 이방인의 시선으로 돌아볼 만큼의 시간도 보냈다.
당시 한국인인 나로서는 군부 지도자의 경호원이 마약조직의 행동대장 출신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고, 체포됐다는 국제 범죄자인 마약왕 쿤사의 승용차 대열이 양곤 시내를 활보하는 게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가난한 서민들의 시선으로 본 군부 독재와 마약 재배, 쿤사에 대한 평가는 내가 국내에서 듣고 읽은 내용과 너무 달랐다.
군부의 정부 운영방식도 우리나라의 군부 독재와는 사뭇 달랐으며 중앙 정부와 주 정부간의 관계 또한 그러했다.
수치는 국부 아웅산의 딸이지만 아웅산이 암살당할 때 불과 두 살이었다. 영국에서 공부하고 편안한 가정을 꾸리다 고국으로 돌아 온 것은 마흔 세살 무렵이었다. 그것도 어머니 병간호가 계기가 됐다.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바깥에서 보는 것과 그 안에서 겪고 있는 실제 상황은 다르다는 것이다.
쿠데타도 우리가 알고 있는 쿠데타와는 양상이 다르다.
우스개소리로 총성 몇 번 울리면 일반 국민들은 "아 오늘 누군가가 쿠데타를 일으켰구나"하고 다음날 아침 일상처럼 출근한다.

언젠가는 우연히도 태국에 쿠데타가 있을 때 방콕 시내에 있었다. 한국에서는 떠들썩한 국제 뉴스로 화면을 장식했던 시위대가 집기로 쌓은 바리케이트가 불타는 장면을 눈 앞에서 보고 있었다.
교통체증으로 차가 막히고 눈 앞의 바리케이트와 시위대를 보고서야 쿠데타가 난 걸 알았다. 그런데 우리 일행은 그 날 저녁 방콕시내 골목에서 식사를 했다. 문닫은 식당은 볼 수 없었고 시위대와 군인들 앞을 오토바이 탄 시민들은 무심히 지나다녔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쿠데타는 국왕의 승인을 받지못해 무위로 끝났고 주도한 장교들은 다시 복귀했다.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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