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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Feb 03. 2021

늬들에게 묻는다

"잘한다 잘한다쿠이 요강 딲아가 찬장에 넣는다카드만..."
며느리를 들였습니다. 처음하는 큰집 살림이 손에 익었을리 만무합니다. 그래도 집안어른은 내 식구 된 사람 어여삐 여겨 밥이 설어도 잘한다, 제사 나물을 고추가루로 버무렸어도 수고했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가마솥은 수십년 달궈서 돼지기름으로 길들여놓은터라 잘 부시기만해도 됩니다. 설겆이하다 대접을 깨도 서툴러 그러려니, 살강에 올려놓은 사발에 밥풀이 말라붙었어도 수고했다 말해 준 게 화근이 됐나 봅니다.
마침내 제가 정말 잘하는 줄 알고 요강을 닦아 찬장 안에 넣어두고는 칭찬받기를 기다립니다. 이러다간 가마솥도 붉은 녹으로 덮힐 날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잘한다 잘한다고 하니 요강 닦아 찬장에 넣는 며느리'란 속담의 유래입니다. 꼬맹이적 외할머니께 들은 속담이니 족히 40여년이 흘렀는데 옛 어르신 말씀은 흘려들을 게 별로 없습니다.
황망하게 세상 떠난 노회한 어른이 살아있었으면 집안에 들이지 않았을 철딱서니없는 것들이 설치는 짝이 볼썽사납습니다. 남은 어른마저 심상해서 곰방대 물고 뒷전에 나 앉았으니 제 세상이라도 만난듯 활개칩니다.
새파란 것이 동네 어르신 문상 안가는 건 자랑삼아 떠벌리더니 제 집안 일은 간섭말라 팔소매를 걷어부치고 눈을 부라립니다.
집안 일이니 남들이 뭐라 한들 귓전으로 들을테고,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디 남 얘기 귀담아 새기겠습니까.
다만 한때는 가난 떨치고 가세가 일어서려던 이웃집 일이고보니 남일 같지 않아서 혀를 차게 됩니다.

시나브로 울컥하던 뱃심은 사그라들고 겉잡아 보던 것들이 명료해지는 나이가 됐습니다. 풋장에 옮겨 붙을 잉걸불이라도 되려면 분노와 절망에 젖어 있어서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담 밖 소식에는 귀를 막고 헛기침도 안할 작정이었는데 또 이렇게 잔망스런 짓을 하고 맙니다.
민달팽이도 장독 뚜껑에 제 지나간 자국 남기는데, 하물며 한 사람 살아온 궤적을 문대버릴 허물이라면 세상사람들이 고개 끄덕일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몹쓸 짓을 했길래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했고, 차 기다리던 짧은 겨를에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볕 드는 자리 잘 닦인 길 마다한 수십년 인생과 맞바꿔야 했는지 궁금한게 당연합니다.
제 아무리 세상사람 수군대는 소리가 듣기싫다 한들 산 목숨 끊을만큼이야 하겠습니까. 살아온 삶이 허물어지면 그림자고 죽은 목숨입니다.

제 몸 태워 세상 데우려고 몇 십년을 춥고 그늘진 바닥을 마다않던 사람들인데 이렇게 재도 되기 전에 꺼트리고, 발로 차버려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개나리 원피스로 깔롱 부리면서 갑질부터 익힌 게이머나 정작 살을 에는 겨울은 제대로 나보지도 못한 어설픈 인권운동가. 그 쭉정이 몇 가닥으로는 아궁이 불도 못댕깁니다.
비록 하얗게 되기도 전에 꺼져버렸고, 새까만 채로 발에 채이게 됐을망정 그런 쭉정이 몇 섬으로도 견주지 못할 아깝고 귀한 연탄이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 옛날 들었던 말 중에 "집안에 새사람 잘못 들이면 가문에 망조가 든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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