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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Feb 05. 2021

비정한 균형

"언제였는지 아기사슴을 찢어발기는 사자 곁, 멀잖은 곳에 어미사슴이 우두커니 서 있는 화면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늘상 있는 생태계의 사건인데 그때 나는 자연이란 어리광부릴 품속도 아니거니와 절대자로 두려워할 필요도 없으며 다만 자연은 비정한 균형이다. 균형으로 긴장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 박경리>

내가 거스르지도 따지지도 않고 존경하는 박경리 선생님이 물질만능의 자본주의가 오늘날 우리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가를 얘기하시다가 언급한 대목이다. 견고한 균형의 긴장관계인 자연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끊는데 주저하지 않은 생명체는 물론 인간이다.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듯한, 인형으로도 많이 만들어진 귀여운 하프물범이란 동물이 있다.
캐나다 북동쪽 연안부터 그린란드, 북대서양, 북유럽 일부 연안과 북극해 주변의 추운 곳에 산다.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은 생후 2주~3개월의 하얀모피(White coat)가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피 때문에 어미젖을 떼고 다른 걸 먹어  본 적도 없고, 아직 헤엄도 못치는 이 새끼들이 사냥철에 잡히는 하프물범의 98%를 차지한다.  심지어 천적을 만나 본 적도 없어서 자신을 때려잡으려는 사냥군에게 다가가고 애교를 떤다.

사냥할 때는 모피가 상할까봐 몽둥이나 '하카픽(Hakapik)'이라는 곡괭이 비슷한 도구로 두개골을 내려친다. 산채로 껍질이 벗겨지고 맨살로 하얀 유빙에 피를 뿌리며 죽어간다. 그 참상은 동물보호회원들이 찍은 사냥장면이나 영상을 보도매체에서 그대로 쓸 수 없을 정도다. 지금은 동물보호단체의 오랜 노력과 세계 각국 시민들의 동참으로 그 숫자가 대폭 줄었다.

나는 어설픈 동물보호론자 흉내를 내려는 게 아니다. 하나의 사건에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쉽게 선악을 구분지을 수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주요 타겟이 된 캐나다 펀들랜드주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들과 쟁점 그리고 주요 관계자의 말을 정리해서 옮기면 이렇다.

1. IFAW(국제동물보호기금) : "동물에 대한 사랑을 동물에 대한 사랑으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넓혀가자는 것입니다" 1969년 창설되어 물범사냥의 잔혹성을 알리는데 기여해서 캐나다에서 상업적 사냥을 끝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하프물범 사냥꾼 : "30년 동안 우리 가족 생계비를 줄 것인가? 우리의 전통이다. 당신들은 소나 돼지를 잡아 먹지 않는가?" 실제 그들은 번식기 2~4주동안만 사냥을 한다. 물범 사냥으로 벌어들이는 수입 역시 연간 수입의 5%미만이며 지역경제의 1%도 안된다. 실제 주수입은 어업이다.

3. 캐나다 정부 : "물범사냥은 일부 어민들에게는 중요한 문화적, 전통적 가치가 있다. 이는 국가고유 산업이다." 캐나다는 사냥 쿼터량을 해마다 줄이고 있지만 해양수산부장관등 정부관료는 물범가죽의 유럽 판로가 막히자 중국을 비롯한 극동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런데 캐나다 전체 국민의 85%는 상업적 물범사냥에 반대한다.

4. 모피 가공업자 : "우리 직업은 2000년을 이어왔다. 암살위협에 시달리지만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실제 막대한 수입은 이들이 올리고 있으며 이 자금으로 캐나다 정부에 로비를 하고 정부가 수백만달러의 세금을 사냥보조금으로 지급하게 한다.

5. 캐나다 정치인 : "우리 지역의 대구어획량이 줄은 것은 이것을 먹이로 하는물범때문이니 개체수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물범사냥이 금지되면서 지역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구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어획량이 줄어든 것이다. 그로 인해 어부가 가난해지고 낙후된 지역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당선과 지역여론을 위해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정작 이 논쟁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들이 있다.
캐나다 정부의 핑계인 오랜 세월 전통으로서 물범사냥을 해왔던 캐나다 이누이트족(에스키모)이다. 실상 그들은 사냥인구의 3%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머지 97%는 상업적 사냥꾼이다.
더구나 이누이트족은 애초부터 새끼표범을 사냥하지도 않고 산채로 가죽을 벗기지도 않는다. 사냥을 통해 그들이 쓸 가죽과 음식을 얻는 문화를 지켜왔을 뿐이다. 지금 그들은 생계수단을 박탈당했고 음식문화마저 파괴당했다. 공동사냥, 공동분배를 통한 결속력, 전통의 자부심 그리고 사회적 유대감은 급격히 붕괴되고 식문화까지 바뀌어 건강마저 나빠진 것이다.
이런 급속한 전통체제의 붕괴와 사회적 구심점 상실은 청소년 자살과 마약복용, 알콜중독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이누이트 사회는 완전히 정체성을 상실하고 철저하게 파괴되어 지금은 무기력하게 연금이나 받아먹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 자체로서 북극 자연의 먹이사슬의 한 축이었고, 자연의 일부였기에 자연보호나 동물애호가 필요없었던 이누이트족이 최대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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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IFAW(국제동물보호기금)는 전세계 70만여명의 후원자를 갖고 있으며 미·영·불등 7개국에 지사를 두고 40개국이 넘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브라이언 데이비스는 65년 물개영화를 만들던중 남획현장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IFAW를 창설해서 1983년 유럽경제공동체(EEC)의 하프물범 가죽의 수입을 금지시켰다. 이를 계기로 그는 수십만불 수입을 올리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당시 IFWA와 협력했던 그린피스 캐나다 대표 패트릭 무어는 그린피스를 탈퇴하고 로비스트가 되어 "원전 전도사'로 한국도 다녀갔다.
또한 물범사냥 반대운동 확산를 위해 브라이언 데이비스가 끌여들였던 브리짓드 바드로는 잇단 구설수로 동물보호단체에 제명당하고 지금은 백인우월 극우정당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과거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말미에 "동물애호가라기 보다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라고 한 말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지식인들은 그렇게는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사명감으로 거룩하게 포장하는 것이 그들의 습성인 것 같아요.
더러의 지성은 "흥분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나? 그래도 내일 해는 뜬다." 하고 냉정하게 혹은 익살스럽게 문제를 물리칩니다. 소위 처세가들이지요."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 박경리>

☆ 일본이 자행하는 돌고래사냥도 끔찍하다. 사냥장면을 높은 장막으로 막는 것도 부족해서 요즘은 척수를 끊고 마개를 막아 피를 덜흘리게 한다. 피바다로 인한 국제비난을 덜 받으려는 일본다운 꼼수다.
지능이 높은 돌고래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서서히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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