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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Feb 15. 2021

이런게 2차 가해다

" ㅇㅇㅇ 되게 똑똑한거 같애. 운동만 했을텐데..."
"스포츠라도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정도면 운동실력도 있었겠지만 명석한 두뇌와 공부에 남다른 노력를 했다고 봐야지..."
요즘 TV 예능프로에서 운동선수 출신들이 맹활약중이다. 일찌기 그랬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기성세대에서 예체능을 한다고하면 학업성적이 낮거나 학력과 무관하게 지적소양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퍼져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데뷔했으면 입학이 수월한 연영과가 아닌 타과에 지원해 합격한 배우가 있는가 하면 바쁜 연예활동 중에도 학업에 충실했던 미담의 주인공도 있다.
스포츠계에도 3개 국어를 하고 유럽 최고의 석사과정으로 불리는 FIFA마스터 과정을 마친 축구의 박지성과 불의의 사건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혼자 힘으로 영어를 마스터하고 학위를 따서 FIVB 국제 심판이 된 배구의 강주희 같은 이도 있다.
이런 이들로 인해 일반인의 편견 내지는 인식이 불식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느 석사출신 연예인은 자신의 무식을 캐릭터화시켰고, 한때 한국을 쥐락펴락했던 어떤 극성 엄마는 딸을 승마로 대학에 부정입학시켰다는 의혹에 더해 성적까지 따지는 기염을 토했다.

친구의 아들은 선천적으로 심장병이 있었다. 어릴 때 한번, 대학입시 전에 또 한번 인공심장을 갈았다. 운동장을 달리지는 못하지만 항상 쾌활하고 영민한 아이라고, 공부를 잘한다고 했다. 그 아이가 서울 상위권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부모도 훌륭하지만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으면서도 꿈을 놓지 않은 그 아이가 더 대단해보였다.
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는 한 엄마가 딸이 입학할 고등학교의 정보를 알고 싶어하는 글을 봤다. 휠체어 통학을 시키니 학교 분위기나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이 궁금해서다. 그동안의 글을 통해 사랑 충만한 가정임을, 장애우를 위한 협동조합까지 운영할 정도로 씩씩한 엄마란 걸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가정에서 자랐으니 딸 역시 장애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꿈을 쫓으리라 믿는다.
소박하고 정직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다른 공기를 마셔 볼 필요가 있다.
한 유력정치인 엄마를 둔 딸의 대학성적이 조작됐다고 해서 시끄럽다. 지난 총선에서 유세차량에 태워 찬조연설을 시켰던 장애를 가진 딸이다. 딸의 대학입학에도 잡음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과거 시장선거 후보 유세중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알몸인 장애아동을 씻기는 장면을 연출해서 구설수에 오른 그녀다. 장애를 가진 딸의 교육문제가 정치 입문의 계기가 됐다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해를 넘기고도 그녀의 아들과 전직 장관의 딸 대학 입학문제로 여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터진 성적조작건이다. 이 모두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기회의 불평등, 부모찬스로 대변되는 불공정한 사회시스템, 부의 상속을 넘어선 지위의 상속까지 따져 물어야할 고질적 폐단이 아닐 수 없다.

마칠인삼(馬七人三)이라는 승마종목 특기생으로 대기업이 제공한 말을 타고 혹은 면접에서 부모 신분을 밝히고 부정입학했다는 의혹을 받은 학생들과 부모가 있다.
그들은 실력으로 정면 승부를 택하거나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체육학과생과 장애학생 그리고 그들의 부모에게 1차 가해를 한 것이다.

2차 가해는 일반인들의 편견과 왜곡된 시선에서 비롯된다. 힘있는 부모나 무력한 교수에 의해 조작의혹을 받는 장애학생의 성적, 부실한 학업성취에도 불구하고 대학 졸업장을 거머쥔 스포츠 스타들로 인해 힘든 과정을 거쳐 부단한 노력과 열정으로 실력을 갖춘 장애우와 선수들마저 도매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2차 가해는 은밀하고 넓게 확산되며 불특정다수가 무심코 저지르게 된다.

이러한 가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고 무차별적이라는 점에서 안타깝고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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