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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Feb 16. 2021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렇다

80년대 중반. 대학입시 원서를 내러 왔을 때인지 아니면 입학 후 새내기 무렵이었는지 아슴푸레한데 세운상가에 갔었다.

시골 촌놈 눈에 별천지인 세상. 속된 말로 처녀불알도 구할 수 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다. 좁은 통로를 오가며 사전 탐색나온 좀도둑처럼 힐끔거리며 돌아다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외부 계단이 연결되는 넓은 베란다 같은 곳으로 갔다. 부비적거려 앞자리를 차지하고 보니 시골 약장수같은 이가 사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애들은 가라~!" 란 말에 움찔할 나이는 이미 지났다. 그는 나훈아의 거시기를 들먹였고 김지미란 이름도 등장했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나는 시종 바닥에 놓인 물건만 응시했다. 콜라병 주둥이 위에 낙타눈썹이란 걸 올려놓고 다시 그위에 달걀을 세워놓은 것이었다. 그는 말머리에 달걀이 콜라병 안으로 들어갈 것이니 잘 보라고 했던 터였다. 비둘기가 나타나는 마술사의 상자라도 보듯 뚫어지게 그것만 응시했다.
어느덧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구경꾼들이 하나 둘 떠나갈 때도 그것은 처음의 상태 그대로였다. 그는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더니 고장난 테이프 레코더처럼 내가 이미 들었던 얘기를 순서도 틀리지 않고 반복하기 시작했다. 나는 꿈쩍도 않고 그 물건을 지켜볼 뿐이었다.
'혹시 이 사람이 까먹은건가?' 아니다. 그는 다시 달걀이 콜라병 안으로 들어갈 거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윽고 마무리 멘트가 나올 즈음 내가 큰 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이 달걀 언제 들어갑니꺼? 아까부터 지켜봤는데예....."
그의 인상이 구겨지면서 입은 앙다문 채로 다가와 낮은 소리로 윽박질렀다. "저리 안가! 꺼져. 이 자식이...." 복화술도 하는지 몰랐다.
그 사람 눈에도 '애들은 가라!"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컸었나 보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유급을 겨우 넘기는 학점에 엉덩이를 차여 입대할 때까지 무엇을 배우고 고민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매캐한 최류탄 냄새와 집어들었던 깨진 보도블럭의 차가운 감촉만 남아있다.
고민?
그런게 있었던가? 돌아보니 즉흥적인 울분, 다분히 감정적이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월남파병을 갔다 온 중학교 때 체육선생님이 그랬다. "영화에서처럼 처음부터 고개 내밀고 총 쏘는 놈은 아무도 없어. 다 거짓말이야. 전부 총만 올려놓고 아무데나 갈기지. 그러다 옆 전우가 피흘리고 쓰러지면 그때서야 고개 내밀고 쏴대지. 미친듯이.... 눈이 홰까닥 도니까..."
내가 그랬던 건 아닐까 묻곤 한다.
수업? 공부?
수업과 시험거부에 앞장섰던 게 나였다. 그래도 공부를 하기싫어서, 시험을 안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닌것 같아 덜 부끄러울 뿐이다.
복학해서 허겁지겁 빵구난 양말 꼬매듯 학점 때우고 굳은 머리로 고시공부하듯 교재를 통째로 외우다시피 시험에 대비하다보니 청춘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원리, 이해, 응용은 물론이고 사유, 성찰 따위는 꿈도 꾸지 못했다. 내가 어디 서있는지 발 끝을 내려다 보지도 못했으니 어디로 갈지 하늘을 올려다 보기나 했을까?

보고 싶지 않아도, 들으려 하지 않는데도 보이고 들린다. 내가 어쩌지못하는 이발소에서 그리고 목욕탕과 중국집 종편 TV화면에서 그리고 노트북을 켤 때마다 뜨는 첫 화면에 박힌 기사의 활자들.
정치평론가들을 보면 오래전 세운상가를 기웃대던 내 모습이 보이고 하릴없이 장기훈수 두다 퉁을 듣는 탑골공원 중늙은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다 일당 준다는 말에 어디로 무엇때문인지도 모른 채 우루루 몰려가니며 마치 제 일처럼 핏대를 세우기도 하고 때가 되면 무료급식소를 찾는 사람들 말이다. 세상이 좋아지다 보니 정치권 언저리를 기웃댄 덕에 급식소가 늘어나서 반색하는 것만 같다.
그들이 하는 말과 예측은 우리집 아이들이 키보드만 두드려도 더 많이 알 수 있는 것들이고, 미아리 점쟁이보다 맞히질 못하는데도 사람들이 코를 박고 보고 듣는다.

누군가 그랬다. '민주 건달'이라고... 제대로 공부를 한것도 실제로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학벌이 계급장이고 복역한 기록이 훈장이다. 뭘 아는지 지금도 공부는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훈장이 빛 바랠까봐 광택내는 데만 여념이 없다. 사람들은 그게 궁금한 게 아닌데 알아주길 바라고, 그 제복만 입으면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이트클럽은 그 지역을 어느 조직폭력배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간판이 바뀐다. 숫컷 개가 영역 표시하느라 오줌을 싸지르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판도 그렇게 간판 바뀌면 제복 갖춰 입고 영업상무를 하고, 하다못해 입구 기도라도 할 수 있으니 앞다퉈 충성 경쟁을 한다.
짐짓 물러났노라 했으면서 틈만 나면 아직 죽지않았노라 끼어들고 참견한다. 달리 갈 데가 없어서다. 아무데도 불러주지 않으니 헛기침이라도 해야 누가 돌아봐 줄 것 같아서다.

하루하루가 젖은 폐지처럼 무거운 사람들, 텅빈 테이블만 닦을 뿐인 사람들의 한숨을 그들은 모른다. 다가오는 월셋날에 밤잠을 설치고 잔고에 찍히는 대출금이 어깨를 짓눌러 하루하루 꾸부정해져야 가는 사람들의 좌절을....
그래서 제 쌈지돈처럼 준다. 이래서 못준다. 어느 나라는 이렇다 다른 다른 나라는 저렇다 제대로 알려고 한 적도 공부해 본 적도 없으면서  줏어들은대로 적어준 대로 떠든다. 그리고 자꾸만 달걀을 콜라병 안에 집어넣겠다고 꼬드긴다. 그 날이 올테니까 이리 모이라고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세상 수많은 직업중에 정치인만큼 무식하고 뻔뻔한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무식한게 아니라면 기억력이 안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했던 말, 저저른 일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면 모른 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뭇 사람들의 기억력을 과소평가하거나 멍청하다고 여기는 것일테니 더 뻔뻔하고 나쁘다.
차라리 장돌뱅이 장사치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성실한 누군가의 지아비이고 가장이기에 용서라도 쉬이 할 수 있다. 그래도 정치인들에게 나처럼 턱을 괘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제발 다른 나라 얘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일찌기 연암께서 말씀하셨다.
“일국의 제도는 도량형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우리나라의 도량형은 정확하지 않다. 이 때문에 온갖 기물이 구차하고 정밀하지 않다. 동쪽 시장의 되가 서쪽 시장 것보다 크고, 남쪽 마을의 자가 북쪽 마을 것보다 짧다. 약재를 다는 저울은 왜인에게 빌려다 쓰고, 은을 다는 저울은 북경의 시장에서 사다 쓴다. 이래서야 무슨 제도를 논하겠는가?”
필요할 때마다 이 나라 저 나라 통계를 가져다 대고 경우를 든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한 나라를 두고서도 이래서 안좋다고 했다가 금새 이런 사례는 또 본받을 만하다고 한다.
뻑뻑한 척 안돌던 머리가 그럴 때만 윤활유 잘 친 베어링처럼 잘 돌아간다. 사지선다형 답안 채웠듯 선택적 정의고 선택적 두뇌다.

눈이 온다. 날이 궂다. 눈이 녹으면 내다놓은 폐지며 박스가 젖는다.  오늘은 수거를 안하셨으면 좋겠는데 요즘 택배가 많아져 박스값이 올랐단다. 분명 퇴근무렵에는 없을 것이다.

#기본소득지급 #김진숙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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