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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Feb 18. 2021

나를 흔드는 말

아직까지 정치이슈나 인물비평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꽤 잘 지키고 있다. 이대로 굳어지길 바란다. 책상머리에 '할많하않'을 써 붙여둘까도 고려중이다.

시대를 바뀌어도 퇴색하지 않는 가르침을 주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줘서 고전이라 하겠지만 최인훈의 <광장>에서 이런 죽비를 맞았다.
"요즘 그 숱한 정치모임의 어느 하나도 모르고 지내온 생활이었다. 까닭은 두가지다. 벌어지고 있는 일의 뜻을 잘 알 수 없었다. 너무 큰일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내친 말을 하고 있다.  하느님의 문서를 보고 온 사람들처럼 철학이란 물건에서 배운 것이 있었다면 정말 알고있는 것보다 목소리를 더 높여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광장이 쓰여진 것이 1960년대이니 반세기가 훨씬 지금에도 토를 달 수가 없다.
거기에 더해 너무 작은 일에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비일희하며 감정소모를 하고 새김질없는 앵무새처럼 따라하니 그 소리가 겹치고 겹쳐 금새 시장바닥이 되기 십상이다.
개인적인 까닭이 두가지 더 있는데 하나의 사안에도 지나간 기사와 자료를 뒤져보고 찬반의 논리를 듣다보면 후과로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는 후회를 하게된다.
설사 나름 정리해서 파일에 꽂은 생각이라도 시간이 흐르고 숨겨져있던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날 때마다 실망하게 되는 것도 그리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어떤 정치인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하던데 이는 반은 맞고 절반은 무책임하고 괘씸한 말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생존의 살얼음판을 디디는 나같은 소시민들에게 정치라는 짐까지 지우고 선동하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거는 왜하며 출근을 늦추고 투표장 앞에 늘어선 줄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국민들이 아궁이에 군불를 지폈으면 머슴노릇부터 잘하는게 먼저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젊은 처자들의 길게 늘어선 줄이 눈에 띄었다. 대개 아이돌 팬싸인회나 할인행사라는 걸 알면서도 물어봤다. 어김없이 그 카페에서 연예인의 생일파티가 열린다고 했다. 다닥다닥 줄지어선 모습 그리고 그 많은 인원이 들어설 카페 안 정경을 상상하니 600이란 숫자가 전광판처럼 켜진다. 이틀 연속 돌파한 신규확진자 숫자다. 사는 게 지뢰밭을 건너는 것만 같다.
내 주변에 떨어지는 폭탄, 백주대낮에 나와 이웃들을 집밖으로 내몰려는 허가받은 날강도들이 횡행하는데도 나으리들의 스타워즈에 넋을 빼앗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닿지않을 목소리를 내고 헛손질을 하느니 드럼통 잘라 모닥불 피우고 입고있던 외투라도 벗어 건네는 게 나을 것이다.

최인훈은 철학에서 '정말' 아는것보다 목소리를 더 높여서는 안된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 '정말'이란 부사는 이럴 때 표창처럼 날아와 박힌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목적은 파리에게 파리통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했고, 윤석철 교수는 "철학이 별다른 게 아니다.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기준이 바로 철학이다."라고 했다.
누가 내게 묻는다면 "모른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들어온 구멍도 못찾는 파리에 불과한 나는 걸음마 배우듯 한글 깨치듯 조심스럽다. 깨친 한글로 일기를 쓰듯 네모 칸에 반듯반듯 꾹꾹 눌러써야겠다. 아무래도 글쓰기는 위험한 일이 분명하다.
"어떤 글은 존재를 입체적으로 증명하지만, 어떤 글은 존재를 납작하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글쓰기에서 가치판단이 적용되는 기준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글, 고유한 개개인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개는 글은 위험하다. 나의 첫 글쓰기는 위험했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홍성은>"

죽음을 머리맡에 두고 살아야겠다. 어수선하게 너부러져 있고, 쌓아놓기만 한 것들을 찬찬히 정리하는 것이다. 쓰레기 봉투에 담기보다 고운 보자기에 싸서 쓰일 데에 주고 들이는 대신 있는 것이나 제대로 닦아 써야겠다.
버리고 또 쓸어도 구석에 처박힌 먼지는 있겠지만 눈길이 미치고 손닿은 데까지는 치우며 살아야겠다.
"우리가 죽는 순간에도 이메일 수신함은 꽉차 있을 겁니다. 우리의 목록에도 여전히 할 일이 가득하겠죠. 하지만 당신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가 수신하는 이메일의 80퍼센트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목록에 올라 있는 할 들의 80퍼센트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영원히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단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하길 원합니까? 지금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 2년 후는 중요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점도 같이 생각하세요." <타임 퓨어 / 브리짓 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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