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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Feb 22. 2021

지나온 미래

똥뚜간 구덩이에 빠졌던 적이 있다. 취학전 어린 날의 기억이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어머니께 여쭤봤더니 맞다고 확인해주셨다.
외갓집에 갔다가 외갓집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어머니의 사촌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집에 아직 시집 안간 이모들이 나를 무척이나 이뻐해주고 잘 놀아줬다. 한바탕 난리가 난 후 나를 씻겨준 것도 그분들이다.

그 이모들의 최근 근황을 여쭤보다 옛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시골 재래식 화장실이었으니 널판지를 딛고 일을 보다 헛디뎠을 것이다. 그 집 위치와 대문 앞에 있던 우물까지 정확하게 짚어내고, 똥구덩이에 빠졌을 때 느꼈던 공포감은 비교적 선명한데 도무지 빠졌을 때 똥구덩이 안이 어땠는지, 분명 지독했을 냄새에 대한 기억도 없다. 극도의 공포심이 나머지 감각을 마비시켰던 것인지도 모른다. 출산의 고통을 망각하기 때문에 다시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뇌에서 극심한 공포나 고통이 지우지 않으면 인간은 살아 갈 수가 없다. 뇌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경험과 기억을 주름에 깊게 새기기도 하고 지우거나 깊숙한 데 저장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이 경과됐다고 해서 흐릿하고 최근이어서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도 아니다. 선택적이고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을 우선해서 저장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이나 뇌과학에 점화효과(priming effect)라는 것이 있다. 먼저 접한 정보에 의해 떠올려진 개념으로 인해 이후에 접한 정보를 해석할 때 영향을 받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예컨대 사회보장번호의 마지막 2자리 숫자를 물어본 뒤, 와인병을 보여주며 가격을 추정하게하면 사회보장번호의 마지막 2자리 숫자가 큰 사람일수록 와인이 비싸다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마켓팅에 활용하면 샹송을 틀어놓은 와이너리에서는 프랑스산 와인이 잘 팔리고, 독일음악을 틀어놓으면 독일산 와인의 판매가 증가한다. 정작 고객은 자신의 선택에 이러한 심리적 현상이 작용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만약 최근에 접한 정보가 단어나 대상, 언론기사나 폭발력을 가진 이슈라면 대중은 원하든 원하지않든 자신의 생각과 인식, 행동에 있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K -방역에 대한 성과나 호평이 실린 외신기사가 나온 후에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긍정적인 답변이 높을 것이고, 최근의 부동산 가격폭등 그래프를 보여주고 같은 조사를 하면 부정적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점화효과는 직전 혹은 가장 최근 경험한 정보의 영향력이 끼치는 효과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아무리 현 정권 초기의 성과가 좋았다 하더라도 혹은 이전 정권의 난맥상이 훨씬 심각했더라도 국민 대부분은 대권 향방을 결정하는 시기와 가장 가까운 시점, 즉 현 정권말기의 개혁성과에 의해 판단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런 사실을 잘 활용해서 쉴새없이 불을 댕기는 주류언론이 초지일관 현 정권의 반대편에 있다는 것 또한 불리하다.

내가 똥구덩이 빠졌을 때처럼 우리 사회를 덮친 코로나의 여파는 극도의 공포와 긴장감을 불러왔다. 백신접종과 치료제 개발로 그 공포와 긴장감마저 느슨해지고나면 코로나 사태와 대처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더라도 수구집단과 언론이 피웠던 지독한 냄새가 어땠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반면 어느모로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현 정권의 실패한 부동산정책은 이전 정권의 부패와 무능의 기억을 덮어버릴 수도 있는 강력한 점화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19세기 말 경제학자이자 정치가인 조지 헨리는 이렇게 말했다.
"부의 분배가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 수록 사회는 악화된다. 부패한 민주정치는 부패한 독재정치보다 그 자체로 더 나쁘지는 않겠지만 국민성에는 더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과 애국심이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떠오른다. 악한 자는 더 악한 자에 의해서만 쫓겨날 수 있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한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을 받게되는 자의 특성을 닮기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나긴 역사의 파노라마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면서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상태로 전락한다."고도 했다.
과거 부도덕하고 탐욕스런 MB정권의 등장이 그래서 가능했고 최근 물러났음에도 트럼프가 여전히 지지받고 위세를 떨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권력이 주는 안온함에 취해 개혁의 걸음을 늦추고 내부 분열상까지 보이는 현 민주당 보수정권이 설사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다고해서 이상할 리가 없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역사에서도 교훈을 배우지 못한 국가와 민족의 미래가 밝을 리 만무하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사람들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는 점이다. - 워렌 버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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