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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Feb 26. 2021

눈동자

미얀마

  한번도 불러 본 적은 없었지만 그는 늘 친절했고 미소를 머금고 있다. 타고난 천성이었는지 교육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선한 눈동자로 짐작컨대 천성에 가까울 것 같았다.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에그 토스트와 커피 한 잔을 주문했고 그는 늘 서있던 그 자리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나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묵고있는 호텔은 주로 일본인 관광객이나 항공사 승무원이 이용한다고 했다. 흑백사진으로만 봤던 우리나라의 50~60대를 연상케하는 이 나라 수도의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 정도의 고급 호텔이 있다는 사실이 생경할 지경이었다. 사진과 차이라면 한결같이 빨래가 널린 베란다를 통해 본 저층 아파트의 창문이 없다는 정도였다. 호텔은 전기 공급이 자주 끊겨 하루에도 몇 번씩 에어컨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것 외에는 정갈했고 달리 불편한 것은 없었다.

 한국에서도 잘 챙겨먹지 않던 아침식사였다. 나는 토스트 조각을 떼어 연못에 던졌다. 비단잉어들이 몰려들었다. 엎치락 뒤치락하는 잉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무심코 그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에게서 당혹한듯 화난 기색이 스쳤다. ‘왜 그러지?’ 의아스럽게 느꼈지만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날 저녁 호텔로 들어서다 지배인과 마주쳤다. 미얀마인치고는 피부가 흰 편인 그녀는 아버지가 일본인이라고 했었다. 아침에 있었던 얘기를 했다. 혹시 나도 내가 실수한게 있는지 알고 싶었다. 잠시 주저하던 그녀가 들려준 얘기는 예상 밖이었다. 나를 서빙하던 그의 아침식사는  내가 남긴 에그 토스트였던 것이다. 나는 그의 아침 식사를 잉어에게 던져 준 것이었다. 나는 미얀마 국제공항에서 나올 때 팁을 받으려 트렁크를 들어주겠다며 몰려들던 아이들과 토스트 조각을 먹으려 뒤엉켰던 살찐 잉어떼를 떠올렸다.

 가난하지만 자존심 강한 민족이라고 했다. 때묻지 않은 맑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언젠가는 식당에서 족히 그들의 몇 년치 수입은 될 달러가 들어었던 지갑을 두고 나왔어도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전화로 먼저 알렸을 때 한국식당의 주인은 이곳 사람들은 남의 물건을 탐내지 않으니 아무 걱정 말라고 했었다. 십여년전 미얀마에서 겪었던 일이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한 토막을 읽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1938년 조지오웰이 모로코에서 요양하던 시기. 공원에서 가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그때 주변에서 작업하던 아랍인 인부가 다가오더니 그와 가젤을 번갈아 보더니 쑥쓰러운듯 한마디 했다. “그 빵은 나도 먹을 수 있는데.” 그는 고마워하며 조지 오웰이 건네 준 빵조각을 누더기 속 은밀한 곳에 챙겨두는 것이었다. 그는 시 당국의 직원이었다.
조지 오웰은 모로코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 관광 휴양지가 되어가는 걸 개탄했고 나는 미얀마의 어느 섬에 건설되는 공항에서 헬기로 오가는 리조트 건설 계획을 들었었다. 그는 열대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ㄱ자로 접힌 채 한 짐 되는 장작을 지고 지나가는 나이 많은 여인을 한동안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가 그동안 봤었던 건 묘하게 들썩거리며 지나가는 장작의 행렬이었다고 했다. 나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먼지를 피하지도 않고 길가에 쭈그리고 앉은 치마 비슷한 론지를 입은 남자들을 의아해 했었다. 그들은 화장실이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 그렇게 용변을 본다고 했다.

 그리고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뤘다고 들었다. 내가 보고 경험했던 미얀마는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나로서는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나라 밖으로 국내 상황을 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놀랍다. 하지만 당시에도 가택 연금중이던 아웅산 수치는 다시 연금을 당했고 군사정권의 태도는 그때와 변함이 없다.
시위에 나서는 아들의 팔뚝에 혈액형과 긴급연락처를 적어주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먹먹하다.
조랭이떡 닮은 동글동글한 문자만큼이나 순박하고 선한 눈동자로 기억되는 미얀마 사람들의 결기가 세계인의 동참과 호응에 힘입어 이번만큼은 큰 성과로 이어지길 바란다. 동포에게 총부리를 겨눈 군부정권과 그 후계자들이 나라를 얼마나 병들고 썩게하는지 한국을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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