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로 모리나? 니하고 내하고 느그 형부 학교 앞서 봤던 그 가시나.
와 그 꽃가라 흰 브라우스에 호리낭창한 그 여시 같은 년이 박연희 아이가.
처이가 우에 글카노 말이다. 아 딸린 유부남하고....
결핵 걸리가꼬 도립병원 입원했던 즈그 누나 병문안 간다 캐놓고 너그 형부가 그 년하고 둘이서….
하이고,,,, 내가 우찌 그리 안돼보있는지 소사가 말해주더라. “사모님. 박선생하고 갔을 낍니더. 휴가 같이 냈으예” 카고…
그기 우식이 일곱살 때다. 내가 하도 감이 이상해서 은희 들쳐엎고 안갔드나. 학교까정 ”
‘아… 그 처녀 선생이….’ 그러고보니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같은 사람인 것도 같다. 약국댁이 예전 그 여선생인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언니가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가 더 궁금하다.
“근데 세이야 우찌알았노? 가가 최서방 친구 안사람이 된 거를….”
“내가 모리는기 어딨노.내는 다 안다. 니는 우째 알았는지 몰라도 된다. 하이고… 내 속 디비진 거 세상 사람들이 다 몰라도 니는 안다 아이가. 그걸 사람이라꼬 친구를 한다 말이가”
“내는 모르지… 몰랐지. 그럴 아가 아인데…. 참 세상이 좁다 좁다카드만 한 조막도 안되네. 우째 이런 일이 다 있노.”
“암튼 니 그년하고는 친구도 하지 마라. 인간겉지 않은 거는 상대하는 거 아이다. 제부가 알라. 최서방한테는 암말도 하지 말고… 내가 그년 생각만 하모 지금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아이가”
“알았다. 세이야.” 한참 속풀이를 더 하고, 친구하지 말라는 당부를 몇 번이나 하고서야 언니는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선생시절 형부의 불륜 상대가, 그 여선생이 약국댁 박연희라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멍하니 경대 앞을 떠나지 못했다.
전기밥솥의 김 빠지는 소리가 알람처럼 요란하게 그녀를 깨웠다. 저녁 준비를 해야한다.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언니는 일찌감치 학교를 그만 둔 형부 대신 슈퍼마켓을 하고 이불점을 해서 집안을 일으킨 여장부였다. 자신은 카운터를 비울 수 없어 식은 밥을 찬 물에 말아 들이키듯 끼니를 때워도 남편과 자식들 밥상에는 갓 지은 밥을 올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이자 자부심이었다.
바깥으로만 나돌던 남편이 온갖 책(트집)을 잡고 타박을 해도 스스로 조강지처라는 족쇄를 찬 돌부처처럼 꿈쩍도 하지않았다. 여덟살 터울인 그녀가 보기에도 답답하리만큼 시대가 비껴간 조선시대 여인 같은 언니였다.
그래도 속은 바람 든 무처럼 숭숭 구멍이 나고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음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친정에도, 시가에도 하물며 친구에게도 못하는 이 얘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가 친동기간이고 같은 여자인 자신밖에 없다는 것도.
무시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장사와 살림을 했던 상흔이 언니의 허리에, 무릎에 남았다.
장사를 그만 둔 이후.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서 꾸물한 날 다리가 쑤실 때면, 허리에 침을 맞고 온 날이면 그리고 무단히 혼자 있다 옛 생각이 나거나 당뇨와 고혈압을 앓는 남편의 현미밥을 앉힐 때에도, 보약을 달이면서도 뜬금없이 전화를 했다.
언제부터인가 친구하지 말라던 말미의 당부가 가만두지 않겠다는 복수의 다짐으로 바뀌었을 뿐 같은 레파토리, 익히 알고있던 사실을 반복했다. 묵묵히 들어주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그렇게 모진 말로 저주를 퍼붓고 복수를 다짐하는 언니지만 정작 당사자인 형부에게는 다시없는 조신한 열부라는 사실을. 가끔은 이상스레 느껴질 정도였지만 그마저도 세월의 무게를 배겨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였다.
언니의 당부에도 친구를 멀리 하지 못했다. 비록 오래전 초등학교 정문을 나서던 그 처녀가 지금의 약국댁이 맞다지만 자신이 알고 지낸 사람은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다.
저렇게 물러서 어찌 아이 넷을 키웠을까 싶은 사람. 우스개 소리를 해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웃고 난 후에야 귀속말로 무슨 말인지 물어보고 뒤늦게 배시시 웃는 친구였다.
“준아~! 뭐해~ 약국 건너오면 안돼?”
그렇게 건널목에 이르면 친구는 벌써 약국 창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자마자 언제나처럼 박카스 병뚜껑을 따서 건네주는 그 하얗고 파리한 손을 보면서 ‘야가 진짜 맞을까? ’ 고개를 들면 친구의 생글거리는 미소가 지워버리곤 했다.
“왜~?”
“아이다. 암껏도…. 또 어데 갔나?니 신랑?”
“응. 라이온스 모임이라든가… 저녁까지 먹고 온다던데… 준이아버지는 혹시 안늦는대? 애들만 챙겨주고 이따 우리 칼국수 시켜 먹고 늦게까지 있다가면 안돼?”
언제쯤이었을까. 언니와 친구의 악연을 알게 된 지 오륙년이 더 지났을 즈음. 딱 한번 친구에게 그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그날도 언니의 전화를 받고나서였다.
봄 햇살이 약국 안쪽 진열장까지 깊숙히 들어왔다. 친구는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 조제실에서 약을 담고 있었다.
“호야! 니 와 저… 선생 했었잖아?”
“응”
“니 좌동초등학교 있었제?”
“응. 어떻게 알았어?”
“우리 형부도 그기 근무했었거든. 김준택이라고….”
확인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단지 동생으로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유리창 너머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바보 같은 기…. 그냥 ‘아 그랬나’만 해도 될 것을….’
그녀는 그 날 이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 비슷한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 한번이면 족했다. 딱 한번. 대답도 못하는 친구라서, 그런 친구인데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그렇게 묻혔으면 좋을 일을, 묵히고 곰삭혀서 흐믈해져도 괜찮으련만 굳이 헤집은 사람은 언니였다.
아니 그녀였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랬던 언니였으니 그녀가 그런 대꾸를 하지 않았더라면 늘그막에 4년동안 연락을 끊고 살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다.
그녀가 일흔 셋이던 해. 그 날은 날씨가 꾸물하지도 비가 올 조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