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8년전이었다. 늦게 본 막둥이가 셋째를 낳아 서울로 올라온 지 아흐레가 지났을 무렵이었으니까.
전화가 왔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다.
“니 서울 현이집에 가있다믄서… 머스마 인물 좋드나? 하모 가시나만 둘 있으모 우짜노. 아들이 있으야지. 이모가 잘했다카더라 캐라.”
“오이야. 넙대대한 기 인물은 좋더라. 흐이구 세이야. 그래도 요즘 시대에 얼라 셋이 뭔 말이고. 서울살이가 얼매나 힘든데… 우짤라꼬 이라는고 모리겠다. 아무 생각이 없다. 시근없는 젊은 것들이…”
“아이다. 잘한 기다. 그런데 아인나. 그 박여시 그것도 서울 산담서? 니는 알고 있었제?”
도무지 여든을 넘긴 시골 노인네가 어떻게 이리도 남 사정을 잘 아는지 모를 일이다.
약국을 정리한 친구 부부가 서울 큰 딸네 아파트 단지로 이사 온 지 이태가 지났지만 자신이 그런 말를 한 적이 없었다. 아니 하지말아야 할 얘기였다.
그동안 친구는 갈수록 귀가 어두워진데다 황반변성까지 와서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서울로 오게 된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내가 암만 생각해도 괘씸타. 누었다가도 그 년 생각만 하모 벌떡 일어난다 아이가. 그 년이 아인나…. 세상에….”
다시 반복되는 얘기. 익히 아는 내용이었다. 친구가 그 여선생이었다는 걸 안 날로부터 이십여년이 흐른 지금 바뀐 것이 있다면 원망과 저주가 복수의 일념으로 담석처럼 박혔다는 것이고, 보태진 게 있다면 이제는 그 한풀이를 형부에게까지 퍼붓는다는 것이었다.
장남이 서울대를 들어가고 유학을 다녀와 교수가 되기까지 그 때마다 층계를 내려가듯 언니의 좁은 어깨는 조금씩 벌어지고 허리는 꼿꼿해졌다. 거기에 자랑하고픈 사위까지 봤으니 자신은 조상 앞에 당당하다 했고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곧잘 했다.
암탉처럼 품었던 자식을 떠나보낸 허전함이 더해져서일까. 그 즈음부터 언니는 젊은 날 대못으로 박혔던 형부의 저지레를 하나 둘 면전에서 들먹이기 시작했다. 차츰 횟수는 늘어나고 강도는 세졌다.
언니의 절규는 곧잘 출렁이는 격정의 높은 파고를 넘나들었고 그때마다 마지막은 짐승처럼 울부짖는 것이었고 가슴을 치거나 쥐어뜯었다.
남편이 몇 날 며칠 밤을 밖에서 보내고 온 다음날 아침에도 그릇은 깰 망정 칠첩 반상을 차려내며 묵언 수행을 하던 언니였다 .
환갑을 넘겨서까지 계속된 말술 때문인지 젊은 날의 방탕한 생활 탓인지 형부는 늘그막에 이런저런 병을 달고 살았다. 그래도 언제나 나이보다 열살은 젊어 보였고 혈색은 되려 좋아졌다.
조석으로 약재 달인 물을 여름에는 냉장고에서, 겨울에는 데워서 내놓고, 신새벽부터 홍삼이며 제철 채소를 갈아대고, 흰 쌀만으로 밥을 짓지 않는 언니의 지극 정성 때문이었다.
다만 묵언 수행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깨우는 통에 한동안 형부는 슬며시 배개를 들고 옆방으로 피신을 해야했다. 이제는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어데...어데 가노? 오소. 오라카이...일로 와서 앉으라카이. 안오요? 참말로 내 죽는 꼴 보고 싶은갑네. 참말로..으이.퍼뜩...!"
그때만큼은, 접신한 무당처럼 치받아 오를 때는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독실한 불자의 눈에 부처님은 종적을 감췄다. 누구도 그 서슬에 베일 뿐이었다. 어제 일인듯 기억해내는 총기는 손잡이없는 칼날이 되어 자신도 베고 찔렀다.
“접 때는 내가 하도 기패를 지기니까 니 형부가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치올리대. 이불 집은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더라. 그라모 뭐하노? 지가 예전자전에 한 해우지가 있는데… 흐이구 웬수 웬수…. 내가 여하튼 이 연놈들을… 내가 죽기전에 가만 안놔두끼다. 두고 바라. 내가 우짜는지.
니 내가 말했제. 말했드나? 퍼뜩 그 년, 니 그 친구년한테 말해라. 조은 말 할때. 으이.. 자슥들 앞에서, 지 며느리, 사우 앞에서 우세 안당할라카모 내 앞에 와서 손이 발이 되드끼 무릎꿇꼬 빌라꼬…. 알긋제? 안그라모 운제 천둥베락이 내리칠지 모른다꼬….”
오십년도 더 된 아스라한 일이었다. 하지만 언니는 오십년 묵은 더덕의 뇌두의 그것처럼 땅 속 깊은데서 켜켜이 쌓아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추운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그 나이테가 더 선명하고 촘촘하다고 했던가. 언니는 이미 혹독한 세월만큼이나 서리를 난 주목이 되어있었다.
나무의 생채기가 옹이가 되듯, 담석으로 굳고 독으로 배여들었는지 언니의 콩팥은 그때 이미 빨간 불이 켜진 신호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