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숙아. 안있나….내 부탁 하나 들어도고….”
“뭔데? 말해라. 괘안타… 와? 니답게않게 와그라노?”
명숙은 그녀의 고향 소꿉친구였다. 방앗간을 했던 명숙의 아버지는 외동딸인 명숙을 끔찍히도 아꼈다. 칠십 노인이 된 지금도 놀란 황소마냥 땡그런 눈이 소녀 같았다. 그 아버지가 금지옥엽 키운 얌전한 딸을 홀어머니의 외동아들에게 시집 보내면서 심란해 했던 건 기우가 아니었다.
명숙의 남편은 경찰이었다. 형사계, 강력계를 거치면서 지방 출장이다 잠복이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아니었다.
시장통에서 아들을 길러 낸 시어머니의 모질고 드센 성정을 받아내기에 명숙은 코스모스처럼 여렸고 한없이 착하기만 했다.
트집을 잡아 명숙의 머리 끄댕이를 틀어쥐고 시장바닥을 쓸고 다닌 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땡초보다 맵다는 모진 시집살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마저 출장이 그저 출장만은 아니었고 잠복은 혼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떤 때는 마담이란 여자가, 또 어떤 날은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남편을 제 남자라면서 안방 차지를 하려 들었다. 열 손가락으로도 다 꼽지 못한다고 했다.
그나마 핏덩어리를 안고 온 여자가 없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그래도 당당한 남편, 입도 뻥끗 못하게 틀어막는 시어머니의 패악과 완력을 온 몸으로 받아내다 환갑을 넘기고서야 그 굴레를 벗어난 명숙이었다.
며느리 둘을 보고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죽은 시어머니 제사를 큰아들네에게 넘긴 건 불과 1년 전이었다.
지금은 그 남편마저 떠나고 맞벌이인 막내딸네 손주들까지 봐주고 있었다.
“니… 니… 아인나. 우리 세이 있잖아…. 우리 세이한데 전화 한 통만 해도고…”
“언니한테… 와? 마이 편찮으시나? 우야꼬…. 하모 되지. 안그래도 우찌됐노 싶었다.“
“그기 아이고... 니…. 약국댁이 알제? 그 와 전에 안 말했나. 최서방 친구 안식구라꼬 내가 친하다 안카드나. 우리 동네 이웃 산다꼬….”
“하아. 들었지. 근데 그기 와?”
“니가 가인거 맹키로 해서 전화 한통화 해주모 안되긋나. 세이한테... 니한테배끼 부탁할 데가 없다. 니는 누구보다 우리 세이 심정도 잘 알끼고…”
그녀는 그제서야 기나긴 세월, 자매간에 그리고 약국댁과 얽힌 기막힌 이야기를 풀어놨다.
“오매나 무슨 그런 일이 다있노. 세상에나 세상에나…. 하모 해야지. 해주야지… 암만…”
“고맙다. 고맙다…. 암만 생각해도 그 방법바끼 없는 거 겉다. 자꾸 저래 열을 올리싸모… 안그래도 얼매 몬살 나인데… 니는 그냥 죽을 죄를 지었다꼬, 잘몬했다꼬 빌모 된다. 니가 약국댁인거 맨키로 해서… 병까지 있으믄서 저란다 아이가... 우짤 방법이 없다.”
“알긋다. 그걸 와 못해. 하모 해주야지… 오매 참말로… 별 일이 다 있다 그쟈. 니도 차암 독하다. 우째 그걸 인자 말하노. 니 입은 무신….”
얼추 얘기 실타래를 풀어 바늘 귀에 꿰고 나서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한참을 받지 않는다. 문득 병원에 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시요? 누꼬?”
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