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6

물베기

by 문성훈

그 일은 약국댁으로 가장한 명숙이 언니와 통화하고 넉달이 지나서 벌어졌다.

그동안 언니는 평생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건강식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병든 노인이 병든 노인 병구완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분당에 사는 아들과 딸이 한 분씩 모시면서 큰 병원에서 치료 받기를 권했지만 언니도 형부도 마다했다.
형부가 더 오랫동안 병을 앓았지만 언니가 10년은 더 늙어보였다. 갈수록 그 격차는 벌어지는 것만 같았다.
한달에 두 번 서울로 올라와 검사를 받고 약을 타가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두 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살풋 잠이 들었다 싶은데 요란하게 벨이 울렸다.
까만 방 한구석에 ‘윤길자'가 떠있었다.
한동안 전화가 없었던 언니다. 기어코 형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의사도 이런 경과를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호전되던 형부였지만 너무 오래 묵은 병이었다.

“어. 세이야. 무슨 일 생깄나? “

“아이다. 그기 아이고…. 내가 할 말이 좀 있어서 전화했다. 니 말이다….”
이미 한 옥타브 올라간 음성이다. 가쁜 숨이 더 또렷하게 들린다. 수화기로 더운 김이 뿜어져나왔다. 무단히 전화한 게 아니었다. 그것도 이 야심한 밤에… 혹시.

“암만해도 그년하고 한번 더 통화해야겠다. 내가…. 미처 몬한 말이 있다. 도저히 안되겄다. 니 한번만 더 통화하게 해도…. 아이모 갈차 도. 그년 전화번호… 내가 하꾸마. 꼭 해야겄다. 안하모 안되겄다. 이래가꼬는 내가 죽더라도 눈을 못감지 싶다. 그때 둘이서 어데를 싸돌아댕깄는지… 혹시 아는 안떨갔는지…. 내가 진작에 그런 소문도 들었다.
내가 꼭 물어보끼다. 그랬다모 병원에 이 양반이 갔었는지… 내 싹 다 물어볼끼다. 다 알아야겄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끼다. 내가 우찌 살았는지….. 하이고 천지신명님이 내리다보고 계실끼다.…. 이 연놈들을…. 내가….. ”
잠잠해진 줄 알았던 울화병이 다시 도진 것이다. 아니 계속 됐었는데 자신이 한 말, 약속한 게 있었으니 전화기만 들었다놨다 했는 지도 모른다.
그러다 마침내 폭발한 것이었다. 식지않는 용암이고 언제든 뿜을 화산으로 끓고 있었던 것이다.

“세이야…. 세이야 잠깐만…. 숨 좀 쉬라…. 그라고 내 말 좀 들어봐라. 아니… 아니 뭔 말인지 알았고... 인자는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
이미 잠은 멀찌감치 달아났다. 산발한 정신을 매만지기 위해서라도 한 숨 돌려야 했다.

“세이야… 근데 지금 어디고? 집이가? 형부는?”

“내 서울 올라왔다. 오늘 병원갔다가….지금 분당이다. 우식이한테 와있다. 니 형부? 그 인간 내 앞에 있다. 지금…. 내가 잘라고 누웠다가... 그년하고 같은 하늘 이고있다 싶으니까... 가심이 벌렁거리고... 손꾸락이 다 떨린다. 무시라... 무시라...”

“세이야. 그라모 딴 방에 우식이 처도 있고, 다 큰 손주들도 있다 아이가… 목소리 좀 낮차라. 다 깨긋다. 암만 귀동냥으로 들어서 알고 눈치챘겠지만서도 며느리한테꺼정…. 아무리 자식이지만 그기 무신 우사고… 형부 체신이 뭐가 되끼고….. 좀 가라앉히고 들어봐봐.”

“지가 한 해우지가 있는데 무슨 체신…. 그래도 싼기지. 알았다. 알았다.... 그래서 뭔 말 할라카는데…”

“세이 니가 전에 내한테 뭐라캤노. 한번만 따악 한번만 통화시키도라 캐나 안캤나? 암만 입에 넣은 것도 꺼내 묵을 친구라도 그런 말 하기 안숩다. 내가 얼매나 미라고 미라서 꺼낸 말인지 모른다.
가? 지 내 안만나도 되고… 안봐도 사는데 뭐할라꼬 이 나이 묵고…. 언제... 누가 먼저 갈지 모리는데… 지 치부 다 드러내믄서 세이하고 통화했겠노? 세이 니도 글치만 가도 지 아들, 딸, 손주 다 잘되갖고 그랄 필요 없다. 지대로 잘 묵고 잘 살모 되는데….
친구인 내를 봐서… 지도 잘못했다 싶으니까. 맘 단단히 묵고 한 기다. 내는 암만 우리 언니 마음 고생 시킸다 카더라도 그거는 고맙더라. 고마 고정도 했으모 됐다."

“이기… 뭐라캐쌌노. 그 년이 고맙다 말이가 지금. 니 말이 그기 그기가? 으이?”

“하…. 그기 아이고…. 내를 봐서 세이 니한테 전화해준 그기 그 마음이 고맙다 카는기지. 내가 가 반백년 지키봤다. 어질고 착한 아다. 세상 물정도 잘 모를만큼…. 빙시축구 같은 아다.
그런 아가 아이었으모 세이 니가 안글캐도 내가 벌써 머리끄댕이 잡았지 가마 놔뚜껬나? 우리 세이 속 문드러지게 했는데. 내가 알았는데…..
인자 고마해라. 그기 세이 니 한테도 좋다.
세이 니는 평생을 뭐 할라꼬 불당가고 시주하노? 자비 베풀고 용서하는 기…. 오데 멀리 할 필요 있겄나? 그랄라꼬 부처님 전에 가는 거 아이가. 인자 마음 풀어놔라. 그란다고 세이 니 마음 안편해진다. 니도 안다 아이가.”

“뭐라꼬? 그년이… 남의 서방 꼬신 년이 착하다꼬? 니… 가가 어질다캤나? 내가 우리 식이하고 으이 잘되라꼬 빌었지. 그 년 용서할라꼬 절에 갔드나? 니는 암말 말고 그년 전화번호 불러바라. 내가 하꾸마. 내가 할끼다.”

“몬한다. 나는 그리 몬하겠다. 안할끼다. 내... 이런 말꺼정 안할라캤는데….
가 잘못이 1할이모 형부 죄가 9할이다. 가 초급대학 졸업하고 처음 발령받아 간 데가 형부 있는 그 학교다. 몇 살이겄노? 가 몬살고 몬배운 막된 아 아이다. 그런 순진한 처이를 10살도 더 묵은 형부가 자빠뜨린 거 아이가.
세이 니 형부 모리나? 형제 중에 막둥이로, 응석받이로 자라가꼬 평생 세이 니 골병 들있다 아이가. 그란데 우째 가가 죽일 년이고 벼락 맞을 년이고?
가 학교에 소문 다 나갖고 언니들…. 가 언니들이 셋이나 된다. 그 언니들이 뜯어말기고, 즈그 어무이 아부지 들어눕고…. 가도 마음 고생 할만치 했다카더라.
그 인물에 그마이 공부해갖고 뭐시 아쉬버서 유부남하고 바람이 났겄노?
뭐라 했겄지. 형부가 뭐라꼬 꼬싰겄지…. 살자꼬 안했겄나.
그라고 내거트모 암만 친구가 전화해달라꼬 사정해도 그런 전화 몬한다. 세이 니는 할 수 있겄나?
다 지나간 일이다. 손주가 다 그 나이다. 인자 묻고 고마 이자뿌라…. 지발 좀 인자 니 건강 챙기고… 마음 편이 묵고 살자. 다 용서하고…. 으이? 좀 그라자. 세이 니 마음 내가 안다. 내가 알모 된 거 아이가. 내가 아니까 그리 안했나.”

“이기…. 참말로…. 말 다했나?…. 니가 내 동생 맞나? 맞나 말이다. 내 산 거 알믄서 그리 밖에 말 몬하나? 내는 니거튼 동생 둔 적 없다! 어데서 니 친구 핀을 드노? 시상 화냥년 같은 거를 친구라꼬…
내 니 다시는 안볼끼다. 죽어도 안볼끼다. 시상 니가 우째 내한테 이라노…”

전화가 끊겼다. 아니 내동댕이 치듯 끊어버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마지막 말은 안했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언니는 알고 있었다. 이미 알면서도, 그런 패악이라도 부리지 않으면 안돼서 그랬을 것이다. 대학 보내달라고 친정 아버지께 매달렸던 영민한 언니가 아니었던가. 담임선생님까지 집으로 찾아와 대학 보내야 한다고 사정했던 언니다.

그런데 그렇게 변해버렸다. 인생 막바지에, 벼랑끝에 섰어도 용서하지 못할 그 무엇. 한이라고 할 밖에, 얼음짱보다 시리고 잉걸불보다 뜨거운.
젊은 날 여자로서 감당했어야 할 수치심, 굴욕감, 원망과 분노가 뭉치고 다져져서 해풍 맞은 소나무처럼 비틀리고 채 자라지 못하게 한 것이다.
잠시일 줄 알았다. 그리 오래 갈 줄 몰랐다. 해를 넘기고 또 한 해를 넘길 때까지 언니는 연락이 없었다. 정말 인연을 끊은 것일까? 얼마나 모질게 마음을 먹었으면. 아니 마음을 다쳤으면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다.
용암이 다른 틈새로 터져 나온 것인지도 몰랐다. 하나뿐인 여동생. 가장 믿고 아꼈던 동기간이라는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전 05화거짓말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