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순간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얼음 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봄을 손짓했던 복수초가 긴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모…. 우식입니더… 엄마가 마이 안좋으시네예….. 그 정도는 아이고예… 이모 찾으십니더.”
“오이야. 내 바로 가꾸마. 바로 간다… 지금”
이틀 전에도 다녀왔었다. 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누구하고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
상태가 급작스럽게 안좋아진 건 보름 전 부터였다. 기력이 빠진 노인이 거부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입원도, 치료도 자식들 뜻대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언니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봄볕에 그을린 것도 아닌데 언니의 낯빛은 광채를 잃고 거무틔틔해져서 목탄처럼 하얀 시트에 묻어 날 것만 같았다.
“세이야~”
“으,,,, 왔나…. 내가 보자캤다. 내가 암만캐도 오래….”
“쓰~~~! 그런 소리 할라카모 내 부르지마라… 요새 시상이 어떻는데… 암도 고치는 시상 아이가. 괜안타. 괘안을끼다.”
“그래. 니 말이 맞다. 맞지….. 항상 맞는기라……. 야야~! 느그들은 좀 나가 있으라…. 내 느거 이모하고 할 말이 좀 있다.”
“씰데없는 소리모 내 안들으끼다. 꺼내지도 마라…..”
“그런거 아이다. 갱자야!... 그게 누구였더노?”
“뭐? 누구?”
“니가 약국댁이라캄서 바까준 아가 누꼬? 니 친구였드나? 내... 알고 있었다. 알믄서 모른 척했던 기다. 약국댁이 안죽은 것도 내 알고……”
“……………… 명숙이다.. 내 동창. 우시장 골목에… 방앗간 홍씨 아저씨 딸……”
“그랬드나. 내가 마이 미안했다캐도…. 알믄서도 그리 욕하고 머라캐서….. 그리라도 안하모 죽을거 같아서 그랬다 캐라….. 꼭 전해라 꼭……
니 궁금했제? 내가 우찌 그리 잘 아는고…. 느그 형부가 허우대만 멀쩡했지 허수룩하기가… 아무데나 뭐 흐치고 댕기는 사람이 뭐 하나 꼼꼼하게 챙기겄노. 바람을 피도 내가 먼저 알그로… 그리 벅수같았다 아이가….
니 친구 가하고 바람났을 때…. 오밤중에 뭔 속상한 일이 있는지 잔뜩 취해서 들어왔는데… 내가 가다마이 건다꼬 드는데 안주머니에 편지 한 장이 들어 있더라….
아매 가 언니가 보낸긴가 싶더라…. 지 동생 놔주라꼬….. 그라는 기 아이라꼬……
휴~~~~
그라고 잊아묵고 있었는데……
내가 시장에서 이불점을 안했나….. 잘 됐제….. 혼수로 마이 해갔꼬….. 목도 좋고…… 휴~~~ 흐이…..”
“세이야. 천천히 말해도 된다. 안급하다. 물 따라 주까?”
“어데…괜안타….. 날이 이맘때쯤인갑다….. 딸 치운다꼬 딸 델꼬 온 손님이 있었다.
곱데…. 딸래미도 엄마닮아서 인물이 좋디만…. 와 내가 눈썰미가 좀 안 있나. 근데 오데서 본 사람같은기라… 근데 내도 그렇지만, 그 손님도 본 적이 없다카데. 그런갑다 했지. 그란데 먼 말 끝에 저그 딸이 초등학교 선생인데 가 막내이모도 선생했다 카더라꼬….
그 손님 가고나서 예약 장부를 본께네 이름이 낯이 익대…. 그 편지 아있나 느그 형부 가다마이에…. 거기 적히있던 이름이더라. 그래서 알았지. 한 배 나서 그런지 딸들이 다 비슷한가비지…. 뽀얀 기….. 요 눈하고 이마가…. 딱 똑같드마…
어데서 봤는고 했드만…. 멀찌감치서 봤어도 내가 이자묵겄나. 가 얼굴을….
일부러 그랄라고 핸거는 아인데….. 아인데….
참 사람이 반듯하고 좋디라. 그 아지매가… 집도 시장하고 가차바서 자주 들리고….. 내도 그 딸 결혼할 때 부지 안 했나……… 내보다 한 살 많두만... 그리 친해지가꼬 말 트고 지낸지 오래됐다…. 장사 그만 두고도 오가는 사이다. 내 이리 아프기 전에는 가끔 만나서 점심도 같이 묵고... 그리되가꼬 지 동생 소식도 알게 된기지….. 니 동네… 그서 약국한다캐서 알았고…. 지 동생 서울 이사 간거도, 사위 본거도 다 들었다 아이가…. 내가 안알고 싶어도…. 알게되대……
그 아지매는 지금도 까막케 모르끼구마.”
“그랬드나….. 그래서….... 통화한 기 가가 아인거를?”
“흐흐… 니 모리나? 그 집 딸들이 친정 어무이가 서울 사람이라서 사투리 우리맨크로 안쓴다카는 거... 니 바까준 가는 사투리가 우리쪽 아드마... 그래서 알았다 아이가. 아이란 거….. 미안테…. 미안한데 어쩔 수 없더라. 속이 디비지는데 안그라모 내가 할딱 미치고 뛰쳐나갈것만 가튼데 우짜겠노. 미안하다 캐라…. 꼬옥….”
“다 지나간 긴데….뭐… 그리 말해주께….. 가도 사연이 길다. 세야 맨크로…..”
“갱자야…. 우리 어무이가 내 우로 오빠 하나 보고 내를 낳았다아이가…. 그라고 남동생을 셋이나 줄줄이…. 그라고 니 밑으로 용구 아이가….
내가 소학교 들어가서 얼매 안됐을 때다. 우리 어무이는 와 자꾸 배가 부르노 캤는데….. 학교 갔다 온께네 어무이가 몸을 풀었더라.
가시내라 카대….. 여형제가 하나도 없다가…. 내가 쪼맨했어도 참말로 좋았다. 내 니 마이 업고 댕깄다. 무거븐 줄도 모리겠더라… 니는 가시나라서 그런가 뼤도 야실야실한기.. 머리는 쪼매코 눈만 보이더라.
니는 내만 보모 웃데…. 얼라가 뭘 안다꼬.... 친구들한테 자랑한다꼬 업고 나가고…. 둑방길까정 업고 나갔다가 어무이한테 혼나고…..
내가 시집 갈 때도 니가 제일 눈에 밟히더라….. 니 중학교 땐갑다. 그자….
내가 니 학교갈 때 머리 짜매주야 하는데…. 다 큰 가스나가 칠칠맞아서 아무데나 속옷 던지노꼬 널낀데 우짜지 싶어서…. 니는 오빠가 너이나 된다 아이가…
가르칠 것도 많고…같이 손잡고 마이 댕기고도 싶었는데…. 내 첫 아 낳고도 니가 보고싶더라”
“그런 얘기 말라 자꾸 해쌌노 눈물 나그로… 내도 세야 니가 제일 좋다. 니 시집가고나서 며칠인고 모리겠다. 밤낮을 징징대가꼬 아부지하고 오빠한테 얼매나 혼났는지 모린다…. 가시내가 재수없그로 울어쌌는다꼬…. 밥도 하나도 맛도 없고... 김치 찢어주던 세이가 없으니까....
그래도 버스 한번 타모 세야 보러 갈 수 있는데 살아서 참 좋디라. 저 고개만 넘어가모 우리 세야 있다싶어서….. 친정이 거지 뭐…내 한테는….”
“니 내가 연락 안하고 전화 안받아서 마이 섭섭했제…. 부끄러버서 그랬다. 니 보기 부끄러버서… 그럴 때는 어데가서 팍 머리 처박고 죽고 싶더라….
한번씩 디비고 나모 담날은 아무껏도 몬하겠더라. 넘사시럽고…. 와 내 동생 한테 일카노 싶고…. 니는 또 내를 우찌 볼끼고 싶고….
내 팔잔데… 내가 박복해서 그란긴데 우짜근노 싶으믄서도 억울하고…. 억울하다가도 맥이 탁 빠지고….
내가 그리 살았다…. 넘들은 내가 장사도 벌리놓고… 목청도 크고 그란께 내 맘대로 사는 줄 알긋제. 내 이 나이 묵도록 넘들 가는 관광버스도 한번 못타보고… 노래방도…. 박자 맞차서 손뼥도 몬치는데 우찌 가노… 제주도. 거 으이신랑 거 있을 때 딱 한번… 하도 오라캐서 가 본기 다 아이가.
남들 쉴 때도 가게 샷타 열고… 돈 벌어야해서…. 자식새끼 먹이살리느라고…. 남핀이란거는 백수에다 한량이고….아 들은 커가는데 친정에 손을 벌리겄나… 시댁 가서 쌀 팔아오까…. 내가 하소연하고 비빌 데가 없디라. 니한테만 그랬다. 니가 잘 받아주서…. 동생이라캐도… 니가 속도 너르고… 어데서 희안한 얘기 듣고 와갖고… 내한테 해주모 그기 제일 좋디라.
아무 해준것도 없으믄서 니 괴로핀거 내 안다….. 미안타. 용서해도고….. 내 때메 거짓말도 지서내고…. 친구시키서 욕 묵게 하고…. 내 안다. 약국댁이 착한 거… 즈그 언니가 그라데…. 지 동생 속없이 축구거치 착하기만 하다꼬…. 말 안해도 저그 언니 본께 알긋더마. 그래도 우짜겠노. 그리 얽키고 설킨거를….
내 니 한테만 그랬지… 아무데도 안그랬다… 니한테는 그래해도 이해해주것지. 불쌍한 세이 봐주것지 했는가비다.
내가 와 약국댁이 전화 할라카모 몬하겄노, 몬찾겄노…. 그라모 안되니까…. 니 친군데… 가가 뭔 죄고… 내도 알제… 그라이 뭐라 할 말이 없는기고….
니가 약국댁이라캄서 바까줏을 때 내가 더 놀랬다. 니가 몬할 거, 안할 거 알고 한 말인데… 그라모 안되는데… 그란데…. 아인거 알고 내가 그랬다. 퍼붓다. 내 봐도라….
얼마 몬살거가튼데… 용서해도고…. 못난 세이 때매 니가 속 마이 끓있다. 연락 안해서…. 모질게 해서… 거짓말꺼정 하게 해서…....
내가 미안타…. 참말로.. ”
“세 ㆍ이 ㆍ야……”
복수초의 꽃말은 '슬픈 추억'이다. 2~3월 얼음을 뚫도 피었다가 5~6월에 휴면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