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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10. 2021

운전을 가르치다가

"아빠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아... 설마 그 생각까지는 못했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안방으로 건너 온 아들녀석이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했다.
귀가 뚫렸을 때부터 아빠는 돈이 없다. 우리 집은 가난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 우리집 아이들은 돈에 모가 닳는다.(지폐의 귀퉁이가 닳을 정도로 안쓴다는 뜻)
예닐곱 살때는 제가 갖고싶은 장난감을 안사주는 엄마한테 "왜 아빠는 사장인데 우리집은 왜 늘 가난해?"라고 물었단다.
아내는 "아빠는 가난한 사장이라서 그래"라고 했단다. 씁쓸했지만 조금은 배고프게 키워야 스스로 찾아서 먹고 성취욕구가 싹튼다고 믿었기에 그렇게 키웠다.
그래서인지 매학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껴쓰는 습관이 들어 남들보다는 수월하게 대학생 둘을 키운다.

녀석은 뭐 하나를 사도 성능과 가격을 비교하고 같은 제품이면 쿠폰, 마일리지를 써서 저렴하게 사는데 특화되어 있다.
비싼 학원비가 맘에 걸렸던지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저렴한 실내운전연습장을 등록할테니 용돈 대신 학원비를 지원해달라고 했다.
"그런게 있어? 운전을 스크린으로 배운다고?"
"네. 가능하대요. 요즘 어디든 있고... 운전학원의 절반이면 돼요."
"아무리 그래도 실제상황과는 틀릴텐데데... 되겠어?"
"동영상보고 공부하고 실내연습장에서 연습하면 될거 같애요."
"음. 알았어. 아빠가 좀 생각해볼게"
껐던 노트북을 켜서 검색해서 알아보니 반신반의 가능할 것도 같고, 후기를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들 녀석 방으로 갔다.
"아빠가 좀 알아봤는데 운전은 안전이 우선이고, 실전연습으로 단번에 따는 게 나을거 같다. 운전학원 등록비 지원해줄테니까 제대로 배워"
"그럼 연습과 요령은 실내연습장에서 시간제로 하고 실전은 아빠가 우리 차로 가르쳐주세요"
'독한 놈….’
안돼 임마. 너 무면허잖아"
"평일날 차없는 주차장에서 가르쳐주시면 되죠. 그건 불법 아니예요. 알아봤어요"

영락없이 코가 꿰여 녀석의 실습을 시켜주게 됐다. 아무래도 젊은 운동신경이라 금방 익힌다.
어려운 코너마다 멈추고 핸들을 돌려서 움직이길래 "그냥 속도를 줄이면서 자연스럽게 돌아"라고 했다.
"일단 세워서 핸들을 돌리라고 배웠어요. 한 바퀴 반, 그리고 두바퀴... 이렇게..."
"음. 일단 시험통과가 우선이니까 그랬겠네. 그런데 말이야.... "
녀석에게 마찰력과 관성, 복원력의 원리를 설명하다 깨달았다.

ㆍㆍㆍㆍㆍㆍ

맞든 그르든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십대를 지난 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고 믿는 편이다.
성격과 식성은 물론이고 생각과 습관을 바꿔 놓기란 무척 힘들고 어렵다. 그런데 바뀌기도 하고 새로워지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는 몇가지 요건을 갖춰졌을 때다.

자동차가 서있는 상태 즉 바퀴가 멈췄을 때는 핸들을 꺾기가 힘들다.(물론 요즘은 유압식이라 다소 쉽긴하다.) 그런데 진행중일 때는 방향전환이 부드럽고 쉽다.
사람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사고를 멈추고 그대로 굳어버린 사람, 자신이 알거나 믿는 것에서는 어떠한 의문과 질문도 가지질 않고 옴싹달싹 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런데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려는 사람,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면 방향전환도 새로운 시도도 가능한 것이다. 모든 물체는 멈춰 서 있을 때의 마찰력이 가장 강하다. 움직이면서 가속까지 이르는데는 그다지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성간의 사랑도 상대방이 최소한 호기심정도는 가져야 시도가 먹히지 전혀 관심도 없는데 접근했다가는 스토커나 성희롱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하물며 사람마다의 종교나 이념은 더 한 게 당연하다. 건널목과 지하철에서 띠를 두르고 목이 쉬도록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보다는 평소 따뜻한 사랑과 정다운 말을 건네 주던 이웃을 따라 교회를 따라나설 확률이 높다.
대립된 이념과 사상을 가진 사람과는 아무리 핏대를 높여 주장과 논리를 편들 오히려 상대를 더 강고하게 할 뿐이다. 차라리 상대의 말에 귀기울여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조곤조곤 사실을 짚어가며 한번 더 생각해보는게 어떻겠냐고 권유하는 게 서로의 감정도 덜 상하고 효과적이다. 그 어떤 것도 상대의 신뢰와 마음부터 얻는게 선행되어야 하는 건 불문가지다.

내게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을  돌려세우기는 무척 어렵다.
하지만 스스로 고개를 돌리는 사람, 몸을 조금만 트는 사람을 돌려 세우기란 쉽다. 그래서 신천지가 개신교인을 상대로 선교를 하고, 한때 진보인사였던 이들이 자기진영의 호된 질책에 돌아서는듯한 포즈를 취하자 반대진영이 두팔 벌려 반겨서 누구보다 더 열렬한 투사가 되게하는 이치다.
움직이려 할 때, 조금이라도 몸을 돌려세우거나 마음이 기우는 순간에는 작은 자극, 미약한 힘으로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천천히 바퀴가 구를 때 핸들 꺽기가 수월한 것처럼.

ㆍㆍㆍㆍㆍㆍㆍㆍ

팍팍하고 눈물 겨운 현실에 부대끼면서 돈도 되지않는 영화를 보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행위는 사치고 허위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행위들이야말로 가장 돈이 적게드는 고급진 취미이고 자신을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거름을 뿌리는 일이다.

다시말해 자신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나아가게 해서 자신을 옭아매는 마찰력에서 벗어나는 귀한 몸부림이자 사고를 유연하게 하는 호르몬인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다시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수십 수레의 책을 읽어도 내 삶을 조금이라도 바꿔놓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영화를 봐도 감정의 일렁임으로만 그친다면 단 한권의 책, 한편의 영화도 제대로 못 본 것과 다름없다.

나는 시골 촌부의 투박한 글을 읽고, 짧은 단편영화 한편을 보는 시간만큼은 아끼지 말라고 하고 싶다.  
인간은 살아 숨쉬는 생명체고 생명체는 살아있을 때에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살아있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 그것이 읽고 쓰고 말하며 보는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마침내 영원한 존재로 살아남은 고인들을 만나고 있지 않은가.
고전으로 남은 책, 명작으로 재방영되는 영화, 스치듯 지나가는 한 줄의 문장, 무심코 긁적거린 낙서에도 의미가 있다.

특히 나는 글을 쓰고 남기는 사람, 순간을 포착해 영원으로 기록하려는 노력을 멈추지않는 분들을 존경하고 고마워한다.
그들은 처한 녹록치않은 현실과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대와 바램 사이에서 고뇌하고 힘들어하지만 결코 그 걸음을 멈추지 않으리란 걸 나는 안다.
김언희 시인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의 고통과 글쓰기의 지옥에 대해 말하지만, 이건 말짱 거짓말이다. 글쓰기는 쾌락이다.
쓰는 사람은 세상의 구원 따위는 염두에도 없고 독자조차도 안중에 없다. 쓰는 사람은 오직 쾌락 때문에 쓴다. 그리고 이 쾌락은 돈으로도 살 수 없고 공부로도 이를 수 없고, 권력으로도 손에 넣지 못하는 희열이자 그 속에서 죽기를 바라마지 않는 희열이기도 하다……….부디 둘이 쓰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글쓰기의 희열 속에서 사시기를. 그리고 언령의 가피가 함께 하시길 빈다."

※ 사진은 딸이 알바해서 번 돈으로 다녀온 대만여행 중에 찍어서 보내준 것이데 내가 좋아한다. <대만 아이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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