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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12. 2021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셨습니까?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결코 수월하지만은 않은 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내게 주어진 시간동안 무엇을 할 수 있고 놓쳤던 것은 무엇일까?

마흔 즈음. 정말 숨가쁘게 그리고 거칠 것없이 내달리던, 지나고보니 정점이었을지도 몰랐을 그 시절에 나는 행복했을까?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무언가에 홀려 마약중독자처럼 내일을 무서워하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실은 가장 무서웠고 막막했었다. 그때는 몰랐고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달도 뜨지 않은 밤 어른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심부름을 자청했던 지난 어린시절에서 실은 한 치도 더 자라지 못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숨이 턱에 차도록 줄달음치던 시골 골목길을, 대문 앞에 이르러서야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숨을 고르고서야 집안에 들어서던 장면들이 가끔씩 떠오른다.

지켜보고 있을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지금까지도 나를 지배하고 있고 영원히 떨쳐버릴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내가 진정으로 상대해야 할 것은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공포와 불안이고 분명한 것은 정면으로 바라보고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언제가는 그 공포가 밖으로 표출되고 스스로 제어할 수 없고 감당하지 못하는 엇나간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라는 미식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 중에 수작으로 꼽히는 <애니 기븐 선데이 1999>가 있다. 팀은 과거의 영광이 물색하게 연패를 거듭하던 중이었다. 사활이 달린 마지막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코치(알 파치노)은 이런 명연설을 한다.
“인생이 1인치의 게임이란 것도 알게 될 거야. 풋볼도 그래. 왜냐면 게임이란, 그게 인생이건 풋볼이건 오차범위란 게 너무 작아서 그러니깐, 반 걸음만 늦거나 빨라도 제대로 성공할 수 없고 0.5초만 늦거나 빨라도 잡아낼 수 없지. 우리가 필요한 그 인치들이 온통 우리 주위에 있어. 경기 중에 생기는 모든 기회, 매분, 매초마다 있다고….."

1인치와 0.5초가 쌓이고 겹쳐 경기의 승패가 판가름 나듯 1도도 안되는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각도차이가 0.5초만에 내린 사소한 선택이 모여 인생의 큰 간극을 만든다.

마흔 즈음에 다들 그러했듯 나 역시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지방 출장도 잦아서 새벽녘에 서울역에 도착하면 건물 지하 사우나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곧장 출근할 때도 있었다.
어느날 그렇게 서울역에 도착했는데 계단이 있는 화단 옆에 박스를 깔고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던 노숙자를 봤다. 그날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 역시 무척 고단했던 탓에 그를 통해 위안을 얻고 싶었거나 아니면 우월감이라도 느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에게 말을 붙였다.
그는 내 또래였고 나와 그리 다를 바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비슷한 경로를 밟던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 얘기를 들으면서 소주 두어병을 더 사게 됐고 나는 어느새 행색이 멀끔한 노숙자가 되어있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결코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양복을 걸치고 출근할 직장이 있는 것이 아님을. 학창시절이었든 지나간 이삼십대 젊은 시절이었건 혹은 그보다 어린 시절부터였건 어느 순간에서부터 그와 나는 아주 미세한 균열처럼 보이던 간극이, 그 작은 각도가 점차 벌어지고 멀어져 한 사람은 차가운 길바닥에, 또 한 사람은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이 된 것이란 것을.

인생이 그런 것이다. 우리 주변에 널린 유혹과 기회, 선택과 결정 그 하나하나의 차이와 결과는 미미했겠지만 그것들이 모이고 더해져 마침내 성취와 좌절, 성공과 실패라는 극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니 우쭐댈 이유도 없고 그대로 주저앉아서도 안된다.
작은 차이가 가져오는 놀라운 간극을 알았다면 이제 다시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결승점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만의 행복을 찾고 싶다면 성공을 바란다면 후회, 미련, 상실감, 무력감, 공포, 불안이라는 내 안에 드리운 그림자부터 떨쳐내야 한다.

매분 매초, 거기가 어디건, 누구를 상대하든 이전과는 다른 나를 의식해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거울에 비친 나를 마주하고 되뇌어야 한다.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고, 나는 니가 두렵지 않다. 너를 기꺼이 상대해주마” 바로 지금부터….

[ 프랑스 육군 총독이었던 위베르 리요테(Hubert Lyautey)가 묘목 한 그루를 심으라고 정원사에게 명하자 정원사는 그 묘목이 완전히 자라려면 10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며 그를 말렸다. 그러자 리요테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오늘 오후에 바로 심어야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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