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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08. 2021

기본부터 제대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송교수와의 인연은 언듯 십여년이 흘렀다.
연구와 집필을 위한 개인 공간으로 오피스텔을 찾던 그에게 내 사무실 공간을 나눠 쓰자고 한 건 나였다. 무엇보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지리정보시스템)를 전공한 빅데이터 전문가이자, 학생들에게 영감과 울림을 주는 훌륭한 교수다.

쉬흔을 넘겨 예순이 내려다보이는 고개에서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휘청거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똑바로 걷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두 사람 다 나름의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거쳐 길고 어둡던 시간의 터널을 손과 발로 더듬어 통과한 사람이다. 좀체 흔들리지 않고 혼자이길 두려워하지않는 저력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간을 함께 쓰는데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하고 사유와 정서의 공감대가 넓다보니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는 시장 바닥에서 자랐고 나는 갯벌이 그립고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영세소상공인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안타까움으로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강의와 집필을 위한 시간을 빼고는 홍대주변 상권에서 폐업한 가게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작업에 혼자 매진하고 있다.

시골 출신이고 어머니 손맛에 길들여진 세대인데다 입맛과 식성까지 똑같아서 늘 두사람이 식사를 같이 하게 된다. 제대로 된 맛을 찾아 먼 거리를 주저하지 않는데다 그 메뉴들도 젊은 사람들이 즐겨하지 않는 것이다보니 사무실 동료들이 좀체 따라나서지 않는다.
식구라는 말의 어원처럼 식성이 같아 늘 함께 식사를 하다보니 그 정과 친밀함이 더해지는 것은 불문가지다.
우리가 좋아하는 메뉴란 것이 별 대단한 것도 아니어서 생선조림, 순두부, 순대, 북어국, 나물 백반, 막국수, 냉면처럼 흔하고 널리 알려진 서민 음식인데 제대로 해내는 식당은 서울 시내에 많지 않다.

그래서 원정 식사를 마다하지 않는 편인데 간혹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근처였는데도 미처 알지못했던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식당을 발견하면 서로를 이끈다.
최근에 두 군데 식당을 새로 개척했는데 냉면집과 백반집이다. 어머니의 레시피를 재현하려는 장인기질의 아들과 손녀가 하는 냉면집이고, 나물이 빠지지않는 집 반찬 그대로를 내놓는 연세 지긋한 두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백반집이다.
냉면집은 유명 TV프로에도 나왔는데 명패나 사진을 걸어놓지 않아 딸에게 물어보니 자신도 아버지도 그런 걸 싫어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백반집은 아침식사도 되길래 몇 시에 식당에 나오시느냐 여쭤봤더니 새벽 4시에 나오신다고 했다. 나물 다듬는데 손이 많이 간다고 했다. 나물 찬그릇을 두 세 차례 비워내는 손님은 우리 두사람이 거의 유일하다. 다른 식탁을 둘러보면 잔반에 나물이 늘 남아있다.
두 군데 식당 모두 세련되거나 깔끔하지는 않고 누추하고 허름한 편이다. 그런 것을 개의치않는 것은 물론 정감까지 느끼는 것조차 닮았다. 요즘 우리 두 사람은 금맥 발견한 광부처럼 두 식당을 오가며 열심히 파먹고 있는 중이다.

여느 때처럼 점심을 그 백반집에서 해결하고 한강변을 걸으면서 음식과 식당, 그리고 최근 어려워진 소상공인의 실정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그는 한때 호황을 구가했던 홍대 주변 상가의 1층 폐점률이 자신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22%~26%에 이른다는 결과를 애기해줬다.
무엇이든 제대로 하고 정성 들여 만들면 웬만한 불리한 여건과 어떠한 불경기 여파도 견뎌낼 수 있다. 우리의 대화는 ‘기본을 지키고 충실하면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식당의 기본은 맛과 정성, 손님을 가족처럼 여기는 마음가짐이다. 요리에 진심이 담겼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외면받지 않는다.  세부적으로는 재료의 선별에서부터 조리에도 기본이 있다. 쉽고 편한 방식보다는 어렵더라도 본래의 기본기를 따르는 고집스러움이 그것이다. 그리고 초심 그대로를 유지하려는 노력과 태도다.
잠시 반짝했다 사라지는 많은 가게들은 초심을 잊어버리고 진심보다 사심이 앞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본보다는 허울에, 장기적 안목이나 자존감보다는 당장의 이익과 편리성을 쫒다보면 정체성을 상실하고 토대마저 무너져 마침내 침몰하고 만다.

누구나, 어디에서건 ‘기본’을 말할 수 있다. 정계, 사업장, 학교, 군대, 가정에서 정치인과 유권자, 노사, 주인과 손님, 스승과 제자, 상관과 부하, 부모와 자식, 부부간에.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장소와 관계에 존재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얼핏 '기본'은 자연스럽고 단순해보이지만 실은 어렵고 두려워해야 할 단어다.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이 있다. 지식이나 예절보다는 지혜나 도리가 그에 해당하고, 법이나 규범보다는 양심이나 상식이 기본에 가깝다.

어떠한 명분으로도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 안된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 권리를 부여받은 인간은 없다.
007의 ‘살인면허’는 인간이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범죄의 거래에 불과하다. 천부인권과 대척점에 있는 야만의 증표나 다름없다.
더구나 국민국가시대에 국민을 보호하는 사명을 가진 군인이 그 국민을 죽인다면 이는 살인행위이고 범죄자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얀마 사태에 대해 공식적인 규탄 메시지를 냈다. 아시아 주요 정상 중 처음이라고 한다.
정의보다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세계 평화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여러 복합적인 외교적 사안까지 감안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고민이 있었겠지만 다른 나라의 정상보다 앞서 규탄메시지를 낸 것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느낀다.
대통령이기전에 인간으로서의 기본과 진정한 용기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기본을 갖추지 못한 인간이 대통령을 했던 부끄러운 역사와 그 부류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현재를 살고있다. 자국민의 피로써 정권을 잡았던 과거를 반성하거나 사죄하지 않는 자들이 있으며, 자국민을 고문하고 핍박한 조상의 부산물로 바퀴벌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병균을 퍼뜨리는 후손들이 권력과 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일궈 놓은 정치적 토대에 기반한 정당과 그 정당을 후원하고 지지하는 이들 세력이 미얀마 사태에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밝히길 꺼려도 지난 과거를 부끄러워 한다는 증거이고, 인간으로서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는 걸 온 몸으로 부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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