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 번째 솔져
12번째 솔져 (2017)
그러니까 내가 이장은 못되더라도 이 동네 문반장 정도는 된다. 물론 시내 중심가 한 건물에서 이십년 가까이 세들어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마는 그때문은 아니다.
내게는 이 동네를 주름잡고 있는 유력자들과 가깝게 지내기 때문이다.
인근 건물의 계단과 화장실 청소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청소아줌마, 몇 십년째 장사를 하며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가게주인, 오랜 원주민들만 자주 찾는 백반집 사장님, 심지어 막걸리를 납품하는 아저씨까지 그들이 유력자이며 든든한 나의 뒷배다.
뵐 때마다 먼저 인사하고 명절을 챙기는데 신경을 쓴다. 그러니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누구보다 빨리 알게되고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누가 건물을 내놨든지, 누구네 가게가 돈을 벌어 강남에 분점을 냈다든지 하는 것에서부터 어느 건물주의 심성이 어떻다든지, 어느 가게 사장의 둘째 아들이 속을 썩혀 요즘 골머리를 앓는다든지 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정보는 모두 그분들이 알려준 것들이다.
그러고보면 의도치않게 눈에 띄지 않지만 대단한 주요인사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왔다.
처음 입사한 대기업에서 그 큰 건물 안을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과 돌아가는 사정을 들려 준 것은 연세 지긋한 경비원 아저씨들이었고 청소하는 아줌마들이었다.
아들뻘인 내가 스스럼없이 살갑게 대하고 가끔은 아저씨와 아줌마들의 숙소에서 라면도 얻어먹고 주전부리를 사서 찾아가다보니 정도 깊이 들었다. 실은 내가 편하고 좋아해서였다. 짱박히기 그만한 데가 없었다. 층층시하 상관들보다 더 마음이 가고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다.
그 분들이 일요일 혼자 사무실 나와 있을 때(물론 일하려고 출근한게 아니라 TV와 컴퓨터를 맘껏 쓸 수 있어서였다. 냉난방 확실하고…) 고위간부가 올라가니 준비하라고 인터폰으로 연락해주셨고, 누구는 몹쓸 사람이니 가까이 하지말라고 당부도 해주셨다.
그 분들 덕에 그다지 조직 생활에 어울리지 않을 천둥벌거숭이에다 망나니인 내가 대과없이 인정받고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층의 임직원이 약 80명정도였는데 나는 안내데스크. 경리파트, 비서직의 말단직원들과 가장 친한 직원이었다. 대부분 안내와 타이핑을 맡은 고졸 여직원들이었는데 말하자면 대기업 피라미드의 제일 아랫단에 속해 있었다.
동료들이 직장 상사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임원 집들이 갈 때 나는 그들과 생맥주집에 가고 꼼장어집을 들락거렸다. 순전히 정서가 통하고 즐거워서였다. 나보다 고참도 있었지만 나이로는 동생뻘이었고 고향 누이같기도 해서다.
그런데 내가 누구보다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 수 있게 해주고 실수하지 않게끔 한 사람들이 그들이었고 퇴직할 때 얼마 정도 목돈을 쥐게 해준 것도 그들이다.
“요즘 ㅇㅇ부서에서 이런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요” “ㅇㅇ팀 ㅇ과장 조심하세요. 소문도 안좋고 부하직원 닥달만 하거든요” 라든지
“맨날 이렇게 술마시고 보너스달에 채우다가 어떻게 장가갈 자금 마련하실래요? 제가 적금 알아봐줄 테니까 다음달부터는 적금 제하고 월급 나갈거예요”
아마 나는 그들이 아니었으면 내 발로 나가기 전에 진작에 잘렸거나 빈털터리로 퇴직했을 거다.
세상에는 위대한 인물 그리고 그들로 인해 빛이 나는 뛰어난 업적들이 많다. 그런데 나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기록에는 누락된 민초들을 더 사랑하고 잊지 않으려하며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전란의 위기에서 이 나라를 구한 이순신이 있게 한 것은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군량미 창고만은 지켜내고 건드리지 않은 보성의 민초들이 있어서다. 백의종군으로 따르는 군졸도 없는 이순신을 도와 못먹어 깡마른 몸뚱아리로 배까지 군량미를 짊어지고 날라준 것도 그들이다. 명량의 승전은 이름없는 어부들이 저었던 낙엽 같은 배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순신은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민초들을 자식처럼 아꼈고 부모처럼 섬겼던 것이다, 그래서 추앙받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안중근, 윤봉길….김구까지 지극히 평범하고 핍박까지 받았던 민초들이 그들을 숨겨주고 지켜주지 않았던들 그들의 공적과 이름을 역사에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우리는 청산리 대첩, 봉오동 전투를 기리고 김좌진, 홍범도, 최운산 장군을 기억하지만 기록되지 못한 주인공, 그 위대한 선조들의 이름은 알지 못하고 그들이 어디에 묻혔는지 모른다. 독립군을 위해 가족의 쌀을 덜어내고, 목숨이 위태로울 지 모르는데 숨겨주고 지켜준 이들이 바로 이 나라와 겨레를 지금에 있게 한 최후의 승리자요, 잊지말아야 할 조상들이다. 독립군이 대승을 거둔 후 일본군이 보복을 감행해서 그 지역을 초토화시킬 때 총칼에 참살당하고 쫓겨난 사람들이다.
가려서 기록하고 승전보만 남겨서는 안된다. 역사의 체에 걸러져서는 안되는 분들이다.
이회영과 그 가문의 희생과 애국정신을 왜 모르겠는가. 그렇지만 만주로 떠날 때 해방된 신분으로도 따라나섰던 40여명이 계셨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그들이 얼어붙은 맨 땅에 삽질을 하고 군관학교를 지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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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큰 전란이 없었을 것 같은 노르웨이에도 ‘국가적 보물’로 칭송되고 전쟁영웅으로 부각되는 인물이 있다. 2차대전 중 연합국인 영국군 소속으로 나치에 함락된 고국 노르웨이에 침투했던 ‘얀 볼스루드’ 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한다면 12명의 요원 중 혼자 살아남아 탈출한 것만이 유일한 공적이다. 작전은 시도해보지도 못한 채 발각되어 실패했고 영세중립국인 스웨덴까지 60여일에 걸쳐 부상당한 몸을 무릅쓰고 불굴의 의지로 탈출한 것이다.
이미 피폐해지고 거동조차 힘든 그의 124Km에 달하는 여정에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한다. 집, 농장, 방갈로 그리고 바위 틈에 숨겨주고 질흑 같은 밤 독일 군함의 감시를 피해 목숨을 걸고 피신시켜 준 노르웨이 국민들이다.
숨겨 준 것이 혹은 도와준 것이 발각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그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것이다. 조국이 해방되고 돌아 온 얀은 훈장과 영웅 대접을 받지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도운 사람들이 영웅들이다.” 그리고 그의 소원대로 그를 도와준 사람들의 마을에 묻힌다.
일본에 강점당하고 고통받은 아픈 역사의 상흔를 대물림한 한국인이라면. 그리고 평범하지만 위대한 국민이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영화 <12번째 솔져. 2017>이다.
빗발치는 총탄과 화려한 액션 대신 심금을 울리는 종소리와 아름다운 노르웨이의 풍광에 넋을 빼앗길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