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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18. 2021

우연한 실수는 없다

두 가지 얘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사회경력 29년차다. 직장인보다 대표로서 이력이 더 쌓인 지도 이미 오래됐다.

한동안은 남 먼저 출세하고 싶어서 ‘성공하는 사람의 ㅇ가지 비법’류의 책이나 세계적인 CEO의 자서전류의 경영서적을 탐독하기도 했다. 글쎄 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글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회사를 운영하면서 대학원에서 경영학 과정을 이수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교수는 쉬운 얘기를 어려운 수식과 이론으로 설명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구나’하는 감상에 그쳤다.
물론 내 경험이나 인상은 주관적이고 편협한 것일 수 있다는 데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야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으니까...

밥벌이를 한 지 오래지만 한가지 일만 해왔다. 인테리어 디자인 업계를 벗어나 본 적은 없다. 그런데 딱 한번 다른 길로 들어 설 기회가 있었다. 이전 직장에서 상사로 모시던 분이 추천해주셨다.
꽤 오래된 일인데 한국에 세계적인 보험회사 ‘P’사가 진출했다. 그 분은 이 보험사의 초기 멤버로 스카우트되어 책임자급을 맡으셨다. 후일 ‘P’사는 종신보험의 개념을 확고히하고 이전까지 한국시장을 휩쓸던 국내 재벌기업인 ‘S’사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험 아줌마’로 대변되던 보험업계에서 ‘다른 업종의 직장경력 ㅇ년이상’을 자격요건으로한 대졸 경력사원을 선발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전 직장에서 ‘골통’이던 나를 특별히 아껴주고 나 역시 따르던 그 분의 배려를 외면할 수 없어 팔자에 없는 직원연수까지 받았다. 고급 음식과 호텔 숙박을 제공받았으니 호강을 한 셈이었다. 게다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영업직 아닌 교육직이었으니 부담도 적었다.

교육의 내용은 내가 예상한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 첫번째는 보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놓는 것이다. 영업 스킬이나 고객 커뮤니테이션에 관한 내용은 없었고 보험의 진정한 의미, 심지어는 보험 영업이 얼마나 숭고하기까지 한 대단한 일인지 자부심을 심어주는 교육이었다. 보험과 적금을 확실하게 분리했다.
두번째는 찾아가지 말고 찾아 오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까운 일가친척이나 지인부터 찾아가는 영업을 지양하고 상품설명과 가입설득보다는 가장 먼 곳, 정말 필요한 사람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가라는 것이었다.
세번째는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프로페셔널로서 사회적 공익을 위하고 현대인의 고질적인 불안과 위험을 대비시키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고취시켰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대충 떠오르는 것들은 이런 것이다.

물론 다분히 의도되고 프로그래밍된 교육이었지만 한가지는 분명히 깨닫게 됐다.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자신이 지향하는 삶과 직업을 일치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월급만을 위해서가 아닌 자부심을 가진 개인으로서 성취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때 직장인은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이 회사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오랜 역사의 ‘P’는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70%는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응답했고, 87%는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는 결과를 봤다. 충격적인 결과이기도 하지만 내 의문은 최선을 다할 마음이 없는데 최선을 다한다고 응답한 17%(87-70)에도 있다. 둘 중 하나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거나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회사와 개인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은데 회사를 다니는 동기와 개인의 욕구가 일치하지 않는 것도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ㆍㆍㆍ

리더와 보스의 차이는 많은 사람이 얘기했고 누구나 알 것이기 때문에 재차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면서 늘 아쉽고 불만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

신을 대신했다는 왕이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닌데 정치지도자나 조직과 회사의 대표는 왜 그렇게 자신의 실수에 대한 사과와 실패를 자인하는데 인색한가 하는 것이다. 왜 늘 그들은 최선을 다한 결과여야 하고 선의였으며 언제든 회복 가능하다고 믿고 쉽게 말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마치 그들에게 그런 자격이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처럼 굳어지는 것만 같아 화가 날 때가 많다.

잘못된 판단과 부족한 자질로 온 나라를 피폐하기 만든 장차관도 사임을 하면 원래의 제 자리로 돌아가 국회의원이나 교수를 한다.
직원의 사소한 실수나 몇 백만원도 안되는 손실에는 시말서와 징계를 당연시 하면서 회장이나 사장은 개인적인 추문으로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수백, 수천억의 손실을 입히고도 당당한가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국민을 총칼로 난도질하고 권력을 쟁취하고도 빈 통장 잔고를 들이밀거나 전 국토를 헤집어 쑥대밭으로 만들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 전직 대통령은 사과는 커녕 골프장에서 그리고 감옥을 대신한 병원 특실에서 고개를 빳빳히 쳐들고 있다.

과연 이들을 리더라고 할 수 있을까? 리더는 자신의 과오를 스스로 드러내고 사과하는데 스스럼이 없어야하고 실책을 만회하려는 진정성과 노력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자신 또한 한계를 가진 인간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시도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더 냉정해서 실패의 원인과 손실을 철저히 분석하고 구성원에게 진심을 다해 성실히 설명해야 한다. 구성원들의 실패까지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게 얻게 되는 신뢰가 없다면 리더의 필수적인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나 역시 스스로에게 물으며 산다. 그래서 “이건 내가 잘못했네.” “잘 모르겠는데…?”란 말을 습관처럼 들였다. 그리고 반복되지 않게, 모르는 것은 더 자세하고 깊이 알려고 노력은 했었다.
우연한 실수는 없는 법이다. 실수라고 치부할 때 반복은 피할 수 없다.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이 손길을 내밀고 스스로 의욕을 생기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회사를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됐다고 믿는다.

대통령이 최근의 부동산투기 관련한 사건에 사과를 했다. 나는 앞으로도 사과를 꺼려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기화로 험담과 모함이 잇따르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세상은 불만과 비난, 음모와 술수가 만성화된 비관론자들이 이끌어가지 않는다. 그런 세상은, 국가는 퇴보하고 결국에는 세계 무대에서 내려 오고야 만다. 한때 우리나라를 앞서가던 동남아 국가들이 보여주고 있고 중남미 국가들이 그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중요한 자리를 맡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실책과 손실을 인정하는데 그치지않고 만회하려는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껏 반복되어온 인사실패를 뼈아프게 각성하고 제대로 된 인사를 등용하는데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조치를 내리는데 그쳐서는 안되고 끊임없이 독려하고 경과를 살펴서 결과로 보여줘야만 한다.

국민을 믿어야 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국민이 얼마나 현명하고 용기를 지녔는지 스스로 체감하지 않았는가.
물론 단호하고 냉철하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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