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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18. 2021

시리게 오는 봄

한동안 일교차가 심했다. 꽃가루 알러지가 벌써 걱정이다. 몰려 온다던 황사 미세먼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이대로 지나간 것이었으면 좋겠다.

남녁의 도다리쑥국 향으로 먼저 맞는 봄이었는데 올해는 한발 늦은 것 아닌가 모르겠다.
중고서점은 참새방앗간처럼 드나들어서인지 수시로 적립금이라면서 1000원씩을, 그것도 기한이 임박해서야 보내준다. 오늘은 수학 책을 샀다. 마켓팅 전략이겠지만 내게는 주효하게 먹힌다. 그러고보니 공룡서점에 적립된 포인트로 신간 한 권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송인서적의 매각과 인수 소식은 출판시장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람마다 개성도 취향도 제 각각이다. 누구는 코끝으로 전해지는 봄소식에 작년에 입던 옷부터 꺼내고 누구는 꽃가루 알러지를 걱정한다. 밀쳐놓고 안말려들어야지 하면서도 쿠폰 기한에 눈이 가고 플라스틱 포장이 400년은 갈텐데 걱정하면서도 배달을 시키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사는 게 어떤 때는 서글프다.
그래도 어김없이 계절은 바뀌고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희망은 갓 돋아난 어린 쑥처럼 찾아서 캐는 사람의 몫이다.
어디서 날아든지도 모르는 생태교란식물이 야금야금 우리의 산야를 잠식하는 것처럼 절망과 우울, 비관적인 전망은 어느새 일상의 맥이 빠지게 만든다.

순천 갈대밭을 갔던 게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하여튼 봄이 녹은 땅을 내딛기 전이었다.
쓰다듬듯 너울지는 갈대가 바람을 보여줬다. 갯벌이 낳고 바람이 키운 것만 같았다. 갈대와 억새는 비슷하지만 다른 풀이다. 어머니도 출생지도 다르다. 구분하지 못한다고해도 그리 문제 될 것은 없다. 어차피 내 나라 내 땅에서 나를 살찌운 식물이다.
그런데 핑크뮬리는 다르다. 아주 고약한 미국에서 건너 온 2급 위해성식물이다. 단지 보기좋다는 이유로 일부러 들여오고 전국에 퍼뜨린 것이다. 전국 공원이며 관광지에 없는 곳이 없다. 아무 생각이나 대책도 없이 재배하는 업자도, 허락한 공무원도 그리고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상춘객이 되어서도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어디 핑크 뮬리 뿐일까. 돌아보면 입고 먹고 자는 생활 주변 곳곳에 핑크뮬리는 자라고 있다.
그런데 정신이라고 그러지말란 법이 있을까. 뿌리깊고 해로우며 맑은 정신을 교란하는 핑크뮬리가 뇌를 그리고 마음을 뒤덮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봐야 한다. 대개의 생태교란종은 아무런 보살핌을 받지않아도 저대로 뿌리를 내리고 세력을 넓힌다. 폭염도 한파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정신을 좀먹고 잠식하는 위해성 교란종 인식이나 의식이 그렇다. 증세가 심해지면 좀비처럼 멀쩡한 사람을 물기도 하고 광란을 일으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다. 그렇게까지는 안되더라도 증세없는 바이러스 감염자처럼 본인도 모르게 전파자가 되고 만다. 거름이 되는 썩은 정보와 소식들을 꺼얹어주는 재배업자들이 횡행하니 좀처럼 숫자도 중환자도 줄어들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매일 접하고 있는 세상이다.

지구적인 문제에서 한 나라, 한 지역의 자잘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다양한 해법을 내놓기도 하고 어떤 때는 급한 불부터 끄기도 하고 멀리 내다보며 지금의 고통을 감내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누가 내게 우리나라를, 미래가 걱정되는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고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같은 대답을 할 것 같다.  ‘존경할 만한 어른’과 ‘기대되는 젊은이’다.
벼락과 돌풍을 견디며 꼿꼿히 서있는 ‘노송’과 잘 키운 ‘묘목’이다. 줄어들거나 보이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는 암울해지고 늘어나고 자주 보이면 동이 터오는 것이다.

여든을 훨씬 넘긴 묵은 책사의 인터뷰가 지면을 장식한다. 정신교란종 재배업자들이 소환했다. 책사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라에 이로운 일을 뭐했을까 싶다. 이런 경우에는 모사꾼이란 말이 준비되어 있다.
사학비리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아흔을 바라보는 비리전과자인 두 전직 국회의원이 헌정회 회장에 출마했다. 헌정회가 전직 국회의원 모임이니 어쩌면 격에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국회사무처는 매년 60억의 국비를 지원한다. 썩을대로 썩고 냄새나는 늪지에 마사토를 아무리 들여다부은들 흔적도 남지 않을텐데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지금도 혈세는 새고있다.
서른 중반의 머리만 비대해진 젊은 정치가의 말이 들린다. 입은 살았으되 머리 속은 치매환자의 그것처럼 죽어가는 것만 같다.
역시 악덕 재배업자들이 열심히 거름을 지어 꺼얹는 중이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부터 챙기지도, 노동으로 땀 한방울 흘려보지 않은 그들을 보고 있으면 우울하고 암담해진다.

국가가 탄생하기도 전 부족이었을 때부터 원로는 있어왔다.
오랜 경륜과 해박한 식견, 그리고 북극성 같은 지혜로 무리를 나즈막하고 위엄서린 목소리로 이끌어 주던 사람말이다.
오래전 성인식은 사라졌다. 어른의 권위는 사라지고 성장의 고통, 새로운 죽음과 탄생 의식을 치르지않은 나이만 먹은 아이들이 어른 행세를 하려든다. 진짜 알아야 할 것들은 외면하고 요령과 술수만 익히는데 열중할 뿐이다.
그들이 진정 ‘원로’고 ‘신세대 주자’라면, 그렇게 대중이 받드는 사회라면 희망의 불씨는 위태롭고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

200억을 기부한 90대 노부부의 사진을 보고 있다. 노구를 이끌고 미래를 지필 장작을 져다 주셨다. 이웃사촌의 기부를 보고 결심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더 기쁘다. 굳이 지면이나 뉴스를 장식하지 않더라도 겨울을 나게 될 후손들을 위해 삭정이 하나라도 주워서 쌓아주시는 어른들이 계시다는 걸 알고있다. ‘어른’은 그럴 때 쓰는 말이다.
극단 '학전'의 김민기는 TV와 게임에 묻혀사는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극으로 '아침이슬'을 맞히고 있다. 올해 30주년인데 그의 나이 일흔하나다.
스스로 보수주의자임을 밝히는 김훈은 산업재해로 떨어지는 노동자를 살리기 위해 검버섯 핀 팔뚝을 걷어붙였다. 김민기보다 세살이 많은 48년생 해방둥이다.
당신들이 주춧돌로 버티고 있어 쉽사리 무너지지 않고 있음을 안다.

아무런 탈없이 병충해를 입지않고 곧게 자랄 수 있을까. 그래야할텐데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젊은 정치인이 있다. 혼탁한 구정물에 쉬이 물들지 않게 양초칠이라도, 기름 한방울이라도 적셔주고 싶다.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덤풀만 무성한 정치숲에서 땅 밑으로 수분과 양분을 건네 줄 뿌리 깊고 정정한 고목들이 별로 없어서다. 덤불과 잡초라도 쳐내고 뽑아줘야겠다.

지금은 침방울 때문이라지만 영원히 마스크를 벗지 않았으면 한다. 정신과 마음을 온전히 지켜주는 마스크 말이다.
공기중에는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세균과 먼지로 가득차 있다. 정신을 지배하고 굳어지게 하는 바이러스 같은 것이다. 무리지어 다니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튀는 그 침방울을 피할 수 없다. 비슷한 생각과 주장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목청을 돋우고 환호한들 이는 자화자찬이고 자기만족에 불과할 지 모른다.

자기만의 정리된 생각, 다져지는 소신이 중요하다.
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한꺼풀 벗겨보려 하지않고, 제대로 알고 깊이있게 이해하려 들지 않는 사람은 쉽사리 감염되고 중독이 된다. 그래서 지지자가 아닌 추종자가 되고 맹목적이 된다. 정신적 마스크는 벗어서는 안된다. 필터도 자주 교체해줘야 한다. 가장 성능좋고 가성비 높은 필터 중에 하나는 책이다. 글은 말보다 빨리 쉬지않고 휘발되지 않고 오래도록 씹힌다.

나는 오늘 수학책을 샀다. 물론 문제풀이를 하는 참고서는 아니다. 수학자는 세상을 수학으로 본다. 시험을 보기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서다. 설사 내 것으로 체화되지는 않더라도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가 무슨 말인지 알아 듣기는 해야 될 것 같아서다.  

나라의 먼 미래를 내다봐야해서인지 어느 출마자는 해변가 높은 마천루에 집을 샀다고해서 사과를 하고, 또 누구는 체온으로만 익숙한 나같은 소시민은 어림잡기도 힘든 36.5억 차액을 부동산으로 남겼다고 해서 시끄럽다.
오늘 하루만 해도 일련의 사건들이 줄지어 터진다. 장막 뒤에 있던 성희롱 피해자가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특정당을 지지하지 말라 당부하고. 법무부장관은 죄를 밝혀야 하는 이들이 오히려 죄를 만든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어디에 관심이 더 쏠리든 개인의 자유다. 판단과 결론을 내기 전에 들리는 말과 건네는 정보를 한번쯤은 걸러야 한다.
그래야 나를 태운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는 알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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