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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23. 2021

바람

투츠 틸레망의 하모니카 연주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며칠 전 고성에 있을 때였다. 흐린 날씨에 아스라히 더 멀어진 설악산을 창틀에 가둬두고 책을 읽고 있는데 그의 연주가 흘러나왔다. 그에게 누구냐고 물었고, 투츠 틸레망(Toots Thielemans (1922~2016))이라고 했다.

우리는 투츠 틸레망의 음악을 들으며 그를 스승으로 삼아 최고의 하모니카 연주자가 된 전제덕을 얘기했다. 전제덕은 시각장애자였으며 사물놀이에서 장구를 맡았었다.
1996년 음악을 떠날 수는 없고 미래는 암담하던 시절. 그는 택시 안에서 운명처럼 틸레망의 연주를 듣게 된다. 보드라운 입술로 얼마나 문대야 하모니커가 닳아 버릴 수 있을까.
스승의 연주 CD가 닳아 망가질 때까지 듣고 또 들으며 독학으로 깨친 그는 마침내 2004년 틸레망의 내한 공연에서 자신의 데뷔앨범을 건네는 꿈 같은 경험을 하게된다.

명품이라해도 가격은 소박한 하모니카의 명가는 독일의 호너(Hohner)社다. 엄격한 자체 심사를 거쳐 선정하는 ‘호너 아티스트’는 하모니카 연주자에겐 최고의 영예다.
2016년 전제덕은 한국 최초의 ‘호너 아티스트’가 된다. 밥 딜런과 존 레넌, 그리고 같은 해 타계한 자신의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인 투츠 틸레망과 클래식 하모니카의 전설 토미 레일리 등이 모두 호너 아티스트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그 해 12월 30일 스승을 기리는 헌정공연을 한다.

그가 내게 좋아하는 악기를 물었다. 나는 아코디언과 하모니카 그리고 대금이라고 했다.
아마 바람소리가 들려서 그런가보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대금을 무사의 검처럼 백 팩에 꽂고다니던 선배가 있었다. 선배는 스산한 가을 밤이면 기숙사 옥상에서 대금을 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은퇴한 심상락 선생(1936~)의 바람 같은 삶을 들려줬다. 그도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없어 젊은 날 기타를 포기했었다고 했다. 독학으로 깨쳐 한국 최고의 아코디언 연주자가 됐다. 자신처럼 미쳐서 연주할 수 없을 것 같아 자식마저 음악을 시키지 않았으니 제자를 키우지 않았다. 어디선가 제2의 전제덕이 그를 스승삼아 아코디언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영화 ‘봄날은 간다’는 그의 연주로 기억된다. 그의 헌정공연을 봤었다. 인생의 스산함, 사랑의 애절함, 그리움의 미학을 담을 수 있는 악기로 아코디언만한 것이 또 있을까.

만약 그와 같은 삶 그리고 재벌 회장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를 두고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시각장애인으로 장구를 계속할 수 없었던 전제덕과 오른손 새끼 손가락이 없어 기타를 포기한 심상락.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하모니카와 아코디언 연주에 실려 바람같은 인생을 얘기하는 우리들.
인간은 한쪽 날개죽지가 꺾여야만 새롭게 돋아난 날개로 더 높이 날아오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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