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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31. 2021

조그만 힘을 빼고

세상에 똑똑한 사람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그래서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겠지만 좀 심하다 싶을 때가 많다.
이 사람 말대로 하면 세계평화가 찾아오고 기후변화도 해결될 것 같다. 저 사람이 지적한 것만 고치면 우리나라는 정치선진국이 되고 경제대국이 된다.
그랬으면 오죽 좋을까만 그랬던 걸 본 적이 없었으니 그다지 믿음이 안간다. 안시켜주고 못맡아서 그런 거라면 한번 맡겨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내게 그럴 힘이 없으니 그것도 안타깝다.

다양해진 콘텐츠만큼이나 해박한 전문지식으로 무장하고 날렵한 글솜씨를 펼치는 일반인들이 넘쳐난다. 영향력도 상당해서 때로는 공중파의 위력을 능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손에 나라가 움직이고 정책결정이 이뤄지지 않는 게 한편 다행스럽다. 장기 고수가 훈수 두는 걸 못봤고 지적질에 익숙한 사람이 처신 잘하는 걸 보지 못했다. 문제점 파악하는 건 눈이 달렸으면 볼 줄 알고 머리가 있으면 분석한다.

노벨상 받은 경제학자도 미래 전망을 맞춘 예는 극히 드물다. 결과를 두고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고 보완할 뿐이다. 정치가 쉬웠다면 한국 근대사에 모두가 이견없이 칭송하는 정치지도자 한 명쯤은 나오고도 남았어야 한다.
물론 관전평도 못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쉬이 단정짓거나 욕짓거리하며 운동장에 병을 집어 던지지는 말아야 한다. 자신이 선수만큼은 뛰지 못한다는 사실, 감독만큼 작전을 구사할 수 없고 진퇴에 고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인정하고 말해야 한다.
말 잘하는 사람이 자신이 했던 말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걸 수도 없이 본다. 그래도 여전한 걸 보면 말 말고는 벌어먹을 길이 없거나 낯이 뚜껍거나 둘 중 하나다.

내가 골프는 좀 친다. 아니 좀 쳤었다. 흔히 힘 빼는데 3년 걸린다고 한다. 말은 쉬운데 이 과정이 어렵다. 이론상으로 5분이면 알아듣는데 동작은 안된다. 머리로는 이미 되고도 남았는데 근육이 따라오려면 한참 걸린다.
한국인들은 유난히 호쾌한 드라이브샷에 환호하고 비거리에 연연한다. 그런데 타이거 우즈 같은 장타자도 대회에서는 70~80%정도밖에 힘을 쓰지않는다. 멀리 보내려 할수록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다.
비거리를 재는 이벤트성 대회는 따로 있다. 10번 정도의 기회를 주고 가장 먼 거리를 측정한다. 서너번을 제외하면 대부분 OB(코스를 벗어남)다.
그런데 아마츄어는 단 한번 잘 쳤던 샷을 18홀 내내 자랑한다. 그걸로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전체 스코어는 형편없기 마련이다. 아마츄어 최고수도 정식대회에 출전하면 자신의 스코어에 훨씬 못미친다. 사방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관중의 시선을 의식해서다. 드라이버 삿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짧은 퍼팅도 놓치기 일쑤다.

나는 세상 똑똑한척 하는 말많은 훈수꾼들이 골프를 이론과 영상으로 배우고, 단 한번의 좋은 샷으로 뻐기고 다니는 아마츄어가 아닌가 싶다.
큰 대회일수록 갤러리들의 수준이 높다. 선수가 스탠스를 잡으면 쥐죽은 듯 조용하고 비록 응원하지 않는 선수의 실수라도 같이 안타까워한다. 그 갤러리들 중에 아마츄어 고수가 많다. 어설픈 고수흉내를 내고 싶은 사람들이 골프연습장에서 옆 사람 가르친다고 시끄럽게 떠든다.

탄복하게끔 하는 글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물론 실존주의 철학서 같은 경우는 원서를 봐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지만 대부분의 훌륭한 소설, 잊혀지지 않는 에세이, 아름다운 시는 평범한 사람들이 읽는데 무리가 없다.
작가의 수준이 높아서다. 힘을 빼고 자신이 씹어서 내놓는 글이어서 그렇다.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딱 자기 수준만큼 글을 쓴다. 어설픈 고수의 훈수 같은 글이다. 거기에 과시나 허위가 섞이면 고약한 냄새까지 난다. 그렇더라라는 경륜이 스며있지 않고 그렇다더라하는 주장만 내세운다. 이러면 어떨까의 권유가 아니라 이래야 한다고 강요한다. 몸과 감각으로 쓰지않고 머리와 손으로 쓴 글이 대개 그렇다.

골프든 글이든 한 템포 늦추고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 온전한 제 것이 아니고 어슬픈 흉내나 내려면 있는 그대로 전달이라도 하는 게 차라리 낫다.
어쩌다보니 요즘은 아는 척 하는 사람보다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더 귀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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