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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31. 2021

살자고 먹자 제대로...

현대인은 죽자고 먹는 것만 같다. 평범한 밥상이 예사롭지 않은 시대가 됐다. 예전에는 흔하게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귀해져서 찾아다녀야 그 맛을 볼 수 있다.

옆방 친구는 매주 토요일마다 어머니를 찾아뵙는다. 그때마다 반찬을 한 짐 싸들고와서 사무실 냉장고에 넣어둔다. 딱히 떠오르는 메뉴가 없는데 단 둘이 있을 때면 한상 차려서 먹는다. 식성이 닮은 우리에겐 그야말로 산해진미이고 진수성찬이다. 김치, 물김치, 깻잎 양념장, 젓갈, 계절 나물 서너가지는 반드시 들어가고 생선조림과 된장찌개 등이다.
이번 주에는 친구 어머님이 뒷산에서 직접 캐셨다는 쑥과 가자미로 끊인 된장찌개였다. 올해 남녘에서 도다리쑥국을 먹지못한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벚꽃이 만개한 걸 보니 완연한 봄이다. 처녀도 아닌데 설렌다. 냉이, 달래, 머위, 씀바귀등 봄나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세계인들조차 한국인이 채소를 많이 먹는다는 걸 안다. 건강식이라며 각광받고 김치는 세계적인 유행이 됐다고 한다. 일본에 이어 중국인까지 원조를 탐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업을 하면서 좋았던 것 중에 하나는 식사였다. 굳이 점심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되니 붐비는 시간을 피할 수 있었다. 식곤증이 심해서 오후 미팅이 있으면 점심을 거르기도 하고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갔다. 3500원짜리 시장통 칼국수를 먹으러 곱절의 통행료와 주차료를 지불하더라도 좋았다. 식사문제에서만큼은 자유로워진 것이다.
나는 시에스타까지 즐기는 이탈리아의 평균 식사시간(2위/ 2시간 05분)이 가장 길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프랑스 (2’11”)에게 6분차이로 1위자리를 내줬다. 와인을 곁들이는 시간이 보태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뜻밖에도 한국(7위/ 1’45”)이 중국(9위/ 1’36”)과 일본(10위/ 1’35”)을 제끼고 아시아에서 가장 긴 식사시간을 기록했다.
정작 놀라운 사실은 미국(28위/ 1’01”)이 조사대상 28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2020년 OECD 발표>

월 스트리트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배불뚝이 직장인들이 모니터 앞에서 햄버거와 콜라로 끼니는 떼우는 장면은 실상이었다. 워렌 버핏과의 식사가 수억원에 달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 세계의 식재료와 유명 쉐프가 몰려드는 미국의 식사시간이 가장 짧고 정크푸드가 넘쳐난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경쟁은 심화되고 외적인 삶의 질은 높아지더라도 원초적인 질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음식은 차고 넘치는데 그 음식이 되려 사람을 죽이고 있다. 세계 각국은 국가정책으로 국민의 무분별한 음식섭취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탄산음료의 세율을 높이고 패스트푸드 광고를 제한하며 건강과 체중관리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굶주림을 벗어났더니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잘사는 나라는 먹어서 죽을까봐 못사는 나라는 굶어죽을까봐 걱정이다.

먹기는 엄청 먹어대는데 잘 먹지 못해서다. 생물의 다양성을 무너뜨린 결과이자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참사다.
밀. 옥수수, 쌀등의 한정된 작물과 단 한 종류의 바나나, 숲을 갈아엎고 키운 야자와 아보카도 그리고 가둬기른 소, 돼지, 닭을 잡은 고기로 음식을 만드니 살은 찌는데 속은 허하다.
그나마 허겁지겁 쫓기듯 먹어대니 음식이 병을 안만드는게 오히려 이상하다. 먹고 살자고 일을 하는게 아니라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먹는다는 표현이 맞다. 먹을수록 수명을 단축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야채 조리법이나 나물 종류에 있어서 한국만큼 다양하고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산과 들에서 뜯고 바다와 개울에서 건져서 쓴다. 도토리와 메밀묵을 쑤고 콩국에는 우무가 제격이다. 메주를 띄우고 간장과 고추장을 담그고 김장을 한다. 모든 채소는 다 장아찌로 만들 수 있지 싶다. 생선의 아가미, 내장까지 염장하고 조기는 꾸덕꾸덕하게 말리고, 명태는 시린겨울 눈바람을 맞혀 황태로 만든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예전에는 귀한 줄 몰랐던 평범한 한국의 음식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발품을 팔지않으면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이제서야 제대로 대접받는 것인가 싶다가도 가격표를 보면 여전히 마음이 아린다.

봄나물에는 비닐하우스 작물과 견줄 수 없는 각종 미네랄과 무기질 비타민이 들어있어 면역력 증강에 최고라고 한다. 내 나라 내 땅에서 나는 천연 보약이다. 몬산토도 어쩌지 못해 GMO 걱정없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담박하고 거하지 않아서 지구 한 켠에서 굶주릴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할 것 같기도 하다.

이 봄. 바깥 출입도 조심스러운데 햇볕 담뿍 머금은 봄나물로 건강 챙기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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