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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pr 13. 2021

채점표

왠지 섣부르다는 느낌, 아직 덜 자랐다는 우려를 떨치지 못하겠다. 다 틀린 말도 아닌데 그렇다고 "옳다구나" 무릎이 쳐지지도 않는다.
원인은 그럴듯한데 해결책은 생뚱맞고 어긋났다. 개혁 자체가 아니라 '개혁의 부진'이 핵심이고 밑줄을 그어야 하는데 엄한 데를 긁고있다.
안도감보다 노회함이 느껴지는 건 기우였으면 좋겠다. 반성과 변화를 말하는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세력화하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반성문이 이래선 안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철저히 원인을 분석하고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 이렇게 서둘러야했던 이유를 잘 모르겠다.
'용감하다'와 '무모하다'는 다른 말이고 결과가 같을 수도 없다.
소대장은 전투를 지휘하고 본부에서는 전략을 짜야한다. 소대장들끼리 야전에서 전략회의한 결과를 발표한 것만 같다.
20,30대 젊은 초선의원들의 '입장문'을 읽었다.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손흥민은 100년에 한번 날까말까한 스타라고 한다. 현 한국의 스포츠 교육시스템에서는 그만큼 배출하기 어려운 케이스란 의미다. 부족한 잔디구장, 활성화가 덜된 유소년리그, 승부에 집착해 혹사당하는 학교스포츠의 현실이 그렇다. 그래서인지 손흥민은 외국에서 체계화된 정규코스를 밟았다. 딱히 그때문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선친이 고교야구팀이 있던 학교에 재직하셨던 적이 있다. 우승 전력이 있는 강한 팀이었다. 내가 당시 고3이던 유망주 투수에 관해 여쭤봤다.
"투수... 그거 할 게 못되더라. 팔을 완전히 못펴더라. 일종의 장애지"
눈앞의 승리에 연연해 많이 던지게하고 변화구까지 구사시켜서 빚어진 결과다. 그 선수는 고교야구까지 절정기를 맞고 이후 부상과 성적부진으로 마운드에서 사라졌다. 손흥민 역시 이런 과정을 밟았다면 지금의 활약을 장담할 수 없다.

정치무대에서 20,30대는 신인이고 유망주다. 그런데 의원이 됐다면 이미 프로선수가 됐다는 의미다. 과연 그들은 무슨 코스를 밟고 어떤 선발과정을 통과한 재원일까?

정치가 안정된 유럽은 학교라는 탄탄한 ‘유소년리그’에서 민주주의의 기본기를 체득하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에선 총선 등 주요 선거가 열릴 때마다 대부분 초중고교에서 모의선거를 치른다. 투표방식과 용지는 실제 투표와 똑같다.
초중고교 모의투표 결과는 각 정당의 ‘미래 성적표’다. 각 정당은 미래의 유권자인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정책을 알리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스웨덴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토론수업을 시작한다. 개선해야 할 학교 규칙, 자신이 사는 동네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권장한다. 중고교에선 보다 복잡한 사회문제가 학생들에게 제시된다. 학교가 민주주의를 키우는 ‘요람’ 기능을 하는 셈이다.
스웨덴 정당들은 매년 7월 외딴 섬에서 일반 유권자들을 상대로 대규모 정책토론회를 연다. 해마다 시민 3만여 명이 참여한다.  정당이 시민들의 정치 참여 문화를 이끄는 것이다. 시민정치교육을 기반으로 스웨덴이 '청년정치의 요람'이 됐다.
자라면서부터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해 법과 질서의 중요성을 깨닫고 나아가 국가와 정부의 기능,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게 된다. '민주시민'의 자격을 갖추고 정당은 '정치전문가'를 발굴 육성한다. 각 정당이 매년 수백명의 차세대 정치지도자를 육성하는 정치지도자 육성프로그램의 주 교육대상자 연령은 25~35세다.

한국은 정치인의 상당수가 법조인 출신들이고, 전직관료, 언론인, 시민단체, 노조, 학계 등 정치문외한들이 정치적 지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젊으나 늙으나 출발은 정치신인들인 셈이다. 공천과 재선에만 골몰하고 전업에서 익힌 처세술을 발휘한다.
한국정치가 타협과 협치를 모르는 이유는 그런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쟁을 앞세우고 조직논리와 선명성을 부르짖다 마침내 선배랍시고 높고 푹신한 방석을 깔고 앉아 졸고만 있어서 그렇다.
게다가 정당이 청년대표를 선발하는 기준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매스컴을 통해 유명세를 탔거나 심지어 연예인 인기투표같은 당원투표로 듣보잡의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운 좋게 혹은 나름의 정치수업을 거쳐 국회에 입성한 초선의원들은 줄서기, 진영논리, 집단이기주의 과목부터 수강한다. 가끔은 돌격전, 방패막이 매스게임도 익힌다.
차기 공천을 위한 처세술은 중요한 필수과목이다.

100년 대계라는 국가교육정책도 오락가락하는데 정당의 차세대정치인 육성과정을 탓하기엔 가혹한 비판이랄 수 있다. 정규 교육과정과 연동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최소한 될성 부른 재원을 알아봐서 선발하거나 그들에게 원칙과 모범을 보여 따르게 할 수는 있다.
젊은 초선의원들이 각자도생격으로 발의만 했지 통과도 안된 안건으로 자기홍보에만 열중하거나, 소통이랍시고 듣지는 않으면서 SNS에 인기영합성 발언을 던지는 것을 보면 딱하다못해 한심하다.

젊은 그대에게 묻는다.
1. 이제껏 최고의 장서가 소장된 국회도서관을 몇번 갔으며 대출한 자료는 얼마나 되는가?
2. 현안 해결을 위해 현장을 몇번 방문했으며 그 기록은 다이어리 몇 권인가?
3. 국가적 과제를 고민하며 밤을 샌 날이 선배정치인들과 식사한 날보다 많은가?
4. 당원과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얼마나 가졌으며 의원실 방문은 언제나 열려 있는가?
5. 당론이나 자신의 안위보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안녕을 더 우선했다고 자부하는가?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자중자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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