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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pr 12. 2021

먼지와 진주

내일이 휴일의 시작인 줄도 몰랐다. 퇴근길에는 넥타이를 양복주머니에 넣고, 혁대는 느슨하게 푼 채 가벼운 술자리를  가지는 직장인들이 눈에 띌 것이다. 평범한 일상이 그리운 시절을 나고 있다.

내버려두고 모른 체 했다가 금요일인 걸 알고 방 청소를 했다. 먼지가 뭉텅이로 굴러다니는 게 눈에 띈 건 며칠 전이다. 다들 퇴근하고 혼자 있을 때면 담배를 피우려고 어마무시한 사이즈의 공기청정기를 방에 들여놨는데 별무소용이다.
빗자루로 쓸어 쓰레받기에 담는데 뭉텅이라 한결 수월하다. 가벼운 비질에도 도망다니거나 공중에 떠도는 먼지라면 되려 힘들 뻔 했다. 떠 있다가 내려앉은 먼지는 대걸레질이면 어느정도 훔쳐낼 수 있다.
쓸모없는 것들은 한데 모아 버리는 게 상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연한 호기심에 라이터 불을 대니 고약한 냄새가 난다. 더러운 것은 냄새마저도 역겹다.

한동안 필리핀을 자주 오갔던 적이 있다. 마닐라에 큰 진주시장이 있다. 넘쳐나는 게 진주이다보니 문방구에 걸린 장난감 목걸이처럼 귀하게 안보일 지경이다. 양식진주는 매끈하고 둥근데 싼 편이다. 천연진주는 대개 울퉁불퉁한데 완두콩만한 것부터 쌀알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그런데 비싸다. 천연이면서 둥글고 큰 것은 무척 비싸다. 진주는 다른 보석처럼 광물이 아니다. 조개가 껍질안에 들어온 이물질을 감쌌던 유기물이 굳어진 것이다.
고통을 견뎌낸 결과물이고 살려고 발버둥쳤던 흔적이다. 영롱하게 빛나지만 다른 보석만큼 단단하지도 않거니와 산성이나 열, 심지어 물이나 햇빛에도 취약하다. 그만큼 관리가 까다롭다는 얘기다.

잊고 살기 마련이지만 공기없이 인간은 살 수 없다. 공기에는 필연적으로 먼지가 끼어든다. 눈에 보이지않는 미세한 것에서부터 만져지는 것까지 있다. 사실 문제는 늘 눈에 안보이는 미세한 먼지다. 잘 걸러지지도 않고 치우기도 힘들다.
그런데 지들끼리 뭉쳐지면 그나마 눈에 잘 띄고 버리기도 쉽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 나쁠 것도 없다. 흩어져 있고 공중에 떠돌던 먼지가 엉겨붙고 뭉치는 중이라고 여기면 된다.
세상의 먼지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내가 머무는 곳의 오랜 먼지들이 이제야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청소하려면 어느 정도는 먼지가 이는 걸 감수해야 한다. 이제 마스크는 일상용품이 되지 않았는가. 굳이 태우지 말고 쓸어담아 버려야 겠다.

조개 껍질 안의 이물질도 일종의 큰 먼지다. 진주를 만들려고 인위적으로 핵이라는 이물질을 집어넣기도 한다. 뱉어낼 수 없다면 쓰리고 아프더라도 그 상처의 진액으로 감싸고 굴려 진주를 만드는 지혜를 체득해야 한다. 그래서 이물질을 진주로 새롭게 탄생시켜야 한다.
저항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면 진정한 가치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통을 감수하고 자기 것을 내어놓지 않으면 개혁을 할 수 없다.
그 고귀하고 숭고한 결과물은 늘 위협받고 연약하다. 진주를 다루듯 닦고 소중히 할 때 아름답게 빛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조개가 일러주는 교훈이다. 인간이 조개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수십년 쌓인 적폐의 눈덩이를 어린애 오줌발로 녹이려드니 비난과 참패를 못면한 것이다. 대중은 오래 지켜 볼만큼 참을성이 없다
망치로 안되면 발파를 해서라도 깨부수고 파헤쳐서 맨 땅이 드러나게 해라. 시민들이 지켜주고 희망의 씨앗을 뿌릴테니...
개혁은 그리 하는 것이다.
무릇 개혁은 전격적이어야하고, 변화는 점진적일 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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